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지역에 흩어져 있던 장서가 네 군데, 다섯 군데로 나뉘었다가 다시 위치를 조정한 네 지역으로 재배치되는 과정이 있었다. 책들이 흩어져 있어도 주요 책들은 메인 포스트에 모여 책들 간 거리의 표준편차(?)가 작았던, 그래서 책 한 권을 읽으면서도 동시에 여러 책들을 넘나들 수 있었던 격리기간을 포함한 두 달 정도가 있었는데, 무척 행복했고 아이도 서재에서 놀면서 좋아했다.

  이제는 다시 副서재로 옮겨 살고 있는데, 이사를 다니면서 책들을 새로이 정리하다 보면 구석에 처박혀 잊힌 책들을 새삼스럽게 상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책도 그렇게 간만에 발견하였다.

  그러나 번번이 책을 이고 지고 다니는 것이 비경제적이기도 하고 몸도 점점 힘들어져(특히 책박스를 나르다가 허리를 다치는 일이 간혹 생겨) 전자책에 조금 더 익숙해지려고도 하고 있다. 필요한 책들을 그때그때 사는 게 아니라, 중고책방에서 언젠가 읽을 것 같은(훑어보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책들을 발견하는 대로 미리 사두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아무튼 버리지 못하고 20년 이상 모으고 싸들고 다녔던,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책들이 인생의 큰 짐이자 제약조건이면서도, 잦은 이동생활 중에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가상의 고향이 되고 있다. 몸과 함께 생각도 이리저리 이전(移轉)하였다. 이렇게 남기는 글들을 5년, 10년 뒤에 읽어보면 생각이 바뀌어 지우고 싶은 것들도 당연히 있을 것 같다[사모은 책들의 면면이 나름대로는 화려한데, 예컨대, '이론과 실천'에서 나왔던 『자본』 전 권, 『진보평론』(2020년 봄호가 무려 349쪽이나 되네;;) 以前의 『이론』 대부분과, 초창기부터의 '과천연구실 세미나', 새길아카데미 비판총서, 민맥신서 같은 것들이다. 문득 생각이 나 찾아보니 짜골로프의 『정치경제학 교과서』는 여전히 시판 중이고, 새길출판사에서 나왔던 『정치경제학』은 중원문화로 옮겨 판매가로 13만 원이 붙어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책은 얼마간 뻔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내용들이 일부 나온다. 예컨대 저자가 '독서의 사각지대'라 이름 붙인 시기(딱 맞는 명명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독서 습관을 망치기 쉬운 시기는 도리어 '한글을 막 떼는 시기'라는 지적에 정신이 번쩍 든다(책 60쪽 이하). 글자는 읽어도 내용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책을 잘 읽는 사람, 독서의 맛을 아는 능숙한 어른(부모)이 책을 읽어주어야 의미가 온전히 전달된다. 마침 아이가 글자를 깨치기 시작했기 때문에 부모가 감칠맛나게 읽어주면 책 읽어주기의 효과는 배가된다. 혼자 읽게 내버려두지 말고,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읽어주어야 한다. 아이가 소리 내어 읽게도 해보고(끊어읽는 모습을 보면 이해하고 읽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여담이지만, 어린시절 '묵독'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적잖이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여럼풋이 난다. 집에 있던 2층 침대에서 월간 만화 『보물섬』을 읽던 중이었고, 그런 게 가능하다고 알려주었던, 누군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손위의 동네 형이 함께 있었던 것 같다. '이희재' 선생님의 그림체와, 만화가 분들이 번갈아 연재하셨던 것도 같은데 '위인전', 그중에서도 녹두장군 전봉준의 압송 장면 컷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뒷날 기억이 섞였는지도 모르고...). 딸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아이들에게 '마음의 목소리'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천지가 개벽하는 경험인 것도 같다.

  여하간 지은이는 듣기 수준과 읽기 수준이 같아지려면 13세 정도는 되어야 하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중학생에게도 책을 읽어준다고 하고(다 좋은데, 외국 어느 나라에서? 출처는? 책을 제대로 따져 읽지 않는 독자를 대상으로 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박사님이신데도 이런 식으로 추적 불가능한-때로는 선뜻 믿기 어려운- 솔깃한 썰들을 책 곳곳에 마구 흩뿌려두신 것은 불만스럽다), 적어도 초등학교 1학년까지는 무조건 읽어주라고 한다(책 134쪽 이하).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더라도 계속 읽어주기를 원하면 그렇게 해주는 편이 좋고, 10대 초중반까지도 혼자 읽어서는 매력을 느낄 수 없는 책이나 詩(이건 동감) 같은 것들을 느낌을 살려 읽어주라고 한다.


  독서에서 '마태효과(Matthew Effect)', 즉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소개하고 있는데, 뭐 당연한 얘기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더 좋은 책들을 더 많이 읽은 상태여서 일신우일신하고 있음이 느껴지고, 읽지 않는 사람들은 나날이 정신이 빈한해져 나이와 직책이 그에 걸맞은 지혜까지 함께 준다고 착각하면서 영양가 없는 말들을 권위적으로 늘어놓는다. 아무리 재벌이라 한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옛말이다. 사실은 부자가 3대, 4대를 가기 힘들다(이븐 칼둔도 『역사서설』에서 그런 취지로 썼는데, 우리는 이제 겨우 재벌가가 3대에 접어들었으므로 지켜 볼 일이다). 반면 책 읽기만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책을 읽는 습관만큼 확실하게 대물림해 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책을 많이 읽고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는 별개 문제겠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만은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고, 적어도 일생에서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극심한 좌절감을 견뎌낼 작은 힘은 줄 수 있다고 본다). 아무튼 박사님께서 여러 곳에서 신뢰를 떨어뜨려주신 덕분에 원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논문이 나오기는 한다. Keith E. Stanovich, "Matthew effects in reading: Some consequences of individual differences in the acquisition of literacy," Reading Research Quarterly (Fall 1986) https://www.psychologytoday.com/files/u81/Stanovich__1986_.pdf 같은 글이 Journal of Education, Vol. 189, Issue 1-2 (2009)에 다시 실린 것도 같다. https://doi.org/10.1177/0022057409189001-204

  독서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 때문에, 지역사회와 공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 모든 가정이 독서교육에까지 신경 쓸 여력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 23쪽 이하의 사례에 눈길이 간다.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 시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지역사회의 명사들이 매주 1회 학교에 찾아와 아이들의 독서친구(Reading Buddy)가 되어 준다고 한다. 우리도 이런 시도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시작되었다는 '아침 독서 10분' 운동(책 24쪽), 영국의 북트러스트 단체들과 책 나눠주기 프로젝트인 '북스타트'(우리도 '북스타트 코리아'가 도서관 등과 연계하여 이런저런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https://bookstart.org), 바스(Bath)에서 열리는 어린이문학 페스티벌 https://bathfestivals.org.uk/childrens-literature/, 독일 '레제스타트' 캠페인, 일본의 가정 독서 프로그램 '우치도쿠' 등이 유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이상 책 54~55쪽). '독서의 중산층'을 복원하는 일은 결국 시민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다. 우리 사회도 한때 '책 읽는 사람들이 넘쳐나던 시대'가 있었고, 30년가량 그 덕을 보기도 했지만, 어느새 구태의연해졌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새로운 독서인구가 아이들로부터 두텁게 유입되어야 한다.


  한편, 동시(童詩)를 읽어줄 생각은 못하고 있었는데, 일리 있는 조언이라고 생각했다. 책 187쪽에 '동시를 제대로 읽어주는 방법' 여섯 단계를 써주셨는데, 첫째, [부모]가 재미있게 읽어주기(낭송하기), 둘째, [부모]가 읽고 아이가 따라 읽기, 셋째, [부모] 한 행, 아이 한 행 교대로 읽어보기, 넷째, [부모] 한 연, 아이 한 연 교대로 읽어보기, 다섯째, 아이에게 읽어달라고 하기, 여섯째, 둘이 눈 감고 외워보기이다(책은 전체 256쪽 중에서 208쪽까지를 읽어주는 사람이 '엄마'임을 전제로 쓰셨고, 그 이하에서 '아빠'가 읽어주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다루고 계신다. 위 [부모]에도 원래는 '엄마'가 들어간다). 어머니께서는 좋은 동시를 '시화'(詩畫)로 만들어 벽에 붙여주시곤 하셨는데, 새삼 동시집을 찾아볼 생각이 들었다. 어제 동요가사를 시처럼 들려주었더니 일단 잠을 재우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자주 느끼는 딜레마는 아동도서의 '단선적 권선징악 구도'(교훈성)와 '지배 이데올로기'의 구별이다. 일단 나는 집에서 '공주' 류의 책들은 없애거나 숨겼다(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니 잘 차려입는 아이들도 많고, 그 영향을 배제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러나 지은이는 유아기, 아동기는 가치관과 인성을 형성해 나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어른들과 달리 열린 결말, 이야기 비틀기가 큰 충격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지적한다(책 160쪽 이하). 책이 주는 그 어떤 사소한 단서에도 쉽게 빠져들고 감정이입을 잘 하는 것은 사실이라, 유의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이 부분 문헌을 조금 더 찾아보고 싶다고 느꼈다. (추가하여, 윤리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 '착시효과'를 다룬 책들, 예컨대, 언뜻 보면 크기가 달라 보이지만 이는 사실 패턴 배치에 따라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임을 일러주는 책만 보아도, 아직은 보이는 느낌에 충실한 아이가 '불쾌하고 불편해' 하는 것을 최근에 느꼈다.)


[출처와 신뢰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박사님은 책 247쪽 이하에서 "엘마 게이츠"라는 학자의 일명 '분노의 침전물 실험'을 소개하고 계신다. 사람이 화를 낼 때 사람 몸에는 독소가 생기기 때문에, 침의 파편에서도 독소가 검출된다는 주장이고, 그 파편을 냉각시킨 파편물을 쥐에게 주사하니 수분 내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유사과학'이다. 쌔한 느낌이 들어 조금 찾아보았는데, 목사님들이야 끝내 과학적일라 치면 존립근거가 흔들리고 마시니 그렇다 치더라도, 검증도, 재현도 안 되는 이런 썰이 확대재생산되게 된 가장 큰 원흉은 EBS이다. 아래 이미지의 원 영상은 다음 페이지밖에 못 찾았다(일부 사이트에 링크된 페이지들이 만료된 것으로 보아 EBS에서 삭제한 것 같기도 하다). https://www.dailymotion.com/video/x60abd6 지식채널e에도 다시 나왔다. https://youtu.be/kUcIAbewxNM 국어(?)교과서에도 실린 모양이고 (https://twitter.com/otori13/status/1056806621274243072), 연합뉴스에서는 아예 "미국 워싱턴대 엘마 게이츠 교수'팀'"이라고 받아썼다. https://www.yna.co.kr/view/AKR20110930126400005



  이미 여러 사이트에서 지적받았지만, "Elmer R. Gates"가 Professor라고 지칭된 페이지가 있기는 해도, 다음 '약력'에서 보는 것처럼 대학에 재직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설 연구소를 차렸을 뿐이다(http://www.elmergates.com/biographical/chronology.pdf). '워싱턴대'라고만 나오는데, 이는 특히 혼동을 초래하기도 사기치기도 쉬운 이름이다.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University of Washington? Washington State University? Central Washington University? Western Washington University? Eastern Washington University? (이것 말고도 많다) 아니면, 게이츠가 DC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니(연구소가 메릴랜드 Chevy Chase에 있었고, 본인이 DC에서 사망했다),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그러나 엘머 게이츠는 그 어떤 워싱턴대학교에서도 근무한 적이 없다.

  국문 사이트들은 위 실험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http://www.elmergates.com/의 트래픽은 한국에서 계속 늘려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위 사이트에서 1896년에 『The Art of Mind Building』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1903년에 『The Relations & Development of the Mind & Brain』으로 "나왔다는"(실제로 출간된 책들인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책의 '요약본'(?) PDF를 보면 3쪽에 나오는 '11쪽 요약'에 다음과 같은 문단이 나오기는 한다.



  그리고 영어로 된 몇몇 심리학, 정신화학(mental chemistry) 문헌들에서 화가 난 사람의 땀을 개의 혀에 대봤다거나, '기니피그'를 대상으로 한 엘머 게이츠의 여러 실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개들은 당연히 싫어할 테고, 동물들에게 체액과 다른 뭔가를 주사하면 당연히 '독을 맞은 것처럼' 문제가 생기겠지... 박기효 기자, "링거액 대신 맹물을 몸에 넣는다면", 매일경제 (2011. 11. 9.) https://www.mk.co.kr/news/it/view/2011/11/727434/; 심혜리, 구교형 기자, "[단독]‘식염수 대신 물 주사’ 사고 알린 경찰병원 직원… 면직", 경향신문 (2014. 10. 1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410130600075 등 참조]. 정확한 실험 방법이나 데이터를 보려면 우선은 게이츠가 썼다는 위 1879년 "report"를 찾아봐야 할 텐데, 제대로 학술논문으로 출간된 것이 아닌 것 같다. 국립 미국사 박물관에 있다는 다음 자료 더미에서는 찾을 수 있을까(이런 논란이 있단 걸 미리 알았다면 확인해 보고 오는 건데;;;). https://invention.si.edu/elmer-gates-papers-1894-1988-bulk-1894-1910

  오히려 게이츠는 “Physiologic Effects of the Emotions.” The World To-day (1903)라는 글의 서두에서(The World To-day인지 Today인지 하는 출처도 의심스럽다), 언론이 자신의 연구를 다루는 방식에 관한 불만을 언급하고 있다(감정상태에 따라 방출되는 생화학물질이 다르기는 하지만, 나타나는 색깔은 시약을 뭘 쓰는가에 달린 문제임에도 사람들이 색깔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지적. 침전물을 주사한다거나, 기니피그든 쥐가 죽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여기서는 나오지 않는데, 여하간 당대에도 논란이 되었던 모양이다). http://www.elmergates.com/by_gates/physiologic_effects_of_emotions.pdf

  결국 게이츠의 원전 자체가 부실하다. 다음과 같은 글들도 참조할 수 있겠다. 곽연수, "곽연수, 알고도 당하는 치명적인 매력 유사과학 이야기", 포스텍 웹진(2014년 여름호) http://wwwhome.postech.ac.kr/web/www/plus?p_p_id=EXT_BBS&p_p_lifecycle=0&p_p_state=exclusive&p_p_mode=view&_EXT_BBS_struts_action=%2Fext%2Fbbs%2Fview_message&_EXT_BBS_sCategory=&_EXT_BBS_sKeyType=&_EXT_BBS_sKeyword=&_EXT_BBS_curPage=6&_EXT_BBS_messageId=12268; 오늘의 유머 게시물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science&no=29452; 네이버 지식인 답변 http://naver.me/GdWUIXv2]


  길어졌는데, 책에 나오는 추천도서를 관련 시리즈로까지 확장하여 정리하고 마무리한다(카테고리 분류가 꼭 정확지는 않은 것 같은데, 아무튼...). 앤서니 브라운 등 정평 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많아서, 아래를 바탕으로 더 늘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훈육에 도움을 주는 책]




  [습관 형성에 도움을 주는 책]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주는 책]




  [사회성과 인성을 길러주는 책]




  [동시, 동요]




  [전래동요??]




  [전래동화??]




  [0~2세: 애착 형성에 도움을 주는 책]




  [3~4세: 정서적 유대, 습관 형성에 도움이 되는 책]




  [5~6세: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책]




  [아빠가 읽어주면 더 효과적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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