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이들은 공룡을 좋아할까.


  알라딘에서 "공룡"이라는 검색어로 '국내도서'를 검색해 보면, 전체 3,125권(8권이 많은데, 분야가 중복 집계된 책들이 있는 것 같다) 중 879권(28.1%)이 '어린이' 분야로, 1,561권(50.0%)이 '유아' 분야로 분류되어 있고, '청소년' 분야에서는 17권(0.5%)으로 급격히 줄어 '대학교재/전문서적' 분야에서 2권(0.1%), '과학' 분야에서 42권(1.3%)이 검색된다(2020. 7. 6. 현재).



  결국 한국에서 '공룡 마케팅'은 주로 유아, 어린이들과 그 부모들을 상대로 한 것이다. '유년기의 폭발적 관심'과 '곧이은 급속한 냉각' 모두 흥미로운 현상이다. 사실 공룡이 반드시 유치한(?) 주제라고는 할 수 없을 텐데, 후자는 어쩌면 한국에 국한된 현상일지 모른다. 그럴 듯한 공룡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도 전국 곳곳에 들어섰다(서대문 자연사박물관, 남양주 미호/자연사 박물관과 오남 공룡체험전시관, 대전 유성구 지질박물관, 계룡산 자연사박물관, 안면도 쥬라기 박물관, 경산 공룡박물관, 목포 자연사박물관, 해남 공룡박물관, 제주 공룡랜드 등). 얼마 전 '고성 공룡박물관'에 가보니 접근성이 그리 좋은 곳이 아닌데도 상당히 많은 가족 방문객들로 붐비고 있어 놀랐다(한 아빠가 아들한테 "천일야화가 데카메론이잖아."라고 설명하면서 옆을 지나쳐 갔는데, 정정해 드려야 하나를 잠깐 고민했다. 부디 나중에 눈치 채셨길...). 고무적이고 다행한 일이라 생각되는 것은, 최근 만들어진 시설들일수록 단지 공룡의 압도적인 크기와 외양만 구경거리처럼 내보이는 게 아니라 학술적인 부분까지 충실하려 애쓰는 티가 난다는 점이다(아래는 고성 공룡박물관 전시물 사진).



  아무튼 나도 아이 덕분에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까지 관심을 가지다 급격히 잊게 된 '공룡 지식'을 새로운 시각에서 업데이트하는 계기를 갖고 있다(치토스 공룡 스티커, "체스터의 공룡마을"에서 대망의 '티라노사우르스' 스티커를 구하지 못해 '오리온 어린이 회원' 연장에 실패한 슬픈 기억이 있다). 예컨대, 지난 4월 말 『네이처』에는, 강가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었던 '스피노사우르스'가, 새로이 발견된 화석을 분석한 결과에 따를 때 수생공룡이었을 것이라고 논증하는 논문이 실렸고, 나도 기사를 읽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수 있었]다. 논문은 Ibrahim, N., Maganuco, S., Dal Sasso, C. et al. Tail-propelled aquatic locomotion in a theropod dinosaur. Nature 581, 67–70 (2020). https://doi.org/10.1038/s41586-020-2190-3이고(네이처』지 제581호 표지에 멋진 이미지가 실렸다), 관련 기사는 고재원 기자, "[표지로 읽는 과학] 스피노사우루스에 달린 돛 비밀을 풀다", 동아사이언스 (2020. 5. 9. 자 기사)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36562; 유용하 기자, "뭍이 아닌 물에서 삶…공룡 ‘호적’ 바꾼 화석", 서울신문 (2020. 4. 30. 자 기사)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430019004 등 참조.


네이처 제공


  이와 같이 학술지에 실린 새로운 지식이 한국어로 된 어린이 그림책에까지 반영되려면 또 몇 년이 걸릴지... (지금은 스피노사우르스 삽화揷畫가 모조리 강가에서 물고기를 입에 물고 서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책들이 바뀌기 전까지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잘못된 지식을 잘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습득할 테고, 금세 또 관심이 식어 그런 줄로만 알고 평생을 살지도 모른다. 이는 지극히 '단편적 일화'에 불과하다. "중요한 정보들이 대부분 영어로 된 세상에서 우리 사회에 들어오지 않는 정보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로선 추산하기도 어렵다. 단편적 일화들에서 우리가 모르는 새 생산되고 유통되는 정보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복거일,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삼성경제연구소, 2003, 76쪽.



  다양한 캐릭터와 이들에 얽힌 드라마는 '공룡 시대' 서사가 갖는 매력 중 하나다. 화석을 바탕으로 공룡의 생태를 상상하고 복원하는 과학자들은 모르긴 몰라도 탁월한 이야기꾼들임에 틀림없다. 이것이 아이들의 마음도 끌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아이들은 동시대 동물들 가운데도 기린, 코끼리, 사자, 호랑이, 곰, 또 고래와 상어 같은, 크거나 사나운 동물들에 우선 열광하는데, 공룡들 가운데는 그러한 매력 포인트를 가진 종들이 아주 많다). 이전에 다른 글에서 핑크퐁 '공룡 동요'를 예찬(?)한 바 있는데, 비록 멜로디는 '돌려 막고' 있지만, 위 맥락에서, 꼼꼼한 고증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잘 살린 가사만큼은 국문, 영문 모두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hKajif49TQ 공룡 캐릭터들이 곳곳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보니, 나는 솔직히 아이가 "공룡이 멸종되어 더 이상 지구상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여하간 요즘 다양한 공룡 컨텐츠를 수시로 접하고 있고, 서재에서도 틈틈이 기회가 날 때마다 다뤄보려 한다[그나저나 며칠 전(7월 4일?) 알라딘의 오류인지, "알라디너 인기서재"로 소개된 때문인지, 평소의 한 달 방문자 수를 훌쩍 넘는 방문자가 단 하루에 방문하였다고 나와서 깜짝 놀랐고, 괜히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방문자 수가 다시 바뀌어 있다. 오류가 난 것이라면 모르겠는데, 이러한 것이 사후적으로 조작될 수 있다면 문제 아닌가?].


  영문판으로는, 여러 권을 서점에서 직접 들추어 보기도 했지만 DK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 좋다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내가 산 것은 앞의 파란책인데, 번역서가 나오기도 한 주황색 책과는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



  이전에 어딘가에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영어 과학책을 볼 때 놀라운 점은, 아이들 책이라 해서 쉽게 설명한답시고 내용을 함부로 줄이거나 적당한 왜곡을 용인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바꾸어 말해, 정확한 설명을 우선 시도한다. 위 DK 백과 시리즈도 그러한 책들 중 하나이고, 아래와 같은 책들도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babies"를 대상으로 한 양대산맥(?), Chris Ferrie와 Baby Loves Science 시리즈를 추린다(그나저나 '물푸레책공방'에서 Chris Ferrie의 책 몇 권이 번역된 적이 있네? 2016년에 나온 책이 벌써 품절 처리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튼,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양자역학이나 유기화학, 통계역학 따위의 기본적 문제의식만 간취할 수 있어도 그게 어딘가!



  Ruth Spiro의 책들은 Jill McDonald의 'Hello World' 시리즈와 묶여, 웅진책방에서 "아기과학자 그림책" 시리즈 12권으로 나왔다(알라딘에서는 검색되지 않는다).



  공룡 책으로 돌아오자.


  최근 동네 작은도서관에서 아이교육 출판사에서 나왔던 『재미있는 공룡탐험』 시리즈라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무척 좋았다(아래 사진에서 오른쪽).



  제목이 꽤 특이해서("뒤뚱뒤뚱 오리주둥이 공룡" 등) 검색해 보니, 여러 출판사가 나온다. 위 사진의 아이교육 출판사에서도 '뉴-도담 자연관찰' 시리즈의 일환으로 나온 적이 있고, King & Books라는 출판사명을 달고 나온 적도 있는 것으로 확인되며, 알라딘에서는 아이나루 출판사의 '공룡의 신비' 시리즈로 검색된다. 지은이가 같고, 감수자가 같아 번역은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출판사에 사정이 있었던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다(번역 저작권은 매번 제대로 확보된 것일까).



  내용이 충실하고 상세하기도 했지만, 특히 좋았던 것은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으나) 공룡 이름에 알파벳 표기를 병기했다는 점이다. (나중에 별도의 글을 쓸 생각이지만,) 공룡 이름을 포함한 학술용어, 특히 '학명'은 린네의 제안에 따라 라틴어 또는 라틴어화한 낱말에서 비롯되고, 이를 특별한 고민이나 원칙 없이 한글로 표기하는 경우와 알파벳을 병기라도 하는 경우는 전달되는 정보의 양에서 큰 차이가 난다. 한글로만 표기하면서 예컨대, Elasmosaurus를 "에라스모사우르스"라고 쓰게 되면,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기가 어려울 뿐더러, '얇은 판'(elasm-, elasmo-) 도마뱀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사정에 관한 단서조차 잡기가 어렵게 된다. 알파벳으로 쓰면, 디플로도쿠스(Diplodocus)가 '두 개의 기둥', 트리케라톱스(Triceratops)가 '세 개의 뿔이 달린 얼굴', 이구아노돈(Iguanodon)이 '이구아나의 이빨', 티라노사우르스(Tyrannosaurus)가 '폭군'이라는 뜻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사실을 한결 수월하게 느끼거나, 적어도 한 번 듣고 나면 더 쉽게 기억할 수 있다(우리가 웬만큼 한자어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에게는 훨씬 쉬울 테고... 앞서 언급한 '데카Deca메론' 일화도 그 어원이 '열흘 동안의 이야기'라는 것을 아셨다면 실수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글 전용? 당장 주위를 둘러보고, 거리에 나가보라. 한글과 알파벳이 얼마나 뒤섞여 있는지. 삼성(SAMSUNG), LG, 현대(HYUNDAI) 같은 대기업들에서부터 SK, KT, LGT 등 통신사들과, (Google, Facebook, Instagram, Youtube야 원래 미국에서 탄생하였으니 그렇다 치고) Naver, Daum 같은 포털 사이트, CU, GS25, 7 Eleven 같은 편의점에 이르기까지 갖은 상품과 용역이 알파벳을 달고 공급되는데, 알파벳으로 소개하면 아이들에게 더 생소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언어의 변천을 인위적으로 통제한다는 것은 이상주의적이다. 언어는 대중의 필요와 효용에 따른 합리적 선택에 따라 변할 따름이다. 우리 언어생활이 '영어 중심 망 경제'의 강력한 구심력으로 인해 사실상 영어 공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한 현상과 흐름을 짐짓 외면하는 것이 도리어 영어구사능력을 권력화하고 계급 간 격차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을 인위적으로 '애써' 지연시키는 것과 적극적으로 직면하는 것 중 어느 편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길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예컨대, 박광길, "신어 형성 과정에서의 외래어 수용 양상: 2016~2018년 신어에 나타난 영어를 중심으로", 인문과학연구 제62집 (2019)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9215765에 따르면, 2016, 2017, 2018년 3년 동안 신어 자료집에 수록된 1,428개 신어에 총 1,145개의 영어 단어가 사용되었고, 영어를 중심으로 신어가 형성되는 양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하여, 황은하, "효율적인 어휘 확장을 위한 외래어 효용성 연구: 영어권 초급 학습자의 외래어 지식의 양적 및 질적 측정을 중심으로", 우리말교육현장연구, 통권 15호 (2014)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930886 도 참조. 영어에서 비롯된 외래어 없이 말을 할라치면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거꾸로, 이전에 재미삼아 순우리말 어휘를 살려 쓴 리뷰가 있는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으신지 한번 살펴보시라.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0664505 슬프지만 우리는 많은 우리말 어휘를 잃고 있다.


한편 외래어 표기에 관하여 '한글'이 가진 위대한 잠재력을 우리가 반쪽만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는데(특히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글'의 원리를 설명하다가 극명히 느꼈다), 마침 최근 경향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왔다. 이기환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을노브가 무엇이오' 영어에 푹 빠졌던 조선, 일제의 교육이 망쳐놨다", 경향신문 (2020. 6. 30. 자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6300600001&code=960100 위 기사에 따르면, 지석영의 '아학편'에서 F는 '에프'가 아닌 '에ㅍ후'로, V는 'ㅇ뷔'로 표기하였고, R 발음은 '으ㄹ'로 표기하여 예컨대 Ruler는 '으룰러', Rice는 '으라이쓰'로 표기하였다. 겹자음, 겹모음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초성, 중성, 종성의 기하학적 배치 안에 다양한 음가를 겹쳐 넣을 수 있는 놀라운 문자가 한글인데(심지어 한글 워드프로세서에서도 쓰지는 않는,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나게 많은 글자들이 지원된다), 왜 그 무궁무진한 확장 가능성을 이렇게 말살시키고 말았는지... 없어진 글자인 순경음 ㅸ, 반치음 ㅿ, '아래아'와 같은 것들은 지금에 와서 다시 기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글을 차용해 쓰는 찌아찌아족은 V 발음을 순경음 ㅸ으로 표기하고, 솔로몬 제도에서는 L 발음을 쌍리을로 표기한다는데(그런데 왜 R이 아니라 L?), 무엇 때문에 정작 우리는 그런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가. 이경미, "섬나라 솔로몬제도 2개주도 한글 쓴다", 한겨레 (2012. 10. 8. 자 기사)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554899.html

  F 발음은 V과 같은 계열의 발음이므로, 순경음 ㅸ의 조자 원리를 응용하여 ㅍ 아래에 ㅎ를 써서 표기하고, L이나 R 발음을 쌍리을로 표기하는 등으로 외국어의 여러 발음을 원래 소리에 더 가깝게 우리말 표기 체계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한글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이를 사용하는 우리말을 새로운 방식으로 살리는 방향이 될 수는 없을까? (한글에 대한 관심이 한국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거나) 이를테면, 내가 베트남어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전에 한국-베트남 간 학술교류 행사에서 한국어/한글로 쓴 내 논문이 번역된 결과를 보니, 알파벳을 빌려 베트남어 소리를 표기하는 방식이 분량을 지나치게 늘리고, 그로 인하여 책 같은 것을 쓸 때 복잡한 내용을 충분히 길게 서술하는 데 제약으로 작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유산을 안쓰럽게 이어가는 것보다는(베트남어가 알파벳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자문화권에서는 발음이 가장 가까운 우리의 한글로 베트남어를 표기하는 방법이 효율적일 것도 같은데(단어조차 비슷한 것이 많다), '베트남어 한글 표기법'을 가다듬어 베트남에 보급해 볼 수는 없을까? 급격한 언어 통폐합의 시대에, 그런 것들이 가능하려면 다시 '세종대왕 팀'이 나와야만 하는 걸까...]




  딴 길로 너무 오래 샜다. 저 위의 책장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이너소어' 시리즈도 상세하다. 다만, 오역으로 의심되는 대목이 간간이 있었다. 놀랍게도, 고성 공룡박물관에서 이 책의 이미지를 따다 쓴 전시물이 있었다(가기 직전에 책을 보고 갔기에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런데... 저작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한 것일까?). 알라딘에서는 위 전집이 완전히 검색되지 않는데, 국내 출판사에서 유사한 제목을 쓴 책들이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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