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좋은데, 번역이 만족스럽지 않다. 2016년에 초판 1쇄가 나왔으면 당시까지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른 번역어를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원저는 2014년에 나왔다). 그러다 보니 키워드가 부각되지 않는다.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으로서보다는 '자기계발서' 정도를 번역한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임하신 게 아닌가 생각된다(몇 군데 강하게 의심 드는 대목이 있는데 아직 원전을 확인하지 못하여 생략한다).
존 스튜어트 밀을 기본 삼아 그에 터 잡은 개입주의 비판의 논리들을 논박하는 내용이다. 선스틴 교수도 대체로 비슷한 논지인데, Millian의 한 사람으로서 온건한 개입주의가 밀과 배치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몰랐던 사이에 『자유론』 번역이 두 권 더 나왔다. 2020년 4월에 나온 정영하, 산수야 본은 2015년에 나왔던 것과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 넛지도 보통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 일컫는다.
어떤 면에서 아주 새로운 내용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2008년에 나왔던 『Nudge』의 후일담 격으로 그간의 논의를 개조식에 가깝게 정리한다. 『Simpler』도 이 책과 함께 2012년 예일대 로스쿨 Storrs Lecture가 바탕이 되었다.
다음 책들도 예일대 Storrs Lecture를 바탕으로 출간된 것들이다. https://yalebooks.yale.edu/series/the-storrs-lectures-series
"넛지"(사람들을 행복한 삶으로 유도하는 정부의 부드러운 개입,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게 돕는 정부의 은근한 개입)가 한국사회에서 화제를 모은지 10년이 더 지났고, 2009년 4월 첫 출간 후 2018년 11월에 책을 다시 낼 정도로 책이 성공하였는데, 여전히 우리는 어떤 행동을 주로 '형벌'에 기대어 금지하거나 도출하려고만 한다. 후진적인 방식일 뿐만 아니라 효과도 떨어진다. 행태적 요인에 의한 시장실패(behavioral market failure) 때문이다. 형벌은, '취향'이나 '생각'에는 간접적으로만 개입하면서(형벌의 표현 기능) 심리적/물리적 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행동'에 개입한다(규제수단 중에는 형벌과 달리 '결과' 자체에 바로 개입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 책 72, 101-106쪽 참조). 그러나 사람들은 단기적 이익에 집착하고, 현저하지 않은 정보를 무시하며, 낙관 편향과 가용성 편향(책은 availability bias를 '입수 가능성 편향'으로 옮겼다)을 가지기 때문에 시스템 2에 힘입은 합리적인 비용-편익 분석이 일어나지 않는다. 형벌은 집행하는 데도 비용이 많이 든다. 요컨대 여러 가능한 수단들 가운데 형벌은 받는 쪽도 부과하는 쪽도 많은 비용을 감당하여야 하게 되는데, 이것은 입법 단계에서 고심하여 줄여야 할 비용이다. '어떤 행동을 억지하거나 이끌어내려면 어떤 선택 설계가 효과적인가'에 관하여 입법자들이 별 고민을 하지 않기 때문에(비용을 들이지 않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많은 비용을 들이고도 원하는 결과를 효과적으로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정책입안자들이 얄미울 정도로 똑똑해져야 한다. 일견 입장이 선명해 보이는 분들, 당파적 이익에 충실하신 분들은 한 발 거리를 둔 냉정한 비용-편익 분석을 경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정치가 실용적 개방성을 갖지 못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불행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스틴 교수는 COVID-19의 대유행 속에서도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여러 Webinar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책도 꾸준히 내고 있다. 아직 아마존에 올라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발간되지 않은 것 같은데, 곧 『Too Much Information: Understanding What You Don't Want to Know』가 나올 예정이다(페이스북에 올려주셔서 알았다). 이 분야 주제들을 그야말로 구석구석, 독보적으로 다루고는 계시지만, 반열에 오르고 나시니 간혹 썩 뛰어난 내용이 없는 것 같은 뇌피셜이라도 모두 주목하고 경청하는 것 같다. 나와있는 책 중에는 『Conformity』, 『How Change Happens』가 최근작이고, 이번 포스팅과 관련하여 『On Freedom』이라는 책도 2019년에 나왔다. 전 세계에 엄청나게 팔리는 책을 매년 몇 권씩이나 내고 계시니, 모르긴 몰라도 인세수입이 상당하실 것 같다.
『Why Nudge?』는 분량이 길지 않아서 인용된 단행본이 많지 않다. 번역된 책이 꽤 있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