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론 -상 - 경제학고전선 애덤 스미스, 개역판 국부론 시리즈
아담 스미스 지음, 김수행 옮김 / 비봉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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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인내가 필요한 책;;; 고작 (상)권을 읽는 데 매우 오랜 세월이 걸렸다(그래서 기분 전환 삼아 '애덤 스미스 구하기'를 먼저 읽은 것. 하지만 원전을 직접 읽기 전에 특정한 입장에서 인용, 해설된 개론서를 먼저 접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지를 가두기 때문이다. 개론서가 좋은 마중물이 되는 경우도 물론 있다. 어찌되었든 이번엔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 힘이 많이 들었는데, 『국부론』도 안 펼쳐보고 경제학을 공부했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운 일 같아서 꾸역꾸역 억지로 읽어냈다.

다루는 주제의 폭이 대단히 광범하고(이른바 ‘(정치)경제학’이 분화하기 이전에 쓰인 책임에도, 의외로 경제학의 기초개념들 다수가 맹아적인 형태로나마 이미 대부분 다뤄진다), 동원된 자료가 시시콜콜하다 할 정도로 방대하다.

아직 (하)권을 읽기 전이니 구체적인 언급은 미루고, 몇 가지 단상만.

먼저,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은 『국부론』에서 단 한번 언급될 뿐이다(4편 2장). 해당 부분의 맥락상으로도 그것이 공식화, 정형화된 교육내용처럼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른 균형의 달성)이나 시장의 가격기구를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닐 뿐 아니라, 애덤 스미스 사상 전체로 보면 이는 극히 부분적인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한 오해와 과장(침소봉대!)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차라리 부분과 전체의 문제 내지 사회의 조화(혹은 예정조화?)에 관한 개념이다. [참고로,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한번(4부 1절 10장), 『철학적 주제에 관한 에세이』에 수록된 「천문학 에세이」에서 한번(3장 2절) 쓴 것까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을 총 3번 사용했는데 매번 다른 의미로 썼다(원문을 확인해보아야겠지만, 나의 깜냥으로는 그 의미적 복수성과 관련하여 정관사가 아닌 부정관사 ‘a'가 쓰였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것 같다).]

그런데, (아직 생각이 가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이에 관해 애덤 스미스의 철학에는 어떤 궁지 내지는 난점이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국부론』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상주의의 비판적 극복으로서, 애덤 스미스는 책 곳곳에서 (경쟁 제한을 꾀하는) 상인과 제조업자의 이익 추구가 사회 전체의 일반이익과 충돌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또 한편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또는 빵집 주인의 자비가 아니라 자신의 돈벌이에 대한 그들의 이기심과 관심 때문”이라는 유명한 구절을 들면서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은 개인의 이기심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은 결과-조화와 공공선-를 가져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평생을 두고 대결했던 버나드 맨더빌의 주장-개개인의 부도덕이 공공선을 만든다-과 묘하게 겹치게 된다. 지금은 잠도 오고,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만 맴도는데, (하)권과 『도덕감정론』을 읽으면서 좀더 고민해보려 한다.

끝으로 놀라지 말 것! 다음은 주류경제학의 비조,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인용한 것이다(1편 8장).

“고용주들은 수적으로 적기 때문에 훨씬 더 쉽게 단결할 수 있으며, 또한 법률은 고용주들의 단결은 인정하거나 적어도 금지하지 않지만, 노동자들의 단결은 금지하고 있다. 노동가격을 인하시키기 위해 단결하는 것을 반대하는 의회법률은 하나도 없지만, 노동가격을 인상시키기 위해 단결하는 것을 반대하는 의회법률은 많이 있다. 모든 쟁의에서 고용주들은 훨씬 오랫동안 견딜 수 있다. 토지소유자․차지농업가․공장주․상인은 노동자를 한 사람도 고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획득한 자본으로 1년 또는 2년은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직업을 가지지 않는다면, 1주일을 버틸 사람이 많지 않으며 1개월을 버틸 사람은 거의 없고 1년을 버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기적으로 보면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필요할 것이지만, 그 필요성은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만큼] 직접적인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의 단결에 관해서는 자주 듣지만 고용주들의 단결에 관해서는 거의 듣지 못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 때문에 고용주들의 단결은 매우 드물다고 상상하는 사람은 이 문제뿐만 아니라 세상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고용주들은 노동임금을 현재의 수준 이상으로 인상시키지 않기 위해 언제나 어디서나 일종의 암묵적이지만 끊임없는 통일된 단결을 맺고 있다. 이 단결을 위반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매우 인기 없는 행동이며 이웃사람들과 동료로부터 비난을 받을 행동이다. 우리는 사실상 이러한 단결에 대해 거의 듣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이 단결이 아무도 주의하지 않는 평상시의 그리고 자연적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고용주들도 노동임금을 현재의 수준 이하로 인하시키기 위해 때때로 특별한 단결을 맺는다. 이 단결은 항상 실행의 순간까지 매우 조용히 비밀로 맺어지며, 노동자들이 [때때로 그러한 것처럼] 저항 없이 항복할 때 그 단결을 뼈저리게 느끼지만 다른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다.”


p.s. “나를 매력적으로 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날 좋아해주는 건 내 책들뿐일 거야(애덤 스미스, 친구에게 자신의 서재를 보여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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