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생활에서 인간은 모두 서로를 실험하고 있을 뿐이다." 클로드 베르나르 Claude Bernard의 『실험의학 연구 입문 Introduction à l'étude de la médecine expérimentale (1865)』에 감화된 에밀 졸라는, 실험적 방법이 육체적 삶을 해명할 수 있다면, 감성적이고 지성적인 삶 또한 실험을 통하여 해명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화학에서 생리학으로, 생리학에서 인류학과 사회학으로 발전하는 경로에서, 다만 차이가 있는 것은 입증의 정도일 뿐 본질은 같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종착점에 에밀 졸라가 말하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정한 실험으로서 '실험소설'이 위치한다. 인간 정신의 진화는 감정, 이성, 실험을 거쳤는데, 먼저 이성을 압도한 감정이 신학을 창시했고, 다음으로 이성 혹은 철학이 스콜라 철학을 낳았으며, 끝으로 실험, 즉 자연 현상에 대한 연구가 감정이나 이성과는 분리된 외부 세계의 진리를 깨닫게 했다는 베르나르, 그리고 졸라의 말은 실은 아래에서 보는 것과 같이 오귀스트 콩트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들에 따를 때 진리 탐구는 언제나 감정, 이성, 실험으로 이루어진 부동의 삼각대에 의존한다. 먼저 감정이 언제나 첫 주도권을 쥐고 선험적 관념 혹은 직관을 낳고, 이어서 이성 내지는 추론이 선헌적 관념을 발전시키는 한편 그 논리적 결과를 연역하며, 끝으로 이성은 가설을 검증하기 위하여 언제나 실험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법칙은 연속적인 3단계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사고를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처음은 신학의 단계로, 여기서는 어떠한 증거도 지니고 있지 못한 즉자적 허구들만이 공공연하게 지배한다. 다음은 형이상학의 단계로, 의인화된 추상이나 본질이라 하는 것들의 일반적 우위가 그 성격을 규정짓는다. 마지막 단계가 실증의 단계인데, 이는 항상 외부 현실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 기초하고 있다. (중략) 사실 모든 것은 신학적 발상에서 시작하여 형이상학적인 논의 과정을 거쳐, 실증적 증명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일반법칙은 우리로 하여금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포용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 오귀스트 콩트, 『실증주의 서설』 중에서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고 가정하는 에밀 졸라의 결정론은 숙명론과는 다르다. 숙명론이 그 조건과는 무관하게 어떤 현상이 필연적으로 출현한다고 가정하는 반면, 결정론은 그 출현이 강제적이지는 않은 현상을 낳게 되는 필연적 조건에 주목하고, 원인을 이루는 그 조건을 바꿔주면 결과 또한 바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쨌든 졸라의 문제의식만큼은 썰 경쟁이 되어가고 있는 인문사회'과학'에서도 그 이름에 걸맞기 위해 귀담아들을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오늘날에는 뇌과학, 데이터과학 등의 발전으로 '과학 시대의 문학'이라는 졸라의 꿈이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기질상 수긍되는 바가 아주 컸다.

  에밀 졸라가 풍부한 '사실(fait)'을 바탕으로 강인한 필력('명징한 논리'로서의 문체)에 담아 쓴 여타의 글들도, 프랑스사나 '에르나니 논쟁'과 같은 역사적, 문학사적 맥락에 대한 사전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유기환 교수님의 꼼꼼한 주석 덕분에 그것이 상당하게 충족된다. 아직 2007년에 나온 초판이 소진되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알라딘 세일즈 포인트가 2018. 6. 30. 현재 342 정도다), 에밀 졸라의 주요 논문 여덟 편을 묶어 번역해 내시기로 한 것 자체가 어느 정도 결단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읽는 내내 양질의 번역과 주석에 사랑이 샘솟을 정도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더 읽을 자료 중 앙리 미트랑, 김미연 번역, 『졸라와 자연주의』(탐구당, 1993)와 정명환, 『졸라와 자연주의』(민음사, 1982), 피에르 코니, 임채문 번역, 『자연주의』(탐구당, 1985)는 지금 구하기가 힘들어 보인다. 참고로 졸라의 자연주의는 루소류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자연'과학'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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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유기환 교수님의 해설글들을 참조하여 에밀 졸라의 소설론에 대하여 짤막하게 정리해 본 글. 주석은 맨 아래에)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1)


  1898113로로르(L’Aurore)지에 발표된 원고지 80매 분량 나는 고발한다...!(J'Accuse...!)로 에밀 졸라(Émile Zola)양심적 지식인의 상징이 되었다. 드레퓌스 사건으로 인해 졸라는 재판 비용, 집필 시간 부족과 작품 판매 격감, 영국 망명 등으로 파산 상태로 내몰리고, 결국 1902년 석연치 않은 죽음까지 맞이하여야 했지만,2) 그 때문에 졸라의 문학적 지위와 업적은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졸라 앞에 놓인 도전은 위대한 사실주의자 발자크, 스탕달, 플로베르에 대한 차별화와 극복이었다. 이를 위해 졸라는 극단적 이론주의를 추구했다. 바로 자연주의(naturalisme)였다. 자연주의의 본질은 문학에 대한 자연과학적 방법론의 적용에 있었다. 졸라는 유전론과 환경결정론을 씨줄과 날줄 삼아 20권에 이르는 루공-마카르 가의 사람들(Le Rougon-Macquart, 1871~1893)을 펴낸다. 부제로 붙은 2제정 시대 하에서 한 가족의 자연적사회적 역사’(Histoire naturelle et sociele d’une famille sous le Second Empire)에서 자연적 역사가 유전론을, ‘사회적 역사가 환경결정론을 암시한 말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컨대,나나(Nana, 1880)의 주인공 나나는 선술집(L’Assommoir, 1877)의 주인공 베르베즈의 딸로, 관능과 나태라는 어머니의 일탈적 기질을 유전받고, 파리 빈민가의 타락한 환경에 영향 받아 창부로 전락한다.


  ‘루공-마카르라는 제목은 아델라이드 푸크 Adélaïde Fouque라는 여자를 정점으로 하는 한 가족에서 유래한다. 주인공 아델라이드는 루공이라는 농부와 결혼하여 아들을 하나 낳고, 3년 후 남편이 죽자 마카르라는 주정뱅이 밀수업자와 관계하여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는데, 적통인 루공 측 가계는 정상적인 삶으로, 사생아 혈통인 마카르 가계는 아웃사이더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졸라의 ‘4대 역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은 선술집, 나나, 제르미날(Germinal, 1885), 인간 짐승(La Bête humaine, 1890) 등 모두 마카르 계열의 작품들이다. 졸라는 현실의 서기가 되어 프랑스 제2제정 시대의 온갖 풍속을 그려냈다. 그것은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데, 졸라는 역사학자의 자세로 쿠데타, 부동산 투기, 은행 증권 조작, 자본집중 등 지배계급의 타락상과 그에 따른 민중의 참상을 폭로함으로써 발자크적 전통을 온전히 계승했다. 졸라는 선술집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진실을 다룬 작품이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서민의 냄새를 풍기는, 서민에 대한 최초의 소설이다.” 발자크의 인간희극(La Comédie humaine, 1830~1848)이 귀족과 중산층의 세계에 초점을 맞추었고, 플로베르도 감정교육(L’Éducation sentimentale, 1869)에서 민중을 충동적 존재로 그렸지만, 미셸 레몽(Michel Raimond)의 평처럼, 졸라는 노동자를 하나의 사회 계급으로 등장시킨 최초의 소설가였다.3)


  졸라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험을 강조했다. 그의 소설 이론이 가장 잘 드러난 책이 실험소설(Le roman expérimental, 1880)이다. 콩트의 실증주의, 텐의 결정론, 뤼카의 자연유전론, 르투르노 정념의 생리학, 베르나르의 실험의학 등의 영향을 받아 졸라는, 실험적 방법이 인간의 정신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문제는 감정 자체의 묘사가 아니라 감정 메커니즘의 형상화라는 것이다. 졸라에게 개인적 감정은 충동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실험소설가는 그러한 개인적 감정에 그치지 않고 현상의 과학적 메커니즘을 인간과 자연을 통하여 보여주는 사람이다. 졸라는 실험적 방법이 인간의 육체적 삶을 해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감성적지성적 삶을 해명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 점에서 실험소설이야말로 과학적 진화의 숙명이요, 실험과학의 종착점이어야 했다. 졸라는 자연주의 소설이 인간 심리를 대상으로 한 진정한 실험으로 이해되기를 바랐고, 사회를 작동시키는 메커니즘을 파악하여 궁극적으로 사회의 온갖 질병을 고치는 의사, ‘실험적 모랄리스트가 되고자 했다.4)


  “선과 악의 주인이 되는 것, 삶을 조절하는 것, 사회를 조절하는 것, 결국 사회주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 특히 실험에 의해 범죄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정의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과업 중에서 가장 유용하고 가장 도덕적인 과업이 아닐까?”5)

 

  졸라에게 성공을 안겨준 문학의 엄격한 과학화는 시간이 갈수록 실패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의 경직된 교리가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1887대지(La Terre)의 출판 후 비판은 절정에 달했다. 급기야 다섯 명의 무명작가가 졸라를 외설 작가로 비난하며 르 피가로(Le Figaro)지에 ‘5인 선언’(Manifeste des Cinq)이라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기에 이른다.6)


  자연주의의 원대한 꿈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사실주의와 선명하게 구분되는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였고, 소설에만 국한되고 연극, 시에서는 부진하여 문단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였으며, 에밀 졸라라는 특정 작가에 지나치게 의존하였다. 소설가에게 실험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면, 차라리 바로 과학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낫다는 비판, 유전론이 피상적으로만 적용되었다는 비판(예컨대, 제르미날의 주인공 에티엔은 어머니 제르베즈로부터 물려받은 알코올 중독의 유전자 때문에 단 한 방울의 술에서도 살의를 느끼는데,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받아들여졌다), 노동자의 불행이 열악한 환경 탓으로 돌려지는 순간 스스로 환경을 바꿀 능력이 없는 노동자는 부르주아 정부의 시혜에 기댈 수밖에 없어진다는 비판은 뼈아픈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졸라 문학의 현대성이 재조명 받고 있다. 졸라는 등장인물을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기능(fonction)으로 간주한 선구적 소설가로 떠올랐다. 그가 그린 서구 문명의 이행기는 미국 문화학자들의 학제 연구를 촉발시켰고, 미셸 푸코, 들뢰즈, 가타리 등은 마카르 계열 작품들에 대한 신화적인류학적정신분석학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롤랑 바르트의 평은 지금에도 음미할 가치가 있다. “진정한 문학적 참여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증언과 진단에 있으며, 그 점에서 프랑스 문학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가는 졸라이다.”7)




1) 에밀 졸라, 유기환 번역, 나는 고발한다(책세상, 2005), 106.

2) Jean Bedel, Zola Assassiné (Paris : flammarion, 2002) 등은 졸라의 돌연한 벽난로 가스 중독사에 대하여 암살설을 제기하였고, 그것은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3) Michel Raimond, Le Roman depuis la Révolution (Paris : Armand Colin, 1971), 110.

4) 에밀 졸라, 유기환 번역, 실험소설 외(책세상, 2007), 186-197.

5) 에밀 졸라, 유기환 번역, 실험소설 외(책세상, 2007), 40.

6) 친부 살해에 이름 올렸던 5명은 J. H. Rosny, P. Bonnetin, L. Descaves, P. Margueritte, G. Guiches였다. 후일 이들은 모두 졸라에게 사과하였지만, 이 사건은 자연주의의 위기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https://fr.wikipedia.org/wiki/Manifeste_des_cinq. 이후 자연주의가 퇴조하면서 상징주의가 새 시대의 화두가 된다. 현실과 이상의 양립이 불가능해진 19세기 말이라는 시대적 배경 하에서, 현실의 세계에 완전히 몸 던져 현실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려는 사실주의적 흐름이, 현실을 속악한 것으로 보아 인공낙원으로 도피하려는 상징주의로 옮겨간 것이다.

7) Roland Barthes, Maurice Nadeau, Sur la littérature (Paris : Presses universitaires de Grenoble, 1980),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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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성여대 심민화 교수의 멋들어진 발문과 몰리에르의 더 멋진 서문(카이사르 역을 맡은 몰리에르를 그린 니콜파 미냐르의 1658년 초상화는 더더 멋지다, 알라딘에도 위 초상화가 몰리에르의 프사로 내걸려 있다).


  (...) 그 위선자들은 조금도 농담을 받아넘기지 못했다. (...) 그래서 그들은 모두 격분하여 내 희극에 맞서 무장했다. 그들을 아프게 한 부분으로 공격하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그러기에는 그들은 너무도 정치적이었고, 자신들 영혼의 밑바닥을 알아차리기에는 너무도 처세에 밝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 훌륭한 관습에 따라 하느님을 내세워 자신들의 이해타산을 치장했다. (...)


  만약 희극의 역할이 인간들의 악덕을 교화하는 데 있다면, 어떤 이유로 그에 대해 특권을 누리는 자들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무엇보다도 국가에 한층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우리는 연극이 교화를 위한 큰 장점을 지니고 있음을 보았다. 진지한 도덕적 표현들은 대개 풍자적 표현들보다 그 효과가 덜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꾸짖는 데는 그들의 잘못을 묘사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 없다. 그 잘못들을 모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도록 공개한다는 것은 악덕에 대한 엄청난 공격이다. 사람들은 질책은 쉽게 묵인한다. 하지만 조소는 좀체 묵인하지 않는다. 고약한 사람이 되는 건 원할 수 있어도, 우스꽝스러워지는 건 조금도 원하지 않는 법이다. (...)


  쫄깃하게 전개되던 『타르튀프』가 명민하신 국왕의 지혜로 해결을 맞는 것은 힘빠지는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통렬하고 유쾌하다. 『타르튀프』가 초연 후 5년 동안이나 상연이 금지되기는 했어도, 어쨌든 몰리에르는 루이 14세로부터 각별한 지원을 받았다. 몰리에르가 과로사한 뒤 그의 극단은 다른 극단과 합병하여 1680년 국왕의 명에 따라 Comédie-Française가 된다). 아무튼 그로부터 나폴레옹이 '이미 행동을 시작한 혁명'이라고 말했던 보마르셰의 18세기 희곡은 이미 예비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 프랑스 문학의 흐름에 관하여는 http://blog.aladin.co.kr/SilentPaul/10168968를 참조하고, 18세기의 프랑스 문학은 곧 정리할 예정이다.


  덕성여대 극예술비교연구회에서 상연을 염두에 두고 옮긴 책이다 보니, 비교적 자연스럽게 잘 읽히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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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가자 사계절 아기그림책 2
안나 클라라 티돌름 글.그림, 서애경 옮김 / 사계절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읽는 이를 향해 말 걸어 책으로 초대하는 독특한 시점의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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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 (앙리4세 사망 ~ 루이14세 사망, 바로크와 고전주의)


  1610~1614 앙리4세 죽음과 마리 드 메디시스(메디치) 섭정

  1624~1642 리슐리외, 최고 국무대신으로 활동

    1637 데카르트, 『방법서설』, 코르네유 「르 시드」

  1643~1651 안느 도트리슈 섭정과 재상 마자랭

  1648~1653 프롱드 난

    1659 몰리에르우스꽝스러운 프레시외즈들


  1661~1715 루이14세 친정

     1667 몰리에르타르튀프

     1667 라신앙드로마크

     1670 파스칼, 『팡세』(사후 간행)

     1677 라신「페드르

    1682 베르사유로 이전

    1685 낭트 칙령 폐지

     1687~1697 신구논쟁

  1715 루이14세 사망




2. (전반부) 바로크와 프레시오지테(Préciosité)




3. (데카르트)




4. 고전극(Théâtre classique)


  1) 코르네유


Chimène :


Ma générosité doit répondre à la tienne :

Tu t’es, en m’offensant, montré digne de moi ;

Je me dois, par ta mort, montrer digne de toi.


내 고귀함은 당신의 고귀함에 응답해야 합니다.

나를 모욕함으로써 당신이 내게 합당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당신을 죽임으로써 나도 내가 당신에게 합당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 Corneille, Le Cid, Acte III, Scène IV




  2) 몰리에르




  3) 라신


Phèdre : De l'amour j'ai toutes les fureurs. 나의 사랑은 온갖 광기를 다 품고 있다.


- Racine, Phèdre I, 3




5. 파스칼




6. 모랄리스트와 신구논쟁



  샤를 페로(일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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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 [샤를 8세 제1차 이탈리아 원정(1494) ~ 앙리 4세 죽음(1610)]

  1515~1547 프랑수아 1세 치하

    1534 플래카드 사건

      1532 라블레, 『팡타그뤼엘』

      1534 라블레, 『가르강튀아』

     1549 뒤 벨레, 『프랑스어의 옹호와 선양』

  1562~1598 종교전쟁

    1572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1580~1588 몽테뉴, 『에쎄』

  1598 낭트 칙령


 



2. 프랑수아 라블레 (François Rabelais, 1494?~1543?)


 "Fay ce que voudras." (원하는 대로 하라)


 - 『가르강튀아 Gargantua』57장 '텔렘 수도원(abbaye de Thélème)'의 유일한 규율


 cf. 주의 기도 "que ta volonté soit faite (sur la terre comme au ciel)"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와 대조]




3. 플레야드 시인들 『프랑스어의 옹호와 선양 La Défense et illustration de la langue française』(1549)


Las, où est maintenant ce mépris de Fortune ?

Où est ce cœur vainqueur de toute adversité,

Cet honnête désir de l’immortalité,

Et cette honnête flamme au peuple non commune ?


Où sont ces doux plaisirs qu’au soir sous la nuit brune

Les Muses me donnaient, alors qu’en liberté

Dessus le vert tapis d’un rivage écarté

Je les menais danser aux rayons de la Lune ?


Maintenant la Fortune est maîtresse de moi,

Et mon cœur, qui soulait être maître de soi,

Est serf de mille maux et regrets qui m’ennuient.


De la postérité je n’ai plus de souci,

Cette divine ardeur, je ne l’ai plus aussi,

Et les Muses de moi, comme étranges, s’enfuient.


슬프다! 운명을 멸시하던 그 담대한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온갖 역경을 이겨낸 그 마음은 어디 갔을까?

영원에 대한 그 영예로운 욕망,

속인은 지니지 못할 그 고귀한 영감은 지금 어디 있을까?


그 시절 저 먼 강가의 풀밭 위

달빛 아래서 뮤즈들과 더불어 자유롭게 춤추곤 했건만,

저문 날 어스름 밤에 뮤즈들이 주곤 하던

그 감미로운 즐거움은 어디 있을까?


이제 운명은 나를 얽어매고

자유롭던 내 마음은

나를 괴롭히는 숱한 불행과 슬픔의 노예가 되었다네.


나는 이제 후세에 이름을 남길 생각은 없으며,

신성한 열정도 역시 지니고 있지 않으니,

그리하여 뮤즈들은 마치 모르는 사이처럼 내게서 달아나 버린다오.


- Joachim du Bellay, Les Regrets VI




4. 종교전쟁과 참여문학



5. 몽테뉴 『에쎄 Les Essais』


철학에 마음을 쏟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Que philosopher, c’est apprendre à mourir.


(...) ce qui constitue une sorte d’apprentissage de la mort et offre une certaine ressemblance avec elle. C’est aussi que toute la sagesse et le raisonnement du monde se concentrent en ce point : nous apprendre à ne pas craindre de mourir.

그것은 죽음을 배우는 일이고, 어떻게 보면 죽음과 닮아 가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예지와 사유는 결국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이 한 점에 귀착된다.

- 제1권, XIX 


Le peuple se trompe: (...) La grandeur de l'âme n'est pas tant tirer à mont et tirer avant comme savoir se ranger et circonscrire. (...) Les plus belles vies sont, à mon gré, celles qui se rangent au modèle commun et humain, avec ordre, mais sans miracle ni extravagance.

사람들은 흔히 잘못 생각한다. (...) 영혼의 위대함이란 높이 올라가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기보다는 한계를 정하여 조절할 줄 아는 데 있다. (...) 내 생각에 가장 아름다운 삶이란, 기적이나 과대망상 없이, 보통 인간의 본보기에 따라 질서 있게 처신하는 것이다.

- 제3권, XIII (마지막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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