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수련 옮김 / 인간사랑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1989년에 간행된 이 책은 그의 가장 초기 저작이지만 지젝의 핵심 사상이 모두 담겨있다고 이야기될 정도로 중요한 텍스트입니다. 이제 겨우 시작이고, 이어질 그의 다른 책들(지젝은 공부도 하고, 영화도 보고, 연애도 해가면서 도대체 언제 그렇게 많은 책을 써/싸제끼는 것인지!!!)에서 주요 주제에 대한 변주가 계속 이루어질 것이니만큼 지젝에 대해서는 일단 말을 아끼기로 하겠습니다. 그의 문체는 신선하고 위트 넘치지만, 마르크스, 라캉, 무엇보다 특히 헤겔에 대한 어느 정도의 독서가 되어 있지 않으면 다소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한동안은 지젝이 정세 ('분석'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평'의 주요한 이론적 전거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느낌도 듭니다.

맛보기로, 지젝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끌어와 설명하고 있는 대목을 소개해드립니다. 표현을 약간 다듬었습니다.


"문학에서 헤겔에 대적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이는 아마도 제인 오스튼일 것이다. 『오만과 편견』은 『정신현상학』에, 『맨스필드 공원』은 『논리학』에, 『엠마』는 『백과사전』에 필적한다. 우리는 『오만과 편견』에서 오인으로부터 유래하는 진리의 변증법에 관한 완벽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엘리자벳과 달시는 각자 상이한 사회적 계급에(그는 부유한 귀족 가문에, 그녀는 빈곤한 중산층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오만 때문에 그의 사랑은 엘리자벳에게 가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엘리자벳에게 청혼을 하면서 그는 그녀가 속한 세상에 대한 경멸을 그녀에게 솔직히 고백하였고 그녀가 그의 프로포즈를 전례 없는 영광으로 받아들이길 기대한다. 하지만 엘리자벳은 그녀의 편견 때문에 그를 거만하고 허영심에 가득 차서 우쭐대는 인물로 바라본다. 그의 오만한 프로포즈는 그녀에게 모멸감을 주고 그녀는 그를 거절하게 된다. (...) 그들의 관계가 결렬된 후 그들은 각자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소설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의 결혼으로 끝을 맺는다.

이 이야기가 지닌 이론적인 흥미는 첫번째 만남의 실패, 타인의 실재적인 특성에 대한 이중적인 오인이 최종 결론의 실정적인 조건으로서 작용한다는 데에 있다. 우리는 진리에 곧바로 도달할 수 없다. (...) 만약 우리가 오인을 통한 고통스런 우회로를 피해가길 원한다면 우리는 진리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오직 오인을 '통해서만' 타인의 본성에 도달하고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을 통해서만 달시는 자신의 그릇된 오만으로부터 벗어나고, 엘리자벳은 자신의 편견을 불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계기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엘리자벳은 달시의 오만 속에서 자신의 편견의 전도된 이미지와 마주치고, 달시는 엘리자벳의 허영 속에서 자신의 그릇된 오만의 전도된 이미지와 마주치기 때문이다(인용자 ; 앞에 '각각의 주체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메시지를 전도된 형태로 되돌려 받는다.'는 구절이 나옴). 다시 말해서 달시의 오만은 엘리자벳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단순한 실증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의 본성의 직접적인 속성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오직 그녀의 편견어린 시점으로부터만 나타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엘리자벳은 달시의 오만스러운 시점 속에서만 잘난 체하고 무식한 처녀가 될 뿐이다. 헤겔의 용어로 말하자면, 타인의 결점이라고 인식된 것 속에서 각자는 (그것을 모른 채) 자신의 주체적 위치의 허위성을 인식한다.

타인의 결점은 단지 우리 자신의 관점상 왜곡을 객관화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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