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통치론 ㅣ 까치글방 120
존 로크 지음, 강정인.문지영 옮김 / 까치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로크는 (성경을 자주 인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세의 신학적 전통과 단절하고, 새롭게 등장한 개인들의 자연권에 기반해서 국가(Commonwealth)를 건설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는 그의 인간학적 혁신에 의해 뒷받침되는데, 그 하나가 바로 '의식(consciousness)' 개념에 기반을 둔 인격적 동일성이고(『인간 지성에 관한 시론』), 다른 하나가 '소유'에 기반을 둔 시민사회에의 소속입니다(『통치론』). 로크는 인간의 본질에 관해 모든 지식이 궁극적으로 경험으로부터 나온다는 온건한 경험주의적 입장을 취합니다(즉, 인간의 본질은 신이 자연에 투사한 선험적 질서 속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보편적 본유적 도덕 관념이나 종교 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은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상이한 경험들에도 불구하고 '의식'이라는 불변항을 통해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고, 이로부터 도출되는 자기의식과 그것의 교통가능성이 계약을 통한 '사회적 유대'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개인들 사이의 계약은 의식의 교환뿐 아니라 사물의 교환을 내포하고, 그래서 모든 개인이 의식만큼이나 특정한 사물을 배타적으로 소유한다는 점이 추가로 논증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로크는 소유를 '노동'이라는 범주와 연결합니다. 즉, 로크에 따르면 모든 개인은 의식을 소유하듯이 육체를 소유하고,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일체의 사물들에 자신의 노동을 부가함으로써 공유물을 사유재산으로 만들 권리를 갖게 된다고 합니다(이러한 생각이 '노동가치설'의 기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의식과 육체의 소유라는 개인의 고유성을 매개로 소유와 노동이 혼합된 자연권 개념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소유권은 재산뿐 아니라 생명, 자유에 대한 소유라는 요소도 포함합니다(일반적으로 로크에 대해서는 비소유자들을 어떻게 공동체로 묶을 것인가가 공백으로 남아 있다는 비판이 가해지는데, 공동체 구성원리로서의 소유의 권리와 그에 대립되는 인민의 권리라는 구도에서 보았을 때 소유권 관념에 있어서 로크가 갖는 이러한 모호성 내지 다의성이 새롭게 조명될 수 있을까요?). 화폐의 발생과 더불어 재산의 축적이 가능해지고, 소유권 사이의 상호충돌은 보다 빈번하고 격렬해집니다. 이에 공통의 재판관으로서 국가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개인들은 자신의 자연권을 보다 안전하게 향유하기 위하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 처분권을 정부에 위임할 것을 결의하게 됩니다.
명예혁명이 있은지 2년 후인 1690년에 출판된 이 책은(책 내용 대부분은 명예혁명 전에 쓴 것입니다) 근대 자유주의 정치이론을 정초한 최초의 저술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이후 '자유주의의 민주화'를 표방한 '진보적 자유주의'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로크가 권력의 양도를 통한 '제한정부론'을 주창한 것으로 배워 알고 있는데, 과연 루소에 비해 온건하게 나아가는가 싶더니 마지막 장인 19장에서는 부당한 전제적 권력에 대한 가차없는 저항권의 옹호로 끝을 맺었네요. 여기에 이르면 문장도 더 격정적으로 되는데, 저항권의 개념과 요건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反폭력의 관점에서) 더 급진적으로 읽을 수 있는 여지마저 보입니다.
덧) 로크, 루소를 써놓고 보니 홉스가 빠졌는데, 『리바이어던』은 진석용 교수님 번역의 나남출판사 본, 최공웅 변호사님, 최진원 교수님 번역의 동서문화사 본이 있지만, 분량이 만만치 않으니 그 전에 살림출판사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로 나온 김용환 교수님의 『리바이어던』(살림)을 읽으시면 홉스 사상을 이해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될 것입니다. 책의 후반부에 원전의 발췌 번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책을 급하게 냈는지 오탈자가 좀 많습니다. 강정인 교수님께서는 리차드 턱, 『홉즈의 이해』(문학과지성사), 어네스트 바커, 『로크의 이해』(문학과지성사)를 번역해 내시기도 했고(동 출판사, 동 역자의 퀜틴 스키너, 『마키아벨리의 이해』까지가 세트입니다. 참고로 『군주론』도 까치출판사에서 나온 강정인 교수님 번역으로 보시면 됩니다.), 『서양 근대 정치사상사』(책세상)라는 책도 쓰셨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조지 세이빈, 성유보 옮김, 『정치사상사 1, 2』(한길사)가 많이 읽혔고, 平田淸明, 장하진 옮김, 『사회사상사』(한울) 도 있습니다. 윤종희 박상현, 『마르크스주의와 정치철학 및 사회학 비판』(공감), 에티엔 발리바르, 윤소영 옮김,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공감)은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입니다. 강유원 님께서 쓴 『서구 정치사상 고전 읽기』(라티오), 『인문 고전 강의』(라티오)도 참고하세요.
"(...) 그럴 바에야 그들은 동일한 논거에서 정직한 인간이 강도나 해적에 대항하면 무질서와 유혈사태를 초래하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편이 차라리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 어떤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면 그 책임은 자신의 권리를 방어한 자가 아니라 이웃사람의 권리를 침해한 자에게 물어야 한다. 만약 결백하고 정직한 사람이 평화를 위해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뺏으려는 자에게 순순히 양보해야 한다면, 오직 폭력과 약탈이 존재하는 그러한 세계에는 도대체 어떤 종류의 평화가 있을 것인가. 그러한 세계는 강도와 압제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유지될 것이다. 어린 양이 아무런 저항 없이 그의 목을 사나운 늑대에게 물어뜯기도록 내밀었을 때, 그것을 강자와 약자 사이에 존재하는 탄복할 만한 평화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 인민이 항상 폭군의 무제한적인 의지에 신음하는 것과, 통치자가 권력을 방만하게 행사할 때 또 권력을 인민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괴하기 위해서 사용할 때 저항을 하는 것 중 과연 어느 편이 인류에게 최선인가? (...) 폐해가 인민의 방종이나 통치자를 합법적 권위로부터 끌어내리고자 하는 그들의 요구에서 더 자주 발생하였는가 아니면 통치자들의 오만과 인민에 대해 자의적인 권력을 탈취해 행사하고자 하는 그들의 기도에서 더 자주 발생하였는가? 무질서를 최초로 야기한 것이 탄압인가 불복종인가(후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