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스페셜
노견만세(老犬萬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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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찡이, 비비.
우리가 얘네들한테 많은 것을 얻고, 빚지고 산다는 걸 새삼 깨닫는...
그래. 참 변변히 주는 것도 없이 엄청난 것들을 얻으며 산다.
사료며 각종 용품이며 미용이며 아프면 병원에서 깨지는 돈이며
키우기 전에야 그런 돈 들어가는 거 먼저 생각할 지 몰라도
함께 살기 시작하면... 이런 종류의 사랑을 얻는 데 쓰는 그 돈푼이 구차해지지.
사랑도 돈으로 값어치를 따질 수 있다면
쓴 돈보다 번 돈이 수백만배는 더 많을 거다.
1999년 10월 생후 2개월.
엄마 친구분이 키우시던 개가 새끼를 낳았다고 한 넘(정확하게는 뇬) 주셨는데
완전 똥개 종자로 보여서 얼마간만 키우다 다른 곳으로 보낼 생각이었던 엄마.
하지만 다롱이는 알고보니 누렁이과가 아니라 단지 잡종이었을 뿐!
두어 달 후 사랑스러운 애완견의 모습으로 환골탈태. 후훗
저 빨간목줄에 방울이 달려있어서
골목에만 들어서면, 우리 식구들 발소리 귀신같이 알고 달려나오는 다롱이 소리가 들렸다.
2003년 9월에는 자궁축농증에 걸려서 큰 수술을 했고.. 직후에 홍역까지 와서 고생 많이 했다.
(오른쪽 사진 완전 애처로움ㅠ)
수술하고 한 달 뒤.
미친듯이 헥헥대다 급정색..ㅎ
무릎 위로 올라와 혼자 영화도 하나 찍으시고.. 졸음4단계.
그리고 1년 후 2004년 11월.
햇살좋고 바람 솔솔 부는 날엔, 귀 속 마르라고 뒤집어주곤 한다.
심심하면 토론 프로그램도 보고ㅋ
투명견이 되기위한 연습도 한다.
부스럭 소리만 나면 먹을 거 주는 줄 알고 고개 잽싸 돌려대고
일광욕도 좋아하고
잘 자는 우리 다롱이.
가끔은 고개를 쳐든 채 자기도 한다.
그냥 편하게 퍼져서 자도 돼.ㅋㅋㅋ
..여기까지가 2004년의 모습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작년 2008년 여름.
널부러져 일광욕하다 사진 찍으려고 다가가니 게슴츠레...
올해 3월, 북향인 내 방이 아직은 쌀쌀했던 봄날 오후...ㅎ
저 넘이 담달 8월이면 사람나이로 딱 열살인데
10년이 넘어가니까 어째 볼 때마다 안쓰럽고 가끔 울컥하기도 한다.
방송에서 개는 10년 지나면 1년에 10살씩 먹는 거나 다름없다고 하던데. 흑.
찾아보니까 개 나이는 21+4n(년수)로 계산한다고 하더라.
4만 곱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앞에 21이 붙어..
다롱이는 21+4*10=61세! 허걱..
그 10년의 세월동안 다롱이와 잠깐 헤어진 적도 있었다.
예전에 2001년도던가
아빠 일이 잘 안돼서 점 봤는데 개하고는 절대상극이라고 해서-_-
개 키울 사람 찾다 서울에 있는 동생 친구네로 보낸 것.
다롱이 가는 날 나는 정말 몇살짜리 어린애처럼 퍼질러 앉아 완전 목놓아 울고;
동생도 서울 갔다 집으로 오는데 엉엉 울면서 들어왔다.
동생이 친구집을 나온 이후로 다롱이가 계속 현관입구에 엎드려 있었다는 말 듣고 같이 또 통곡ㅠ
정말 매일을 눈물로 지샜던 것 같다.
골목에 들어서도 들려오지 않는 방울소리
현관문을 열 때 안에서 문을 박박 긁어대던 소리도 나지 않고
다롱이가 자주 자리잡고 있던 욕실 앞 발판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베란다 창가도 휑하고...
에효. 그 때 생각하면...ㅠ
2001년 동생 친구집에서 지내던 무렵.
그렇게 초상집같던 두어 달이 지나고..
동생 친구가 추석 때 다롱이를 애견호텔에 맡기고 부산 집으로 내려온다길래,
그럴바에 그냥 같이 내려와서 우리 집에 뒀다가 올라갈 때 데리고 가라고 했는데
그 때 어찌어찌 우리 집에 눌러앉혀서;; 다시 가족이 됐던 다롱이.
지금까지 10여년... 가세가 불안해지고 가족 모두가 예민해지면서 마르고 냉랭했던 집안
저 넘이 없었다면 아마 웃을 일도 없었을 것 같다.
너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은 소중한 것들을 줬지.
대화도 웃음도 사라진 집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어줬고
사랑하는 법, 아끼는 법, 때론 희생이라는 것까지
사람에 대한 감정들과는 또다른 귀한 것들을 많이 배웠다.
병원가면 나이에 비해 아직 건강하다고 하는 너에게
이제 해줄 거라곤, 달려들면 안아주고 귀찮아도 배 문질러주고
다리가 마비될 것같이 저려와도 내 양반다리 위에서 니가 곤히 코골고 자는 걸 차마 못 깨우고.
뭐 그딴 거 밖에 없구나.
오래오래 살아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