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jtbc 뉴스 말미에 리조트 붕괴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시간 이후부터 이어진 일들이 가관이었다. 오티를 하고 있던 신입생 300명 중 250명은 무사히 건물을 빠져나왔는데 50명이 매몰됐다는 상황(정확한 조사가 나오기 전). 결국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누군가가 대학교 게시판에 "그럼 50명은 추가합격되는 건가요?"라는 정신상태 심각한 글을 올리고 개또라이로 욕을 먹던 중, 실제로 추가합격기간이었던 해당 대학교의 안내문자를 받은 누군가가 그 문자를 캡쳐해 올렸다. 두 무개념들의 행동이 섞이면서 일은 일파만파 퍼져, "사고가 나자 대학교에서 추가합격문자를 보냈다"는 줄기의 막장소설이 완성되었다.
추가합격기간인 걸 알면서도, 우연히 타이밍이 고약하게 된 걸 알면서도, 굳이, 그 문자를 캡쳐해 올린 심리는 진심으로 연구대상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비극적인 사고를 두고 무언가 좀 더 극적으로 상황을 몰고갈 수 있는 소스를 투척하여 주목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절반, 소스의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이야기가 부풀려지면 부풀려질수록, 사람들이 분노하면 분노할수록 스스로의 작품(?)에 뿌듯해하는 뒤틀린 자기만족이 절반..인가? 정말 말로만 듣던 관심병 환자의 말기증상인 듯하다. 실상을 알면서도 기사제목을 이상하게 뽑은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고.
이런 이야기가 급속도로 퍼지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계속 인명구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교측이 무슨 수로 사망자를 예견하여 추가합격안내를 한단 말인지. 관심병 말기 환자는 병자라서 그렇다치고, 멀쩡한 사람들은 어째서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걸까? 왜 그럴까? 왜때문에??
분석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마트폰과 SNS의 즉흥적인 소통방식과 구조를 종종 언급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저 손바닥만한 기계에 지배당하는 멍청이라고 인정하지는 말자. 멘션을 쓰거나 댓글을 달거나 리트윗을 할 때, 그냥 한 번 생각만 해보면 된다. 이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다르게 볼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닌지. 지금도 스마트폰과 SNS를 쓰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대단한 일이 아니다. 한 템포만 쉬면 된다. 결국엔 자정작용으로 바로 잡힐 거라고 위로하지도 말자. 시비를 가리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지능을 다 갖고 있으면서도 고작 1초, 길게 봐서 10초 머리 굴리는 게 귀찮다...면, 뭐 그냥 그대로 기계의 노예가 되는 수밖에 없다. 내 머리가 내 머리가 아닌 채로 이렇게 휩쓸리고 저렇게 휩쓸리면서 단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인생 멍하게 흘려보내는 수밖에.
하루가 지난 오늘 다시 jtbc 9시 뉴스를 봤다. 손석희라는 이름 하나가 뉴스를 얼마나 차별화할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느꼈다. 쇼트트랙 계주 금메달 소식으로 활기차게 열었을 다른 뉴스와 달리, "good news는 잠시 접어두고 bad news를 먼저 전해드려야할 것 같다"며 위의 사건을 긴 시간 할애해 보도했다. 채 꽃도 피우기 전에 스러진 아이들을 뉴스로 조문하는 손석희와 제작진의 마음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대학교 입학식도 하기 전에 마감되어버린 짧은 생에 대한 안타까움은 합동분향소에 놓여져 있던 영정사진을 보는 순간 극에 달하는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사진인 듯 보였다. 졸업사진을 찍을 때 이 사진이 이런 일에 쓰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고3 때 이 대학교에 지원하는 친구를 따라 가본 적이 있다. 손에 손 누런 원서봉투를 든 또래들로 북적댔던 접수처가 눈에 선하다. 원서를 낸 후 대학교 학생식당이 궁금하다며 이리 돌고 저리 돌아 찾아낸 식당에서 쫄면을 먹었고, 굳이 그 곳까지 가서 식당을 찾아낸 게 웃겨서 친구랑 내내 깔깔댔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 때의 나와 같았을 아이들의 영정사진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아, 연이어 전해지는 뉴스들은 그냥 귓가를 맴돌다 멀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음악이 흘러나와서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jtbc 9시 뉴스는 언제나 손석희가 직접 선곡하는 음악으로 마무리를 하는데, 오늘의 노래제목은 Never die young... 이었다. ㅜㅜ
기분이 묘한 날이다. 유명기업이 소유한 리조트에 그토록 허술한 건물이 있었다는 것, 그 날림공사에 아무 죄없는 어린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 올림픽 때마다 효자종목이라며 치켜세우던 쇼트트랙이 실은 지저분한 행정으로 탈이 많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여자아이들이 금메달을 따내고야 말았다는 것. 국가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 책임을 매번 국민이 지느라 힘들고 그 와중에도 제자리를 성실하게 지킨 땀들이 오히려 국가 위신을 세워주는 상황이... 참 거지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