다시 지진
어제의 일본 오키나와/가고시마 지진. 일본지진 마구잡이 속보로 안 내보냈으면 좋겠다. 일본은 지각판이 여러 개 충돌하는 경계에 있어서 대부분의 지진이 그런 지각운동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와는 상관없는 지진일 가능성이 많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내용도 설명도 없이 무조건 일본지진도 조심해야한다고 경고하듯 긴박하게 쏴대는 기사들. 여러 차례의 지진을 겪으면서 민감해진 분위기를 이용해 일부러 공포심 조장하는 제목을 갖다 붙이는 일부 기레기들도 정말 짜증남...
어제 전국구를 들으니 (게스트로 나온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이번 경주 지진은 대다수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동일본대지진의 영향이 아니라 양산단층 자체에서 일어난 것이며, 며칠 전 발생한 4.5 지진도 지난 12일 5.8 지진의 여진이 아니고 별도의 새로운 지진이라고 한다. 통상 여진은 2.0 전후로 약하게 나타나다가 소멸하는 것이 전세계적으로도 일반적인 패턴이고, 본진을 100으로 봤을 때 여진 에너지의 총량은 많아봐야 5 정도이기 때문에 갑자기 4.5 규모로 발생하는 것은 여진으로 볼 수가 없다고. 수많은 기사를 보았지만 이런 내용 본 적이 없음. 여진이 날 때마다 규모 숫자만 바꿔서 올라왔던 기사들에 넌덜머리가 났었다. [규모 얼마의 여진이 발생했다 - 5.8 본진의 몇 번째 여진이며 - 피해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끝. 기자들이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 누구 말처럼 앞으로 경주 부근에서 나는 모든 지진은 무조건 5.8의 여진으로 몰아갈 태세였다. 이뭐병......
양산단층에서 주변 단층으로 확산되는 듯한 양상도 우려스럽지만 경주 지진에서 하나 주의깊게 보아야 할 점이 5.1, 5.8의 규모에 비해 너무 피해가 작다는 거라고 했다. 5.8의 지진이 어느 정도의 피해를 내는 규모인지 알 수가 없는 우리같은 일반인은 그냥 언론보도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고, 공포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인명피해가 없다니까 5.8도 그렇게 심한 건 아닌가보다 할 수 있는데, 전문가가 보기엔 이게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너지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므로 지진이 다시 올 것은 자명한데, 5.8로 분출된 힘이 전체 에너지의 20인지 50인지 80인지 모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규모로 발생할 지는 모른다고 한다. 이런 내용도 기사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음... 한숨만 난다.
전국구의 내용만 옳고 나머지는 모두 틀렸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진이라는 게 정확한 분석 예측이 가능한 대상이 아니고, 더구나 연구가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학자들마다 견해가 갈릴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기자들이 너무 무비판적이고 천편일률적이다. 동일본대지진 영향이라는 것도 전문가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그런가보다 하는데 솔직히 일본 동부에서 발생한 지진이 무려 5년 후에 같은 일본도 아니고 굳이 멀리 떨어진 경주에 영향을 준다는 게 납득이 되나? 우리같은 일반인이야 납득이 되면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대로 넘어갈 수밖에 없지만 기자들은 아무런 의문도 안 드는 걸까? 좀 이상하면 더 취재를 하고 다른 견해를 가진 전문가들도 인터뷰를 하고 하나의 가능성,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 자꾸자꾸 분석을 해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받아쓰기 대회가 아니잖아요?...
어쨌거나 다시 지진이 올 것이 분명한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애초에 그 에너지가 한번에 터지지 않은 건 정말 다행이구나 싶다. 물론 5.8 지진이 전체 에너지의 10이나 20도 안 되는 거라면 비극이지만 지각판의 경계가 아닌 내부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그렇게 어마어마한 규모는 아니지 않을까. 전문가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문제를 나같은 일반인이 단정할 수는 없으나,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고 지레 겁먹거나 막연히 별 일 없을 거라고 무사태평이기보다는 이런저런 분석과 예측을 차분하게 듣고 나름의 대처를 하는 것이 제일 현명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자연현상에 대한 나름의 대처라는 게 딱히 뾰족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저 연습하는 것이다. 내 삶의 새로운 변수로 작동하기 시작한 지진이라는 대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연습.
이렇게 어느 정도 차분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행복인지도. 자연재해 앞에서 누군들 무섭지 않겠냐마는 당장 진원지 근처에서 느끼는 공포라는 것은 나처럼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서 느끼는 공포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니까. 경주에서는 마치 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땅이 울렁거리고 사람들이 멀미를 할 정도였다는데, 아직도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워서 공원에 텐트를 치고 살고 있다는데, 책장정리 따위의 호들갑은 아무 것도 아니었네.
그런데 왜 기자들은 경주 취재를 제대로 안 하나요? 지진이 날 때마다 느꼈던 것이, 지진제보가 가장 먼저 들어오는 곳이 부산이라는 것이다. 인구가 많고 젊은 사람들이 많으니 제보도 빠르고 SNS로도 금방 퍼지는 건데, 정부에서 먼저 알아채고 경보를 발령하는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면 모두가 처음부터 경주지진으로 인식을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 일반시민들 제보가 결정적인 이런 나라에서는 인구가 감소하고 점점 고령화되는 지역은 급박한 위험에서조차도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고 소름이 쭉 돋았다. 언론보도도 그렇다. 최근의 지진 모두 진원지는 울산과 경주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산 지진을 더 크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고, 경주에서는 땅이 막 울렁이는데 서울에서 진동을 느꼈느니 어쨌느니가 중요한 사람들이 많다. 크고 많은 게 더 중요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작은 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닐뿐더러 기본적으로 지진이 났다고 하면 진원지 중심이 되어야하는 거 아닌가. 물론 부산에도 서울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그런 부분에 대한 보도도 필요하지만 경주에 대한 기사가 너무 빈약하니 답답하고 한심하다. 기자들조차 경주 일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리고 원전
우리나라 전체 전기생산량을 100으로 봤을 때 원자력발전으로 얻는 전력이 30 정도이고 올해 여름처럼 전력수요가 최대치에 이를 때가 65라고 한다. 최고수준에서도 35만큼 여유가 있고, 단적으로 오늘 당장 원전을 모두 폐쇄해도 전력공급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단가가 가장 싼 원전이 많을수록 이익이 높아지고, 원전 운영하는 민간사업자들은 생산하는 전력량에 상관없이 일단 가동만 하면 기본운영비를 지원받으니 원전을 정지하고 싶어할 리가 없다. 그러니 폐쇄는 커녕 하나라도 더 지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민간-공기업-정부가 돈 먹고 먹이는 관계로 얼마나 끈끈하게 엮여 있으면 활성단층인 게 당장 드러났고 원전이 위험한 게 눈 앞에 아슬아슬하게 보이는데도 콧방귀 한 번 안 뀌는지... 수많은 사람들 목숨 담보로 성과급 2천만원 잔치나 하고 있는 게 진심으로 아무렇지 않나. 제일 코미디인 게 아직도 양산단층이 활성이냐 아니냐 논란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니 지진이 일어났는데 무슨 논란... 어이가 없어서 정말 돌아버리겠다. 전국구에 출연한 전문가는 활성단층이네 아니네 떠드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신생대 제4기 이후에 활동한 적이 있는 단층을 활성단층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지금 7일된 활성단층을 갖고 있는 거라고 했다. ㅋ 7일짜리 신선한 단층 앞에서 신생대 기준의 개념을 들이밀면 어쩌자는 건지... 에휴...
가끔 이 나라 국민으로 살면서 정신병에 안 걸리는 게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특히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