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90
신용목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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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곁 (신용목)

십자가와 옥탑 사이로 벌겋게 떨어지는
둥근 해, 중세의 비밀을 덮어주고 있다

머리를 늘이고 앉은 처녀의 가슴에도
봉긋한 비밀이 담겨 있다, 덮지 않으면 불온해지는

건너 밥집 식탁은 둥글다 삽질하듯 숟가락이
메워지지 않는 입속으로 밥을 던진다

채찍 자국처럼 길게 뻗은 철로를
끊임없이 움켜쥐는 바퀴들,

둥근 것들은 떠난 뒤에도
떠난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감당하지 못할 사랑을 덮어주는 것은 이별이다
둥글게 떨어지는 눈물이다

도굴로는 짐작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
둥근 봉분이 뜨겁게 안고 있는, 묵은 시간

파도 파도 흙뿐인 이 지상의 비밀을
덮으며, 하루가 제 일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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