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설이나 사주명리학은 빅데이터의 시대에 검증 또는 반증될 수 있을까.

  글을 들어가기에 앞서, '음양오행과 사주'를 특집으로 다룬 『스켑틱 제6호』를 우선 참조.




  워낙에 그 영향력이 큰 문화권에 속해있기도 하고(음양과를 시행한 성리학 왕조가 비교적 최근까지 500년을 지속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음양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3029), 이것의 '일견' 정합적인 이론체계에 대한, 수리적 미감(數理的 美感)에서 비롯된 기본적 흥미가 없지는 않다(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이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관하여 칼 포퍼가 지적한 것처럼, 그것이 반증불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강헌, 고미숙 등 진보적 작가들이 뛰어들기도 했다(『주역』은 결이 좀 다르지만 여기까지로 넓히면 황태연까지).

  혹시라도 음양오행설, 사주명리학 이론이 지금에 와서 영어로 그럴싸하게 번역된다면 상당히 잘 팔릴 소지도 있다고 본다(뭐... '진화심리학'의 '밈 이론'도 팔리기는 잘 팔리지 않는가). 진지하게 소개된 이후에는 당연히 혹독한 비판과 검증에 직면할 테고... 아무튼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이를 더 오래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국 문화가 지금처럼 많이 알려지다 보면 언젠가는 서구에도 체계적으로 소개될 것 같다. 일단 썰 자체가 문학적으로 흥미롭긴 하므로.

 




  우리가 (그 사상이 상당히 겹치는)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헤라클레이토스 등 소크라테스 이전 '자연철학'을 일컬어 과학이라 하지 않고,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기변동이론이나 지오반니 아리기의 '체계적 축적순환'에 관한 이론이 경제순환에 관한 기본적 사고틀을 제공하는 '썰'로서 의미가 있을지언정 과학으로서 위치를 점하지는 못한 것처럼(아리기는 페르낭 브로델의 장기순환-『물질문명과 자본주의』보다는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이나 '콘트라티예프 파동' 같은 것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하면서 이들을 비판적으로 승계하였다. 관련하여 투자자들 사이에 여전히 자주 언급되는 '엘리어트 파동이론' 같은 것도 있다),

  또 엘리아데나 니체의 '영원회귀'를 (인)문학 차원을 넘는 과학으로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음양오행설을 연상시키는) 바슐라르를 하나의 '스타일'로서 재미있게 읽으며,

  역사에서 일정한 순환을 주장한 이븐 칼둔, 슈펭글러, 토인비의 저술을 보편적 역사법칙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관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주역』을 나머지 사서삼경과 다른 유교 저술이 그러하듯 윤리학 차원에서는 문제없이 수용할 수 있는 것처럼,

  음양오행 명리학도, 한창 잘나갈 때 교만하지 않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좌절하지 않는, 바꾸어 말해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을 가르쳐주는 '순환적 세계관'에 관한 하나의 흥미로운 이론체계 정도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싶다.




  호호당 김태규 선생은 일찍이 2001년경부터 프레시안에 '명리학' 연재를 하셨고(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10639?no=110639), 지금은 블로그에서 꾸준히 글을 쓰고 계신데(http://www.hohodang.com/https://hohodang.tistory.com/), 2014년경부터는 '자연순환운명학'이라는 이름하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epicycle; 원의 둘레를 도는 원) 개념에 착안한 360년 순환, 60년 순환, 60개월 순환과 그보다 작은 마디들의 순환에 관하여 쓰고 계신다(이는 일반적 명리학에는 없는 개념이다. 한편 주전원은 부분이 전체를 닮은 일종의 '프랙탈'인데, 영어 문헌 중에 주전원과 프랙탈 둘을 함께 다룬 것들이 꽤 있다).

  실로 지상의 세계가 60초가 모인 1분, 60분이 모인 1시간, 24시간이 모인 하루, 30일이 모인 한 달, 12개월이 모인 1년, 또 그것은 360 + a가 모인 1년으로서 '60진법'에 따라 돌아가고 있기는 하고(원의 내각을 360도로 '규정'), 이는 바빌로니아 문명에서 발전해 나간 서양 역시 마찬가지이다.

  60진법은 어떤 '리듬'을 사고하기에 대단히 유용하다. 그것은 60이 약수(約數)를 가장 효율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는 숫자이기 때문이다(음악도 크게는 2박자와 3박자, 그것의 결합이나 배수로 나눌 수 있고, 지휘법에서도 그것이 기본이다). 즉, 60은 1, 2, 3, 4, 5, 6, 10, 12, 15, 20, 30, 60 등 12개의 약수를 가지고, 이는 1, 2, 4, 5, 10, 20, 25, 50, 100 등 약수를 9개만 가지는 100보다 3개나 많다(책 64쪽).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지구의 공전주기는 365.2422일인데('회귀년' 기준), 이를 360으로 나누면 약 1.01456167이 나오고, 여기서 1을 빼고 남는 0.01456167이 일종의 '클리나멘'으로서 '반복' 속에 나타나는 '차이' 내지 "카오스적 창발성"이라는 것이 김태규 선생의 주장이다(책 61, 284쪽, 루크레티우스와 들뢰즈는 인용자가 빌려 온 것이다. 루크레티우스의 '클리나멘' 이론은 알튀세르가 나중에 '우발성의 유물론' 내지 '마주침의 유물론'으로 정식화하기도 했다. 여기서 베르그손과 만날 수도 있을까). 그리고 이 우수리 0.01456167은 30년에 가까운 29년째에 50%를 넘어서고, 48년째에 100%를 넘어서며, 60년째에 변화율이 약 138%가 된다(책은 60년째에 남는 38%를 황금분할로 설명하고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숫자놀음'을 바탕으로 회복-확장-후퇴-수축, 또는 봄-여름-가을-겨울(24절기)로 이어지는 (경기)순환 내지 (경기)변동에 관한 이론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아래 그림은 KDI 경제정보센터 > 경제교육 > 학습자료 > 경제개념 http://eiec.kdi.re.kr/material/conceptList.do?depth01=00002000010000100010&idx=149 에서 가지고 왔다).


경제개념 이미지



  자연은 어느 정도 순환하고 있고, "차면 기운다"는 것은, 특히 크고 작은 부분순환 개념까지 도입할 경우 얼마간 탈출 불가능한(반증 불가능한) 논리이다 보니, 이러한 '사인파(sine wave)'에 입각한 변동이론 내지 "태극도설"은 끼워 맞출라 치면 한없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천하무적의 이론일 수도 있다(경제학에서도 대략 60년을 주기로 한 콘트라티예프 파동, 20년 주기의 쿠즈네츠 파동, 10년 주기의 주글라 파동, 3~5년 주기의 키친 파동 등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 개념으로 포섭할 만한 이론들이 주장된 바 있다).


  2008년에 나온 이 책이나 최근까지 블로그 글을 보면, 1972년 유신헌법의 30년 뒤로서 사인곡선의 반대편인 2002년에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이 있고, 미군 진주 후 30여 년만인 1982년에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등을 계기로 NL운동이 등장하였지만, 다시 30여 년만인 2012년이면 이른바 '종북주의'의 종언을 고할 것이라는 예언(통진당에 대하여 2013. 11. 5. 대한민국 정부는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하였고, 2014. 12. 19.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었다) 등 대한민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또 빌 게이츠 등 여러 개인의 순환에 관한 '아주' 많은 사례가 나름의 이론을 바탕으로 분석되어 있는데, '썰'로서 흥미로우면서도 결절이 되는 사건을 어떻게 취사선택하는가에 따라 '확증편향'을 강화할 소지가 크다고 본다(책의 논리에 따르면, 1986년 우리는 사상 처음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1987년 국운의 이른바 '하지'를 기념하는 여름 축제로서 6월 항쟁에 이은 6.29 선언이 있었고,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이를 만방에 고했는데, 30년이 지난 2016년인 '동지'에 와서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다시 원점에서 새로 올 봄을 준비하여야 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24년 '입춘'을 기점으로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어 점차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주장에는 왠지 기대어 보고 싶은 심정도 든다). 아무튼 이 책에서 부동산이나 증시의 장기추세적 하락에 관하여 쓴 부분은, 논리적인 일면이 없지는 않지만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 읽으면 성급했다고 보인다(청와대 전 정책실장께서도 "부동산은 끝났다"는 주장을 과감히 하시고는 상당한 집값 상승을 누리셨으니... 여담이나, 우리 사회에서 집값 문제에 관하여 전국적 차원에서 거시적 추세를 보려는 시도는, 개개인이 처한 미시적 차원에서 '조금이라도 더 여건이 나은 집에서 살고 싶은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 한-예컨대 장하성 주중대사의 "모두가 강남 살 이유는 없다."는 마인드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 밖에도 지금은 들어맞지 않게 된 대목이 적지 않다. 물론 책 제목과도 관련하여, 주식의 수익률을 따질 때 물가상승률, 즉 '화폐착각'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내용은 당연히 문제가 없다.




  뭐 이러나 저러나 변동과 순환은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에서도 흥미를 끄는 주제임에 분명하고, 그 논리와 법칙을 체계적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오랜 숙원인 것 같다. 그리고 음양오행 명리학도 '윤리학'이나 '문학' 차원에서라면 쓸모나 효용이 전혀 없다고까지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세상의 많은 인문학, 사회학은 어떤 의미에서는 대개 '썰'에 불과한데, 이들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반증할 수 없다) 하여 모조리 배척, 폐기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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