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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 최신 연구로 확인하는 인간광우병의 실체와 운명
유수민 지음 / 지안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올해 5~6월 절정을 이뤘던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거쳐 오면서 전국민이 광우병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익히 들어왔던 광우병과 변형 크로이츠-펠트 야콥병(vCJD, 인간광우병)의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 한 번 돌이켜 볼 수 있고, 실제 광우병의 감염력을 실험했던 여러가지 사례를 통해 광우병은 매우 위험한 질병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저자는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라는 책 제목에 충실하여 광우병에 대한 객관적 사실과 과학적 지식을 매우 유연한 문장력으로 쉽게 기술하고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광우병의 발생 기원에서부터 이 책의 핵심인 인간광우병 발병의 전제조건을 상세하게 다루고, 마지막으로 인간광우병은 감염되기 쉽지 않은 병이며 현재는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과정은 흥미롭다. 파푸아뉴기니 포레족의 식인습관과 18세기 영국의 서퍽품종(우량종끼리 교배시켜 탄생한 양)이 보여주는 동종포식의 무시무시함, 1985년 육골분사료를 사용함으로써 시작된 영국의 광우병이 포레족의 쿠루병이나 서퍽종의 스크래피와 연관이 있음을 밝혀내기까지의 여정은 긴박감마저 느껴진다. 정상 프라이온의 α-β 구조가 잘못 접혀 변형 프라이온이 되고 그 변형된 프라이온이 정상 프라이온을 먹어치우듯 계속해서 변형시켜 간다는 것, 253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프라이온 단백질의 129번째 자리에 메치오닌(M)과 발린(V)의 조합형태에 따라 MM, MV, VV 3가지 쌍이 올 수 있는데 이것이 흔히 이야기하는 MM형 VV형이라는 것, MM형이 변형 프라이온과 더 쉽게 반응함으로써 한국인의 94.33%를 차지하는 MM형이 인간광우병에 걸리기가 더 쉬운 것이 사실이라는 내용 등등이 차분히 기술된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 당시 정부와의 대화에서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근거는 없다'던 정부측 질병관리본부 직원의 확신에 찬 대답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과학에 대한 확신이었나 정부에 대한 확신이었나?

인간광우병의 전제조건 4가지도 재미(?)있다. 인간이 그 병에 걸리려면 ① 우리가 먹는 육류의 원재료가 된 소가 병에 걸린 소나 양의 부산물이 들어간 오염된 사료를 먹어야 하고 ② 그것이 종 간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만큼 대량이거나 강력해야하며 ③ 강력하기 위해서는 양의 부산물을 먹은 소를 다시 양이 먹고, 그 양을 소가 먹는 재순환의 과정을 거쳐서 강해진 특정 스트레인이 출현해야하고 ④ 일부러 사람이 특정위험물질(SRM)을 섭취하거나 ⑤ 환자의 평균 연령대인 28세 내외에 근접해야한다. 결국 인간광우병이란 얼마나 걸리기 어려운 병인가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제3장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에서 여러가지 실험 결과를 동원하여 광우병이 정말 걸리기가 힘든 병이라는 사실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살코기는 광우병에 걸린 소의 근육을 50~100kg 정도 먹어야 인간광우병에 걸리고, 변형 프라이온은 600도 이상에서도 `제거`는 안되지만 고온일수록 `불활성화`되므로 감염력이 크게 떨어지고, 지방과 함께 섭취할 경우 프라이온 단백질이 쉽게 분리되어 역시 감염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험은 실험일 뿐 모든 것은 안전하지 않다. 인간광우병이 신종 질병이라 연구가 미흡하다는 실정을 감안하더라도, 먹을거리가 주는 치명적인 위험을 감소시키기에는 실험 결과마다 붙는 추정, 예측, 가정, 예상 따위의 말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과학적인 통계는 통계일 뿐, 사람의 목숨을 확률로 계산하여 질병의 경중을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발병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환자 당사자에게는 100%가 되는 것이고, 광우병 감염의 위험이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그 100%에 걸려들지도 알 수 없다.

불안감에 더하여, 과학이 말하는 예방법이라는 것도 다소 황당하다. 위 전제조건에 대비하여 예방할 수 있는 조치라고 말하는 것이 ① 현재 사료 공정 시스템은 안전하고 ② 종 간 장벽이 누구에게나 쉽게 붕괴되지 않는 근거로 <영국에서 광우병이 휩쓸었던 당시 인구 5,000명 중 200명이 채 안되는 수가 인간광우병에 걸리고 나머지는 무사했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③ 우리나라에는 재순환을 받아줄 정도의 양을 키우지 않으므로 특정 스트레인이 출현할 여지가 적다고 하고 ④ 특정위험물질은 안 먹으면 되고 ⑤ 기계적 회수육(햄버거, 소시지 등)이 들어간 음식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나이일수록(어릴수록) 조심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자는 과학을 하는 사람이라 정책적인 부분에 대해 관심이 없고 그 실태에 대해서도 관여를 할 생각이 없는지 모르겠으나, 현재 미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소가 사육되는 미국 도축장은 결코 위생적이거나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감독조차 허술하기 짝이 없어 육골분 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다우너 소를 도축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전혀 할 수 없다. 육골분 사료를 철저하게 금지하고 반추동물과 비반추동물의 사료를 엄격하게 분리하여 제조하기만 하여도, 즉 사료만 완벽하게 관리가 되어도 광우병의 위험으로부터 크게 벗어날 수 있다는 저자의 말대로라면, 그 결정적인 전제조건에 대한 확신이 전혀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광우병이 결코 안전하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광우병에 대해 설명하고 위험에 대한 예방책을 이야기하는 것까지는 과학자의 일이지만, 그 예방책을 실행하는 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정부의 영역이다. 과학자가 사료 제조는 안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확신하거나 특정위험물질이 철저하게 제거되어 수입된다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닐 것이다. 그런 소소한 예방법 조차, 정부의 엄격한 관리감독을 강력하게 촉구하기 보다는 개인의 끊임없는 모니터링을 강조하고 있어서 좀 의아하다. 광우병 관리가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던가?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라는 제목이, 과학적 중립을 핑계로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을 회피하고자하는 장치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어쨌거나 `과학은 광우병의 실체를 알고 있다`는 뒷표지의 문구처럼, 단지 광우병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고 싶을 뿐이라면 과학적 정보로써 부족함이 없다. 서술 과정이나 과학적인 사실 자체로는 재미있기까지 하다. 그 이상의 문제는 이 책의 범위 밖의 것이다. 미국과 한국 정부의 광우병 통제관리 능력과 의지에 여전히 의구심을 갖는다면 뭐 재미는 있었던 데에 만족할 것이고, 미국의 사료 제조 시스템을 믿고 미국의 도축장을 믿고 우리나라의 수입산 소고기 표본추출검사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저자가 언급한 몇 가지 주의사항을 지키는 것으로 광우병의 공포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산 소고기 시식 쇼를 벌였던 그 어떤 사람들처럼 말이다. 

[설문]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광우병에 대해 잘 몰랐던 독자에게는 관련정보가 상세하게 씌어있어 매우 유용할 것이고, 광우병에 대해 질리도록 들어온 사람에겐 좀 뜬금없이 유전자에 대한 경이로움이 크게 다가온다. 유전자가 제 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단백질이 잘못 접혀서 질병이 발생하는 과정, 스트레인의 개념같은 것들은 매우 흥미롭고 새삼스레 소름이 돋을 만큼 유전자라는 것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

•  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옵션)

- 육식의 종말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광우병을 철저히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싶은 사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좋은 예로 헤모글로빈 단백질에서 유전자 한 부위가 바뀌면서 생기는 `겸상 적혈구 빈혈증`을 들 수 있다. 헤모글로빈 단백질을 만들도록 지령하는 1,600개 부위 중 677번째 부위 하나가 변해서 원래 있어야 할 아미노산이 아닌 다른 아미노산이 끼어들게 된다. 글루탐산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발린이 들어가는 것이다. 아미노산은 각기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만 바뀌어도 최종적으로 단백질 전체 모양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원래 적혈구는 원형인데 잘못 만들어진 헤모글로빈 단백질이 서로 엉김겨서 낫 모양(겸상)으로 변한다. 이렇게 낫 모양이 된 적혈구는 미세한 혈관을 통과하기 어렵다. 그 결과 헤모글로빈의 주역할인 산소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빈혈을 일으키게 된다. 단 한 부위의 유전자, 단 한 부위의 아미노산이 바뀜으로써 전체 단백질이 영향을 받고 인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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