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인용자 추가: 남성) 자아는 자신에게 타자가 될 수 있는가? 아버지가 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 레비나스


  파트너를 미국으로 유학 보낸 아빠의, 육아를 통한 "변증법적" 성장기. 생각 깊은 선배 아빠가 먼저 낸 생각의 길을 따라가니 큰 도움이 된다.

  언어로 된 아빠의 계획과 규범을 언어가 없는 아이는 알아듣지 못한다(21쪽). 아빠는 물론, 아이만의 '볼레로', 내적 리듬을 존중하고, 그것이 더 심화-발전-변주되도록 돕는 민감함을 지녀야 한다(61쪽). 언젠가는 "무의식의 독재"로부터 벗어나 "언어라는 아름다운 사슬"에 묶이게 될 아이가, 먼저 '판단 없는 신선한 시선'과 생명의 문법에 따라, 생명이 알려주는 소리를 내며 언어 제국의 난민이자 '시인'으로 충실히 살아갈 수 있게 기다려주어야 한다(70, 101쪽). 아이의 직관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온전한 상태로 바라보는 훈련의 결과로 주어진다. 사물과 사태를 커버로 덮어씌우지 않고 그 자체로 다가갈 때, 때로는 자연스럽게 상처입고 이내 자연스럽게 회복되면서 자연의 순환에 몸을 맡길 때, 사물과 대화 나눌 수 있게 된다(97쪽).

  그렇지만 동시에 아이는 규칙 외부('돌발적인 것')에 머물러 있기보다 규칙 내부('만남 가능성', '소통 가능성')에 들어오기를 희망한다. 진정한 창의성은 규칙 외부에서 비롯하지 않는다. 부모가 아이에게 규칙을 제공해 주지 않으면 아이는 부모를 존경하지 않게 되고, 자신의 충동을 억누르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규칙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규칙을 넘어선 자유를 얻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규칙을 주되,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덜 요구해야 한다. 선택의 자유를 주고 어떤 선택이든 존중하는 아빠의 배포가 아이에게 달금한 자유를 배울 수 있게 한다(36-37, 42쪽).


"긍정적인 정체성은, 비록 당분간은 동물과 다름없는 상태이긴 해도 자신은 온전하고 훌륭하며 환영받는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품 안에서 아기는 결국 독립이 목표인 이후의 발달 과정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시켜 줄 경험을 쌓는다. 충격적이고 위협적인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비록 수동적이지만 거기에 참여하는 것은 분주한 어머니의 품 안에 있는 아기의 운명이자 아기의 자신감 배양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자아 개념을 형성하는 것 또한 아기가 품 안에서 하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다."

- 진 리들로프,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 중에서


  부모로부터 격리되어 자란 아이가 물리적으로 독립될 수는 있어도 내적으로는 오히려 의존 성향이 강해지거나 나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충분히 의존할 만한 대상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형성되지 않고서는 인간은 독립적 존재로 성숙하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을 보호하거나 지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느낄 때, 스스로 뭔가를 하고자 결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는 격리보다는 만남에서 참되게 된다."(김상봉) 부모와의 격리가 아닌 만남에서 '홀로 주체'가 아닌 '서로 주체'가 된다(82-83쪽).

  아이의 의존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부모로부터 독립시키려는 시도는 인간의 본성과 조금도 맞지 않다. 진 리들로프에 따르면, 일찍 품의 박탈을 경험한 아이들은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리고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독립심이 부족해진다. 이런 아이들은 자라서 새 옷, 새 자동차, 승진 등을 끝없이 갈망한다. 병적인 자아도취에 빠지는 배우, 여러 개의 학위를 수집하는 학자, 끝없이 모험을 떠나는 모험가도 어쩌면 품을 박탈당한 사람들일 수 있다. '품', 즉 "자신의 '존재'를 용인받을 경험"의 박탈이 끊임없는 인정 요구를 낳고 중독 증상을 유발한 것이다.

  가장 독립적인 아이는 사실 가장 의존적인 아이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용납하는 품에 안긴 '절대 의존 상태'로부터 점점 독립심을 키워 나간다. 절대 의존 욕구의 적절한 만족을 얻은 아이는 불필요한 인정투쟁을 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욕심을 내지 않는다.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므로 육아는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의 타고난 감각에 의지하여야 한다(84쪽).


  우리는 아이가 일으킨 문제에 대해, 부모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억울하게 책임진다고 생각하지만, 아이야말로 자신의 존재 자체로 책임진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는다. 아이는 아빠 엄마의 과오와 판단착오, 미숙한 양육을 자기 존재의 어느 한 부분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명백하게 부모의 책임이지만, 책임의 대가는 아이가 안고 살아간다. 전 존재로 아빠 엄마의 잘못을 살아간다. 그것이 아이의 부모에 대한, 전적이고 자발적인 사랑의 표현임을 잊지 말자(117-118쪽). 아이의 폭력성은 반응을 부르는 간절한 요청의 한 형태이다. 아이가 과도하게 행동하고, 공격성을 내보인다면, 아이의 자극-반응 실험(놀이)에 게으르게 참여하지 않았는지, 양육자는 되돌아 보아야 한다(130-131쪽). 이 사회에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스스로 해소할 길이 거의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218쪽). 아이는 '나'에게 윤리적 책임을 갖도록 명령하고 호소하는 '타인'이고 '얼굴'이다(134-135쪽).

  그리고 혹시라도 지금, 이 기쁘면서도, 나쁘면서도, 고통스러운, 하지만 자발적인 책임을 질 파트너가 함께 있다면, 책임을 분담할 수 있다는 그 단순하지만 반드시 당연하지만은 않은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깨닫자(118쪽).


  다음은 책에서 인용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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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 다스 베이더와 아들 시공그래픽노블
제프리 브라운 지음, 임태현 옮김 / 시공사(만화)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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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귀여움! 스타워즈 팬들의 취향을 저격할, 아들 키우는 아빠의 ‘애증‘어린(?) 삽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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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 베이더의 꼬마 공주님 시공그래픽노블
제프리 브라운 지음, 임태현 옮김 / 시공사(만화)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귀엽고 재미있고 걱정된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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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사회학, 지식사회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카를 만하임이 35~36세(1928~1928년)에 쓴 입체적 세대론(지식사회학은 인간의 사상과, 그 사상이 발생한 사회적 상황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그 기원은 마르크스·엥겔스의 『독일 이데올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대문제는 '멱급수'(

) 내지는 다성음악(polyphony), 특히 '푸가'(fugue, 하나의 성부가 주제를 제시하면 다른 성부가 그것을 모방하면서 대위법에 따라 좇아가는 악곡의 형식)에서 서로 다른 수평체계(성부, 세대 엔텔레키 Generationentelechie)에 속하는 개별 음들의 수직적 만남에 의한 임시 화음(Scheinakkord)[Pinder(1926)]으로 이해되어야 한다(30, 81쪽).


  만하임은 '청년세대는 진보적이며, 구세대는 그 자체로(eo ipso) 보수적'이라고 하는, 세대 연구자들이 무비판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가정에 반대한다. 하나의 세대를 등질적 집단으로 보는 단순한 이해에도 반대한다. "동일한 '실제 세대'(Generationszusammenhang, generation as actuality) 내에서 같은 경험을 각각의 서로 다른 방법으로 소화하는 집단들이 다양한 '세대 단위'(Generationseinheit, generation unit)를 구성한다."(67쪽). 만하임은 ① 단선적 역사관을 바탕으로, 생물학적 요소와 양적 시간에 천착하는, 실증주의의 '수직적 세대론', ② 동시대에 서로 다른 세대가 내는 다른 목소리에 바탕 두어 주관적 경험, 질적 시간에 집중하는, 낭만주의의 '수평적 세대론'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면서, ③ '동시대의 비동시성'(Ungleichzeitigkeit des Gleichzeitigen)을 중층적, 입체적, 동적으로 포착하고자 하는 '구조적 세대론', '사회운동론적 세대론'을 전개한다. 즉 청년의 진보성, 내지는 특정 세대의 진보성 혹은 보수성이라고 하는 단편적 이해에 반대하는 것이다.


  옮긴이가 많이 애쓰신 것 같은데도 문장이 꽤 딱딱하지만, 세대 연구의 입구로, 생각할 거리, 분석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임이 분명하다.


  카를 만하임의 책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번역되어 있고, '만하임, 그 후'라 할 수 있는, 『'세대'란 무엇인가?』라는 책도 나와 있다. 국내서는 박재흥의 저서가 대표적인데, 한국의 세대문제』(나남, 2005)는 검색되지 않는다.




  옮긴이가 쓰거나 옮긴 책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다음은 만하임의 저서들과, 『세대문제』와 함께 볼 수 있는 참고문헌이다. 독일어 문헌들이 많은데, 알라딘에서는 거의 검색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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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영어 유치원 동요 들고 다니는 동요 그림책
애플비북스 편집부 글, 조화평 그림 / 애플비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성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사소한 놀이나 장난 정도로 치부하는 이런 시각을 공유하고 퍼뜨리기 때문에, 그것이 확대되어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의 또래 성폭력이 위험 수위에 오르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자신의 행동이 왜 범죄가 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며, 몰카에 리벤지 포르노가 난무하고 광기 어린 데이트 폭력, 이별 보복, 가정폭력 등 여성에 대한 혐오·폭력·살인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위험천만한 사회가 된 것이다. ˝Georgie Porgie˝ 노래는 하루빨리 책에서 삭제되길 바란다. 그림까지 정말 별로다.

차를 마시고 싶으면 스스로 끓여 마실 일이지 Polly와 Sukey(모두 여성에 쓰는 이름이다. https://en.m.wikipedia.org/wiki/Polly_Put_the_Kettle_On 참조)에게 명령조로 시키는 ˝Polly, Put the Kettle on˝이나, 바다에 나간 금발의 Bobby Shafto가 돌아오면 그와 결혼할 거라는 ˝Bobby Shafto˝도 영 못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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