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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 외 ㅣ 범우고전선 6
J.J.루소 지음 / 범우사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한 마디로, 위대한 텍스트입니다. (요즘 한창 뜨는 『레미제라블』만큼이나)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절제된 문장에 꿈틀거리는 민중의 참상에 대한 의분과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에로 향한 이상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지금 읽어도 그렇습니다. 저는 특히 '사회계약론'이 더 좋았고, 읽으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는데, 펜의 힘이 이렇게나 세다는 것을 다시금 절감했습니다(단, 세상에 좋은 글들이 넘쳐나도 사람들이 안 읽으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이 함정). 실제로도 『사회계약론』은 『에밀』과 더불어 1762년 당시에 금서로 지정돼 발행 및 판매가 금지되었고(읽어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습니다), 루소에게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는데, 1765년에는 대중들이 신변의 위협을 피해 도피 중이던 그의 집을 찾아가 돌을 던지고 박해를 가하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민중의 편에 서고자 했던 자신의 사상이 바로 그 민중들에게조차 배반 당했다는 비애가 루소를 힘들게 했지만, 어쨌든 그의 급진적 민주주의 이론은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에 대부분 그대로 흡수되었고[제1조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다.", 제3조 "모든 주권의 원리는 근본적으로 국민(인민peuple)에게 있다.", 제6조 "법은 일반의지의 표현이다." 등] 근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흥미로웠던 대목 하나만 소개하겠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오랫동안 존속하고 법률이 끊임없이 새로운 활력을 받으며 유지될 수 있으려면 그 어느 누구도 폐지하거나 연기할 수 없는 고정된 대중집회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요, 루소는 정부가 강력해지면 강력해질수록 주권자가 그만큼 더 자주 집회를 열어야 한다고 합니다. 대중집회야말로 정치체를 지키는 방패이고 정부를 구속하는 고삐라면서 집회가 형식과 절차를 덜 요구할수록 정부의 월권을 방지하는 데 더 큰 효과가 있다고 루소는 주장합니다. 사람들은 시민으로서 집회를 여는 동시에 행정관으로서 집회를 열게 됩니다(이른바 '치자 피치자의 동일성'과도 맥락이 닿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집회는 어느 시대에서나 통치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고 따라서 그들은 시민들이 집회를 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온갖 배려와 반대, 방해와 약속 등을 다 동원합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그렇게 욕심 많고 비겁하고 무기력해져서 자유보다도 안일을 더 좋아하게 되면 점점 커지는 정부의 압력에 오래 견딜 수가 없고, 결국 주권은 소멸하고 국가도 수명을 채우지 못한 채 와해되어 멸망하고 만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국가의 운명은 이미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선조들인 그리스, 특히 규모도 크고 인구도 많았던 로마에서도 일주일에 수차례씩 일상적으로 집회를 열었는데 상상력의 범위를 좁히고 있는 것은 우리의 무기력과 편견일 뿐이라면서 자유와 권리가 소중하게 여겨지는 곳에서는 약간의 불편쯤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좋은 국민, 좋은 법률은 더 좋은 법률을 만들어 내지만, 나쁜 법률은 점점 더 나쁜 법률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인간불평등기원론』은 사회적 불평등의 근원을 사유재산제도에서 찾는 글로서 루소의 자연주의적 면모가 엿보이는 글입니다. 로크도 『인간 지성에 관한 시론』에서 사유(私有)가 없는 곳에 범죄도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요.
어찌되었든 간에, 우리도 인류의 이성과 선의를 믿으며 묵묵히 정진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