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 만화 함석헌 1
남기보 글.그림 / 한길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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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정도만에 서재를 찾았다. 오랜만에 만난 책들이 편안하다.
예전에 사둔 책들을 일별해 본다. 신학서를 잡았다가 왠지 피곤하여 방향을 틀었다. 시대를 밝혀주셨던 스승들이 그립고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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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직

우직야(愚直也)란 말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것이 곧다는 말입니다. 어리석으면 꾀가 없습니다. 꾀란 남의 생각을 넘겨집는 데서 나옵니다. 그럴 줄 모르니 모든 것을 곧이들을 수밖에 없고, 곧이들으니 제 마음도 있는대로 열어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고지식하면 남을 속일 줄 모르니 좋기도 하지만 속일 줄 모르는 사람은 또 남에게 속기가 쉽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있는대로 다 말해서는 아니 되는 것도 있어서 그러한 고지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것 같아 그 곧음을 비웃어서 우직이라 말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 기지가급(其智可及)이나 기우불가급(其愚不可及)이란 말도 있습니다. 꾀는 차라리 흉내 낼 수가 있어도 어리석은 것은 흉내 낼 수 없단 말입니다. 꾀는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인데 내가 저를 들여다보면 저가 또 나를 드려다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꾀를 부리는 놈을 거꾸로 속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어서 남의 마음을 들여다 볼 줄을 아주 모르면 철저히 아주 곧이듣기 때문에 속임 수가 들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기우불가급(其愚不可及)은 그런 것입니다. 그 반대는 잔나비 제 꾀에 속는다는 것입니다.

요새 사회를 내다보면서 이 우직 생각이 자꾸 납니다.

 (...)

약아빠지면 저만 압니다. 그러면 잘못을 고칠 수도 부족한 것을 키울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약아빠져 저만 저로라는 사람이 곧 잘 속습니다. 세계에 우리 민족 같이 약은 듯하면서 잘 속는 민족은 없습니다. 아니 속으려는 제 꾀 때문에 속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큰 지혜는 모르고 잔 지혜뿐이기 때문에 잔 지혜에 속아 넘어갑니다.

 (...)

성적만 알고 정치를 모르는 것. 정당만 알고 나라를 모르는 것 다 다 한 심리에서 나옵니다.

그럼 이 고약한 병이 어디서 서생겼을까? 여러백년 두고 정치에 속아 본데서 나왔을 것입니다. 의붓자식은 눈치가 빠른 법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을 좀 어리숙하게 만들 수 있을까?

여러분 같이 살기운동은 어리석고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철저히 어리석어만 진다면 우리 일을 막아낼 자가 없습니다.


씨알의소리 1972. 5 11호
저작집; 8- 65
전집; 8-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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