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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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복수의 여신>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열 권 중에서 네 번째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이번에 동시 출간된 <박쥐>가 그의 처녀작이고 세 번째인 <레드브레스트>, 일곱 번째 <스노우맨>, 여덟 번째 <레오파드>까지가 국내에 출간된 해리 시리즈의 전부. 열 권 중 네 번째 책이니 신작이라고 할 수도 없는, 12년 전인 2002년에 나온 책이다. 때가 때였던지라 당시 전 세계에 충격을 줬던 911사태와 인간의 복수심을 그린 이 책을 연관지어 그 시의성을 평가하기도 하던데, 읽어 보면 알겠지만 굳이 그런 식으로 엮지 않더라도 소설 자체로 얼마든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노르웨이판 원제는 소르겐프리(Sorgenfri, 슬픔의 자유)이다. 요 네스뵈가 소설 집필 당시 주로 거주했던 오슬로 거리의 이름이자, 해리의 전 여자친구 안나의 집이 있는 곳. 마치 안나의 운명을 대변하는 듯한 이름의 이 거리를 그녀의 공간으로 설정한 것도 우연은 아닐 터다.

 

얼핏 영화인지 실제 상황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은 첫 장면부터가 범상치 않다. 역자후기에서 노진선 번역가가 말하고 있듯이 나도 읽던 도중에 다시 맨 앞장으로 갔다가 돌아와야 했다. 책장을 앞으로 넘기는 손이 기분 좋게 떨렸다. 이어서 전개될 이야기가 얼마나 탄탄하고 치밀할 것인지 기대에 부풀어 심장박동이 빨라졌고, 이내 휘몰아치는 활자의 폭풍에 휩쓸려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다.

 

이야기는 전혀 별개인 두 개의 사건, 백주대낮의 은행강도살인사건과 안나의 자살사건이 동시에 진행된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서로 연관도 없는 사건을 동시에 묶었는지 의아하고 다소 복잡해 보일 수도 있지만, 차근차근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그 두 사건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인간이라는 감정동물이 선택하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결국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중첩에 중첩을 거듭하는 스토리, 구석구석 장치해둔 복선과 암시와 속임수는 추리소설의 스릴 넘치는 재미를, 사건의 저변을 뜨겁게 휘감아 도는 혈육 간의 갈등과 애증은 인간의 내면을 통찰하는 고전문학같은 미학마저 선사해준다.

 

요 네스뵈의 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과 매력에 마음껏 취하는 즐거움은 물론, 곳곳에 무심한 듯 그러나 치밀한 계산에 의해 좌표를 지정해놓았을 것이 분명한 단어들을 찾아 그 의미를 곱씹어보는 재미도 만만찮다. 내게는 그런 숨은단어찾기 중의 하나가 ‘아모로마’였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불현 듯 떠오른 이 단어가 <네메시스>의 모든 것을 담아 깊이 찔러놓은 요 네스뵈의 신의 한 수인 것처럼 느껴졌다. 해리 홀레와 베아테 뢴이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가 해리가 뜬금없이 애너그램을 아느냐고 묻는다.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똑같은 단어가 되는 애너그램. 운전하느라 정신이 없는 베아테 뢴의 옆에서 혼자 중얼대는 해리의 눈은 사이드미러를 보고 있고, 거울에는 트럭의 옆면에 적힌 글자가 비치고 있다. 아모로마(AMOROMA)ㅡ영원히 당신의 것.

 

이야기 중간에 별 의미 없이 툭 튀어나오는 단어 같지만 당연히 요 네스뵈의 소설에 별 의미 없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단어로 인해 해리는 안나를 죽인 범인을 잡는 결정적인 영감을 얻고, 독자는 소설이 끝난 후 이 단어를 떠올리며 별개였던 두 사건이 이미 하나의 모양을 이루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트론과 레브와 스티네, 스테판과 라스콜과 그의 피를 이어받은 안나. 마치 두 개의 자석 주변으로 자기장이 형성되면서 흐트러져있던 철가루들이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듯, 두 사건 주변을 맴돌던 모든 이야기와 감정들이 가지런히 정렬되면서 하나의 단어를 만들어내는 결말...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라는 이름 아래 아모로마, 영원히 당신의 것. 소름 돋는 장관이었다.

 

책을 덮고 나서 한참을 중얼거렸다. 영원히 당신의 것.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면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다. 내 것이 아닌 당신은 오로지 당신 스스로의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될 수 없다. 그것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나의 사랑도 슬픔도 이제 모두 당신의 것으로 돌려주리. “영원히”...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가져봤을 법한 보통의 감정이자 실제로 누군가는 현실에서 실행하기도 하는 지독한 감정. 범인에게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져버렸으므로 누군가를 혹은 자신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요 네스뵈는 살인자에게 국가와 역사에 대한 “정당방위”의 범행동기를 부여해주기도 하고(<박쥐>, <레드브레스트>), 연쇄살인범에게 자기존재를 결코 긍정하지 못 할 운명을 지움으로써 살인동기에 납득 가능한 논리를 구축해주기도 한다(<스노우맨>). 그리고 이 책에서는 인간의 심연에서 오랜 기간 퇴적과 풍화를 반복해온 감정들을 풀어냄으로써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 인간 본연의 감정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가 있다. 사랑, 증오, 갈등, 시기, 질투, 소유욕, 경쟁심, 콤플렉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뒤얽혀서 격렬한 화학반응을 통해 만들어내는 결합물, 복수. 인간이 갖는 감정들 중에서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이 복수심을, 두 사건을 통해 각각 다른 방향으로 그러나 결국에는 하나의 지점에 이르러 일치하도록 애너그램을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 네스뵈의 스릴러가 우아하다는 평을 듣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년에는 해리 홀레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 <Cockroaches>가 번역 출간된다고 한다. 또 어떤 스토리로 독자들을 매혹시킬 것인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책은 그 동안 해결하지 못한 채로 끌어왔던 엘렌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나쁜 경찰’ 톰 볼레로의 최후가 그려지는 <Devil's star>인데, 시리즈 순서대로라면 이 책을 볼 수 있는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박쥐>부터 <레오파드>까지 걸어온 요 네스뵈의 길에 더할 수 없는 찬사와 애정을 보내며, 기다림마저도 행복한 그의 다음 소설을 기대하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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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 칸 그리고 나머지들
    from Oasis 2016-05-21 20:57 
    요 네스뵈 신간 리뷰에 같이 올리려고 찍었는데, 김영사 비채 이벤트가 있길래 나머지들도 같이 올려본다. 요 네스뵈로 가득한 요 한 칸. 요 칸. ㅎ 그리고 나머지들. 신간도 별로 없구만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더 많다. 얼른얼른 부지런히 읽자. 안철수의 책이 새삼 눈에 띄네. 저 책이 출간되었을 때 물량 빠지는 속도가 거의 광속이었다고 하는데 꽃시절도 그 때로 끝이었나보다. 나는 아직도-_- 안철수와 다른 국민의당 소속들을 구분해서 보긴 하는데, '
 
 
다락방 2014-03-31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조기후님 요 네스뵈에게 아주 푹 빠졌네요. 제가 리 차일드에게 빠진 것처럼요.
요 네스뵈는 해리 홀레를, 리 차일드는 잭 리처를 만들었고 두 작가 다 모두 시리즈로 써냈죠.
둘 다 남자고..
우리 서로 각자 푹 빠진 남자의 책을 부지런히 읽고(저는 그래봤자 겨우 두 권 읽었다능..) 누구의 남자가 더 잘났는지 앞으로 계속 경쟁해봅시다. 건조기후님은 요 네스뵈 리뷰로 저는 리 차일드 페이퍼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조기후 2014-03-31 12:04   좋아요 0 | URL
한 번 빠지니 헤어나올 수가 없는 요 네스뵈 ㅜㅜ 오슬로 넘넘 가고 싶어서 비행기표까지 검색해봤네요. 당장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흑흑..
요 네스뵈 책 한 권 한 권 다 리뷰를 쓰고 싶을 정도예요. 네메시스는 때마침 김영사에서 리뷰 이벤트 하길래 먼저 쓴 거고요 ㅎ 나머지는 게을러서 언제 다 쓸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마음만은 그렇습니다 ㅎㅎㅎ
해리 홀레는 알면 알수록 진짜 정말 멋져요! 군인 출신 몸짱과 경쟁해도 이길 자신 있다고요.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