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 지향의 일본인
이어령 지음 / 문학사상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이분의 책들은 읽을수록 정말...

놀랍다. 경탄스럽다.

비록 헌책방에서 단돈 2,200원에 구입했지만, 페이지 페이지마다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역작이다.

신통방통한 내용이 워낙 풍부하지만, 나는 차도 술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이 부분도 재미있게 읽혔다. 일본에 관한 내용은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정신의 액체, 차와 술

전설에 의하면, 차는 달마의 눈꺼풀이다. 수행중에 졸음이 와서 눈꺼풀이 감기게 되자, 달마는 그것을 도려 내어 뜰에 던졌다. 그것에서 싹이 나와 나무가 된 것이 바로 차나무라는 것이다. 분명히 차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계를 끝없이 응시하는 달마의 맑은 시선이 있다. 그것은 졸음을 깨우는 물이다. 새벽의 샘물처럼 인간의 눈을 투명하게 하는 눈을 뜬 물이다. 과학적으로 카페인이 들어 있는 액체라고 해버리면 그뿐이지만, 우리는 아무래도 한 잔의 차에서 인간의 의식을 눈뜨게 하는 어떤 긴장된 정신 그 자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반대의 극에는 이태백의 전설과 함께 있는 물ㅡ술이 있다. 그렇다. 술도 또한 물의 정(精)이다. 이태백의 환각적인 눈꺼풀, 달을 바라보는 그 몽롱한 눈꺼풀에 덮인 물ㅡ그것은 깨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잠재운다. 그 도취의 힘은 수평선을 향하는 파도의 운동처럼 인간의 의식을 끊임없이 흔들어, 먼곳으로 이끌어 간다. 인간이 만든 이 두 개의 물이야말로, 인간 문화의 두 지향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액체인 것이다. (중략)

술이나 차나 모두 일상적인 정신에 어떤 자극 효과를 주고 있으나 그 특성은 정반대이다. 한쪽은 '잠을 깨우고' 다른 쪽은 '취하며 잠재우고', 더욱이 한쪽은 '마음을 집중시키고' 또 한쪽은 '마음을 느긋하게' 한다.

무소 소세키가 『몽중문답』에서 말했듯이 차는 '몽매함을 물리치고 각성케 하여 도행에 도움'이 되고, 술은 도취를 불러 시인을 환각의 나라로 유인해 준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차의 카페인은 '축소의 문화[다회茶會]'를, 술의 알코올은 '확대의 문화[주연酒宴]'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시대의 기리시탄(크리스찬) 선교사, 자비엘을 놀라게 할 정도로 술을 좋아한 일본인들이었지만, 그리고 다회에서는 술도 나와 차와 어깨를 나란히 해왔지만, 역시 최후의 승리는 차 쪽에 있었다. 그것은 일본의 문화가 확대보다 축소지향이 강했음을 증명한 것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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