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미술 감정 10년 -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10주년 기념 백서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엮음 / 사문난적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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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 설립으로 시작하여, 2003년 사단법인 한국미술품감정협회(미술품 감정의 학술적 연구 바탕을 마련하기 위하여 2001년 가칭 '한국미술품감정가협회' 결성, 2년 준비기간 가진 후 사단법인 등록)와 업무 제휴, 2006년 사단법인 한국화랑협회와 업무 제휴(1982년경부터 한국화랑협회 산하 감정위원회에서 감정 업무를 하여 오다가, 보다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감정을 위하여 통합)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10년사를 다룬 자료집 내지 백서라 볼 수 있겠다(책은 2013년 5월에 나왔다).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동안, 562명 작가의 작품 5,130점을 감정하였다. 상세 목록은 책에 수록되어 있다.

 

 박수근 <빨래터>, 이중섭 <물고기와 아이>, 윤중식 <아침> 등 굵직한 진위 시비를 위주로 그간의 흐름을 개관할 수 있다는 점은 좋다. 크고 작은 유혹과 압력, 때로는 신변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까지 있었을 테지만(미술품은 돈으로 사고 파는 '상품'이 되면서부터, 언제나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위험한 물건'이 된다), 소신을 가진 많은 분들의 보이지 않는 분투가 있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한국의 감정 실무가, 시대에 걸맞은 '객관화' 노력, 다시 말해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고민을 충분히 기울이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오랜 세월 미술품을 접한 전문가('도사')들의 직관과 안목('느낌적인 느낌')이 미술품 진위 판단에 중요한 전거가 될 수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단, 한국에서는 감정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반드시 '감정' 분야 전문가인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그런데 책에 나오는 여러 글과 말 사이 사이에서는, 정황사실과 간접증거를 종합하여 판단하는 방식에 관한 전문가답지 않은 견해, 통계자료에 대한 이해 부족, 과학 감정에 대한 그릇된 오해와 불신 같은 것이 '느껴져서' 우려가 많이 되었다. 예컨대, 감정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개량·개발하여 나갈 수 있는 것임에도, 특정 감정기법이 가진 제한성에 관한 한정된 경험만을 바탕으로('방사성 동위원소에 의한 연대 측정은 고작 50여 년 역사를 가진 한국 근현대 미술품 감정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비판이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것 같다), 마치 '과학'이라는 말이 붙은 기법 '전반'이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는 '비예술적' 방법인 양 단정짓거나, '안목 감정이 과학적 방법보다 우월하고 과학 감정은 안목 감정을 보완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말하는 자신감("우리의 눈과 뇌가 가장 과학적이다")과 '비과학적' 편향에는 도저히 동의하기 어려웠다(물론 이러한 편견은, 한국에서 미술 감정의 역사도 짧지만 '과학' 감정의 역사는 더더욱 짧고, 전문가는 거의 없다시피 하며, 그래서 소위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여 차별화한다고 하는 분들이 '결과 해석'에서는 종종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 비약과 '비과학성'을 보였기 때문에 강화된 측면이 있다. 과학 감정은 기본적으로 진품을 확인하기보다는 위품을 가려내기 위한 것이고, 결론을 '확률적으로' 낼 수 밖에 없는 것임에도, 곧잘 확신에 찬 단정이 내려지고, 그것이 오류로 밝혀지는 경우들이 있었다.). 우리보다 미술 감정 역사가 길고 시스템이 체계화되어 있으며 전문가 풀이 두터운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독일, 미국, 일본 등과(프랑스, 이탈리아 등에는 '사법감정사'도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최신 감정 기법을 부지런히 교류하여야 하지 않을까(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세분화된 전문가 양성 노력은 당연히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국내에 나와 있는 책이 많지 않은데, 다음 기회에 언급하기로 하고, 비매품이지만 사단법인 한국미술품감정협회에서 낸 두 권의 논문집을 소개한다(위 『~ 10년』에, 감정위원들은 사단법인 소속이고,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은 행정사무를 전담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2014년 연구집에는 김환기, 이대원, 오지호, 김창렬, 천경자, 김종학 등 주요 작가들을 다룬 김미정, 기혜경, 김인아, 최정주, 김이순, 김기리, 김상균의 논문이, 2015년 연구집에는 임직순, 도상봉, 윤중식, 권옥연, 최영림의 작품에 관한 김미정, 김인아, 이경은, 이호숙(이전에 게시한 『미술시장의 법칙』의 저자), 최정주, 박혜경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전히, 이것이 최선일까, 글들이 제시하는 요소들이 '종합적 고려'에 참고되는 사항을 넘어 결정적 판단기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허망함이 든다. 100% 완벽히 들어맞을 수는 없기에 어느 정도 '자의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른바 '작품 시기 구분'('피카소 청색시대'와 같은)에 꿰어 맞추는 듯한 인상도 받는다(시기 구분이 관행처럼 '10년' 단위로 이루어질 경우, 자의성은 더 커진다). 설득력 없는 언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수사(修辭)의 상찬을 넘는 '분석'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연구가 감정의 기초자료로 쓰일지, 위작의 참고자료로 쓰일지 의문이라는 생각마저 간혹 들었다.

 

 '감정'과 '비평'은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러 분야에서, 때로 '작품에 대한 비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평문을 위하여 작품을 동원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언제까지고 비평가적 입장에 선 '아우라 감정'만 고집해서는, 검은 배후의 침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체계적·객관적 방법론의 확립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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