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하기 1

 

화이트데이에 을 보내주신 분 덕분에 식사량이 팍팍 늘었던 지난 주. 원래 김을 엄청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김 맛 짱이라서 보내주신 두 통을 며칠 새 홀랑 다 먹었다. 삼삼하면서도 짭조롬하고 고소한 것이 완전 밥도둑 ㅜ

 

한 통을 다 먹고 났을 때, 빈 용기를 버리려는데 이 원통이 철로 만들어진 거라 꽤 쓸만해보였다. 맛도 좋은 것이 포장용기까지 재질 좋고 탄탄해서 어딘가에 요긴하게 쓰일 듯하여 재활용하기로 결정. 당장은 쓸 곳이 없지만 일단 깨끗이 씻어 두려고 원통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스티커를 떼기 시작했다.

 

난 좀 이런 찌질한 짓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ㅋㅋ 마음에 드는 포장박스나 케이스가 있으면 겉에 붙어 있는 테이프라던가 스티커를 떼는 일에 온 신경을 초집중하고 심혈을 기울여 무슨 작품이라도 하나 만들어내듯 정성을 쏟는다. 스티커가 접착면이 너무 강하거나 찐득거리는 것, 스티커 자체의 종이질이 얇거나 약한 것은 뚝뚝 끊어져서 깨끗하게 떼어내기가 힘든데, 이 스티커는 접착력은 센 것 같아도 스티커 재질이 쫀쫀해서 잘 떼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힘 조절을 잘 못해 접착면인 안쪽과 글씨가 적힌 바깥쪽이 포 떠지듯 마구 분리되어 찢겨나가면서 실패. 덕지덕지 붙은 거 일일이 제거하느라 뒷처리를 한참 했다.

 

아씽 잘 될 것 같았는데... 오기가 나서 아직 개봉하지 않은 나머지 한 통의 스티커를 떼기 시작. 이번엔 정말 조심스럽게 가장자리 부분을 손톱으로 잘근잘근 긁어가며 적당히 힘을 가해 조금씩 옆으로 당기면서 뜯어냈다. 조금만 빨라도 아까처럼 안쪽과 바깥쪽이 분리되는 사태가 발생하니 종이의 장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천 천 히 천 천 히 움직이기. 스티커가 도중에 한 번 찢어지기라도 하면 수습난망이기때문에 힘이 골고루 들어가도록 균형도 잘 잡기. 찌직, 찌직, 1초가 영겁의 시간인 듯 세상이 정지해버린 듯 오로지 스티커 떼기에 정신통일하사불성의 집중력을 쏟은 결과,,, 얍, 성공!

 

음하하하하하하하. 정말 찌질하고 기분 좋구나.

 

밑에 작은 조각이 따로 떨어진 건 다시 한 번 감각을 살리기 위한 연습용으로 해본 거. ㅋ 사진은 스티커를 떼자마자 찍은 거라서 자세히 보면 지저분한 잔여물이 조금 남아있지만 지금은 깨끗하게 정리돼서 곱게 보관된 상태. 철로 만들어진 거라 표면에 자국도 전혀 안 남고 아 정말 좋다 좋아. 그런데 김이 무거워봤자 얼마나 무거울 거라고 이렇게 튼튼한 통을 썼을까? 나같은 사람 위해선가. ㅎ

 

어딘가에 쓰일 것 같아도 딱히 용도도 없고 결국엔 군것질거리나 사다 넣어둘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뿌듯한 건 뿌듯한 거. 요즘 한약 먹는 중이라 군것질은 거의 끊다시피 줄이고 있기는 한데 이것저것 쟁여두는 건 또 좋아하는 성격이라 뭐든 채워놓긴 채워놓게 될 거다. 지금도 책장 곳곳에 박혀있는 (이것처럼 재활용한) 케이스마다 쿠키며 초콜릿이 그득그득.. 초딩도 아니고 무슨 주전부리들을 이렇게 방구석에 쌓아 놓는지 ㅉ 약 때문에 못먹으니까 더 사재기에 집착하는 거 같다. 여기엔 과자말고 초콜릿 사다 넣어둬야지. 통 색깔이 초콜릿이랑 잘 어울린다.

 

김통에서 스티커 떼고는 신나서 먹을 거 채울 생각만 열심열심. 이러고 있다. ㅎㅎㅎ

 

 

 

 

재활용하기 2

 

<스노우맨> 미니북 케이스 만들기. 요 네스뵈 신간 이벤트로 받은 미니북을 책장 앞쪽에 세워두니까 예쁘긴한데 뭔가 아쉬워서 계속 눈에 걸렸다. 케이스가 있으면 좋을텐데 적당한 게 없고, 만들까 하다가 딱히 재료가 없어서 잊고 있었다. 그러다 마트에서 배달된 8개들이 칫솔세트 안에 파티션으로 투명한 판때기가 하나 끼워져있는 거 발견. 오예 이거야 하고 낼름 꺼내들었다.

 

판때기를 데스크보드에 대고 미니북의 가로 세로 높이 길이에 맞춰 칼로 약하게 선을 그어가며 재단을 한다. 클리어파일같은 PP재질이라 자꾸 미끄러지려고 해서 힘이 많이 들어갔다. 손목 나가는 줄.. 모서리 부분은 각이 잘 잡히도록 여러 번 더 그어주고 가장자리 잘라내서 접착제로 붙이면 끝,

 

완성. ㅎㅎㅎㅎㅎ 투명했던 접착제가 마르고 나니 허옇게 변해서 아주 깨끗하진 않지만 어차피 표지부분이 아니라서 티도 별로 안 난다. 눈에 걸렸던 거 해결하고 나니 속 시원하고 뿌듯뿌듯.

 

 

작은 소년의 공식

 

김통 스티커를 떼고 칫솔 포장재로 케이스를 만들던 와중에 읽은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소설이었다. 요 네스뵈와 해리 홀레에 흠뻑 취했던 탓인지 스토리가 심심할 정도로 밋밋했지만 읽다보니 은근히 빠져들었다. 어릴 때 뤼팽에 한 번 반했었던 이후로는 장르소설을 거의 안 읽었는데 최근에 다시금 마력에 젖어들어가는 듯.. 이런 책이 눈에 자꾸 들어온다.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과학을 기반으로 한 냉철한 추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숨 쉴 틈 없이 휘몰아친다"는 책소개글이 무색하게 개인적으로는 전혀 박진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야기가 흘러가는 도중에 유가와 교수가 사건의 핵심이 되는 지점들을 포착하는 순간은 의외로 짜릿했다. 관망하듯 주변을 맴돌며 사물과 사람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맥락을 연결해내는 그의 능력은 얼마나 탁월한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크고도 정확한 그림을 그려내는 혜안 역시 섬세하고 완벽했다. 현재의 사건과 16년 전 사건에 얽힌 배경에는 공감이 되지 않아서 작가의 이름 앞에 붙은 '미스터리의 제왕'이라는 수식어는 잘 와닿지 않았지만,

 

물리학 교수가 말하는 한여름의 방정식은 따뜻했다.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쪼갤 수 없는 소수에게 항상 1이라는 숫자가 있어주듯이, 아무도 지워줄 수 없는 기억을 갖게 된 교헤이에게 언제나 함께 할 것이라는 유가와는 작은 소년의 든든한 성장 공식이 되어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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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3-24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조기후님에게 이토록 귀여운 면이 있었다니요! >.<

건조기후 2014-03-25 09:57   좋아요 0 | URL
결혼도 안 했는데 이미 알뜰주부..가 되어버린 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슬퍼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