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패러독스] 서평을 보내주세요.
타임 패러독스 - 시간이란 무엇인가
필립 짐바르도.존 보이드 지음, 오정아 옮김 / 미디어윌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칼 세이건의 유명한 우주력에 따르면, 지구는 우주가 생겨난 첫 해 9월에 만들어졌다. 공룡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타났으며, 유인원은 12월 31일 밤 10시 15분에 생겨났다. 우리의 첫 번째 조상들은 밤 9시 42분부터 직립보행하기 시작했고, 10시 30분에는 현생인류가 등장했다. 인류가 탄생하기 전인 364일 10시간 30분 동안에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은하수가 생겨나고, 태양계에 세밀한 균형이 부여되고, 행성들이 그 안을 채웠다."  

우주의 나이를 1년으로 환산한 우주력은 잘 알려져 있는 것이지만, 이렇게 갑자기 맞닥뜨리게 될 때의 새삼스러운 경이로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보다. 역사책 첫 페이지에 늘 나오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1시간 30분 전에 등장했고, 25초 전인 밤 11시 59분 35초에 신석기 문명이 시작된 셈이다. 5천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한반도의 탄생은 그럼 몇 시에 태어난 셈이 되나? 삼국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내가 태어난 1900년 후반대는? 온 세계가 난리법석을 피웠던 밀레니엄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시간 속에 던져진 나의 존재를 실감한다. 내 삶이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평소에 죽음을 의식하며 살지는 않는 것처럼, 나의 존재가 굉장히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이렇게 찰나의 점과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며 살지는 않는다. 마치 내 앞에는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 것처럼 내가 사는 시간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별다른 의식이 없다가, 이런 식으로 우주 안에 표시도 나지 않는 먼지같은 내 삶을 느낄 때면.. 소름이 돋고 아연해질 뿐이다. 

[타임 패러독스]의 주제나 결론은 간단하다. 이토록 기적같이 주어진, 짧아서 더 소중한 시간을 함부로 쓰지 말고 계획을 세워 의미있게 보내자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앞에 주어진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을 다양한 관점으로 수용하라고 말한다. 즉 시간에 대한 태도를 과거부정적, 과거긍정적, 현재쾌락적, 현재숙명론적, 미래지향적, 초월적 미래지향적 시간관으로 구분하고 "강한 과거긍정적, 현재쾌락적, 적당한 미래지향적 시간관"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과거부정적인 사람은 과거의 기억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발전의 계기를 만들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과거의 기억에 얽매일 경우 자신의 모든 현재와 미래를 과거속으로 매몰시킬 우려가 있다. 현재쾌락적인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원하는만큼 자유를 누리며 즐겁게 살 수 있지만 지나치게 지금 이 순간에만 충실하다보니 미래를 보장하기 힘들고, 현재숙명론적인 사람 역시 모든 것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여 아무런 열정도 없는 타율적인 삶을 살게 된다.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철저한 계획속에 흐트러짐없는 생활을 영위해나가지만 자기자신을 지나치게 계획의 틀 안에 가두어버림으로써 심리적 압박에 시달릴 수 있고, 앞날의 성공을 위해 지금 내 앞의 작지만 소중한 일,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감정을 소홀히 취급함으로써 공허한 노년을 맞을 수 있다. 또한 초월적인 미래지향적 시간관을 가진 사람은 종교적 믿음에 경도되어 영혼의 안녕을 위해 현세의 삶을 파괴해버리기도 한다. 각각의 시간관은 그 효용성이나 의미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편향될 경우 해악으로 작용하게 되며 그것이 바로 타임 패러독스라는 것이다. 물론 한가지 시간관만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그리하여 우리는 과거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되 미래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현재 내 주변의 소중한 것들에 충실한, 유연한 시간관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한다.

말은 쉬운데 그것을 실천하거나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의 물리적인 시간을 만족스럽게 계획하는 일도 쉽지 않거니와 내 기억과 사고, 즉 나의 심리적 또는 의식적 시간을 컨트롤하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 인한 영향을 끊임없이 느끼고, 점점 무언가를 '극복'한다는 일이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운명을 탓할 때가 많아지기도 한다. 구질구질한 감정들은 벗어던지고 최대한 긍정적인 마음으로 내 시간을 설계해나가야 한다고 주구장창 강조하는 걸 보자니 뻔한 얘기만 늘어놓는 자기계발서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저자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한 자부심과 수십년 간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여 권위자로 존중받는 뿌듯함과 은퇴 이후에도 강연을 다니면서 노후를 즐기는 열정과 여유로움은 대단히 존경할만한 것이지만 저명한 학자의 성공스토리를 자신의 전문분야인 심리학 지식으로 설명한 것에 불과한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갖는 시간 인식에 관한 다양한 실험과 경험을 통한 분석은 굉장히 재미있으며 무엇보다도 인간의 성격이나 사고방식을 그들의 시간관과 연관지어 교육이나 사회문제, 인간관계까지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흥미로웠다. 숙제를 하지 않고 노는 현재쾌락적 아이와 놀고싶은 마음을 참고 기꺼이 `즉각적 만족` 대신 `지연된 만족`을 추구하는 미래지향적 아이를 다르게 교육해야할 필요성이 있으며, 그 외 다양한 시간관이 동시에 작용하는 저마다의 경우에 유연하게 대처함으로써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살테러범에 대한 초월적인 미래지향적 시간관에 근거한 분석이나 각 나라의 대통령 등 지도자들의 성향을 보수/진보가 아닌 과거긍정 혹은 현재지향/미래지향같은 각기 다른 시간관에서 유추하는 대목 역시 인상 깊었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들 역시 시간관의 차이에 기인한다는 말은 무릎을 탁 칠 만 했다. 성격차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시간관이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결국 인간관계란 상대방의 시간관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도 있을 듯 하다. 성격은 종잡을 수 없어도 시간관을 파악하는 데에는 객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식들이 있다. 애먼 혈액형이나 별자리만 들여다보지말고 자신의 시간관과 주변인들의 시간관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도 인간관계의 질을 높이는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자기계발서같은 말이 많지만, 감동 어린 이야기로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뻔한 교훈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에 관한 객관적 실험과 분석을 토대로 일반론을 이끌어내는 흥미로운 과정을 통해 새삼 자기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 나아가 내 주변과 사회, 국가 간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바라보는 관점에 훌륭한 학습이 되어주는 것은 이 책이 갖는 장점이기도 하다.   

언제 끝날 지 몰라서 더 무한하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고, 끝난다는 의식 자체를 하지 못해서 영원할 것만 같은 시간이기도 하다. 우주력의 밤 11시 59분 59초와 자정 사이, 그 1초 안의 수많은 시간대 어느 한 점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내 삶, 그렇게 우주 속으로 던져진 내 앞에, 또 던져진 이 시간들. 얼마나 짜임새있게 알뜰살뜰 꾸려가야 작은 점이나마 온전하고 또렷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주어진 시간만큼 나름대로 열심히 살다가면 그 뿐이지 싶다가도, 2008년을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의 기분은 사뭇 남다른 것이 된다.  

연말인 탓과 아울러 개인적으로도 이 책을 접한 12월의 며칠이 여러가지 상황이나 정서상태와 맞물려 매우 의미있는 독서가 되어주었다. 평소에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 행하지는 않고 있던 많은 일들을 새롭게 정리함과 동시에, 뻔한 충고같은 말들이지만 가슴 속 깊이 새겨진 글귀들 덕분에 나는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설계하는 데 좀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타임 패러독스`에 빠져 있었을 지도 모를 나의 내면을 용기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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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대하는 태도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켜준다. 특히 어떤 기억이나 상황으로 인해 괴로운 독자에게는 마치 정신치료와도 같은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 책 속에서 저자가 추천하고 있는 도서로는 

- 시간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가/로버트 레빈
- 완전한 행복/마틴 셀리그만 
-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소냐 류보머스키
-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대니얼 길버트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일반인 모두에게 자기 삶을 진지하게 성찰해볼 기회는 물론 타인의 삶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데에도 하나의 지침이 되어줄 것이며 특히 이 땅의 모든 교육자들에게 아이들을 이해하고 교육방향을 잡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로프터스와 동료들은 '가짜 기억'을 만들어내는 일이 놀랄 만큼 쉽다는 사실을 재차 증명했다. 한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디즈니랜드에서의 멋진 추억을 떠올려보라는 문구가 들어간 디즈니랜드 광고지를 받았다. 디즈니랜드 주제가를 부르며 다양한 놀이기구를 타고 벅스 버니와 악수를 나누는 등의 추억들을 어찌나 따뜻하고 열정적이고 아련하게 묘사해놓았던지, 후에 많은 참가자들이 실제로 디즈니랜드를 다시 찾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광고지에는 잘못된 내용이 있었다. 잘못된 정보가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려고 연구자들이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것이었다. 벅스 버니는 워너브라더스의 캐릭터이므로 디즈니랜드에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광고지를 본 실험 참가자들은 디즈니랜드를 방문한 기억에 관해 질문을 받자 16퍼센트가 벅스 버니와 악수한 기억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어나지 않은 게 분명한 일을 일어났다고 기억하는 경우 해가 되는 점은 무엇일까? 디즈니랜드를 다시 방문해 당신의 아이들에게 벅스 버니를 소개해줄 계획이 아니라면 해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러한 기억이 부정적인 사건에 관한 것이라면 어떨까? 인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부정적인 사건을 일어난 것으로 기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로프터스와 다른 심리학자들이 시행한 연구들을 바탕으로 볼 때 대답은 '그렇다'이다. (p.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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