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책을 읽던 중에 가볍게 읽으려고 서재에 있던 책을 집었다. 짝의 학부 수업 교재였다. 20대에는 경제사상사가 더 재미있게 읽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훈고학은 실제 세계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사료를 바탕으로 전개한 경제사가 훨씬 낫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는 그야말로 ‘세계화 담론‘이 열풍이었다.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 『세계화의 덫』, 프랑수아 셰네의 『자본의 세계화』/『금융의 세계화』, 『세계화와 그 불만』(조지프 스티글리츠, 무려 올해 신판이 다시 나왔다.), 『빈곤의 세계화』(미셸 초스도프스키), 『전지구적 변환』(데이비드 헬드 외), 『신자유주의와 노동의 위기』, 또 한편에서는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같은 책들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또 읽혔다. 국내에서는 민주/반민주 전선을 역사적으로 해소하면서 반/신자유주의를 새로운 전선으로 세우려는 운동이 전개되었다(그런데 민주/반민주 전선을 여전히 붙잡고 있었던 이들은 도리어 퇴행하여 급기야 친일/반일 전선을 불러내고 있다).
이제 세계화는, 구태여 언급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당연한 전제가 되었고, 세계사에서 처음 맞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팬데믹‘을 통하여 우리가 얼마나 속속들이 세계화되어 있었는지를 여실히 목도하고 있다. 동시에, 1986년 9월 우루과이에서 시작된 협상이 1993년 말 타결되어 1995년 1월 1일 WTO 출범으로 공식화된 세계화가(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11월 김영삼 대통령의 호주 방문 직후에 발표된 ‘세계화 선언‘ 이후, 그 개념에 관한 혼란 속에서 갑작스럽고 산만하게 ‘세계화추진위원회‘에 의하여 ˝세계화˝가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게 된 상황에 당면해 있다.
[트럼프가 운이 좋거나 힐러리가 졌다기보다는, 트럼프가 다수 미국민의 불만을 나름대로 대변하고 있었고 (가치판단을 일단 접어 두고라도) 모종의 새로운 ‘시대정신‘-고립주의 또는 반세계주의(?)-을 담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역사적 사명'을 띠고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편이긴 했는데,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 인격적 특성이 이런 식으로 세계를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촉매가 될 줄은 몰랐다.]
책은 2005년에 나온 것으로, 제목에 붙은 ˝세계화 시대에 돌아보는˝이라는 맥락이 아주 뚜렷하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분량이 짧고 주요한 맥은 잘 짚혀 있어서 별다른 준비 없이 수월하게 통독, 정리할 수 있다. (필자는 그냥 집에 책이 있었기 때문에 옛날 책을 읽었지만, 지금은 2019년 판을 읽으시면 될 것 같다.)
읽으면서 문득,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지방의 역량이 더 중요해지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방제에 준할 정도로 지방자치제가 실질화, 합리화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에 비하여 훨씬 심각하게 구태의연하고 전근대적인 상태라 안타깝다. 표만 의식한 나눠먹기 식의 기계적, 도식적 분권으로 피 같은 예산을 땅에 묻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오송역을 언제까지 저대로 둘 것인지...).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각 지역이 경쟁, 성장하게 하고, 연방(중앙)정부에서는 원칙에 따라 조율해야 한다. (생존)경쟁에 몰려봐야 외국 나가서까지 추태 부리고 지역민 얼굴에 똥칠하는 수준 낮은 의원들을 도태시킨다. 당만 보고 표를 주지 않고 좋은 행정가, 좋은 정치가를 고심하여 뽑는다. 이는 통일에 대비한 준비 차원에서도 필요할 것 같다.
10여 년 동안 다른 버전의 경제사 책을 꽤 내셨다. 2005년 책이 2012년, 2014년에 이어 2019년 10월 출간작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세계화'라는 화두는 꾸준히 전면에 내세우고 계시고, 『산업재해의 탄생』이라는 책에 눈길이 간다.
대학 다닐 때는 김종현 저를 많이 읽고 경제사 교과서가 마땅치 않았는데, 찾아보니 김종현 저는 어느덧 절판되고 새로 나온 책들이 좀 있다.
이와 같은 열변이 널리 확산된 결과, 많은 논객들은 자국의 경제적·사회적 병폐가 사실은 주로 국내적인 - 대체로 정치적인 - 요인 때문임이 분명한 때조차도 일단은 무조건 글로벌 마켓 때문이라고 비난해 놓고 있는 실정이다.
- 폴 크루그먼,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중에서
그가 주장하는 핵심적 논지는 세계화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움직임이라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의 추세와는 별도로 다루어져야 할 많은 사안에 대해서도 세계화를 관련짓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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