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다룬 책이 쏟아지고 있다. 알라딘의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통일/북한관계] 분류하에만도 2020. 5. 22. 현재 2,106개의 상품이 등록되어 있고(90년대 이전 책 중에 등록되지 않은 상품도 많을 것이고, 다른 여러 카테고리에 흩어져 있는 책도 있다), 매월 단행본이 10권 꼴로는 꾸준히 등록되는 것 같다. 이전과 다른 것은, 이데올로기적 경쟁 대상 내지 당위적 실천의 지향으로서 북한과 통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실상 자체(인권 문제를 포함하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늘어났다는 점이다(경쟁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세력이야말로 북한 없이는 죽고 못 살고, 북한을 여전히 진지하게 경쟁상대로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이탈주민을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게 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통일부 집계에 따르면, 2000년대에는 연간 입국 인원이 2,000명~3,000명에 이르렀으나, 최근 들어서는 연 1,000명대로 줄어있다. 김정은 집권 후 국경통제가 늘어난 영향도 있을 테고,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개인의 경제활동과 재산 사유화를 어느 정도 용인하면서 살 만하게 된 사람들이 늘어서일 수도 있다. 이탈주민 다수가 중국에서 잠복기를 가진 뒤에 남한으로 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분간 입국자는 더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2019년 말까지 북한이탈주민 3만 3천여 명이 남한에 와서 살고 있다. 인구가 늘면서 북한이탈주민 사이에 사기(詐欺), 동업 실패 등 분쟁도 늘고 있다. [통일부 > 주요 사업 > 북한이탈주민정책 > 현황 > 최근현황] https://www.unikorea.go.kr/unikorea/business/NKDefectorsPolicy/status/lately/

  


  최근 전 세계적으로 '난민 문제'가 이슈가 되다 보니,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남한에도 북한 주민이 3만 명 넘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깜짝 놀라며 난민 지위를 부여받는 것인지부터 묻는다. 우리 헌법상 북한도 대한민국 영토이고, 따라서 북한 주민도 특수한 지위를 인정받기 때문에, 법률(「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정원 조사를 거쳐 보호 여부를 결정한 뒤 하나원에서 사회적응교육을 받고, 직업훈련과 생계급여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해주면 무척 신기해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비하여 외국에서는 훨씬 더 남한과 북한을 아예 별개 나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남북이 각자 공식적으로는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대한민국 헌법 제4조, 통일부 존재 등). 하나원 도서관이 정서적(+ 사상적?) 연착륙을 돕기 위하여 책을 사려깊게 갖추어 두고 있다는 이야기나, 중국 어딘가에 숨어 살다가 입국하는 경우가 많아 글말은 몰라도 입말로서 중국어는 익숙해져 입국한 탈북 젊은이들이 대학에서 중국어, 중국 관련 전공을 많이 선택하고, 호기롭게 경제학, 경영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가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는다.[통일부 > 주요 사업 > 북한이탈주민정책 > 현황 > 입국 및 정착과정] https://www.unikorea.go.kr/unikorea/business/NKDefectorsPolicy/status/entry/; 위키피디아 하나원 페이지(영문) https://en.wikipedia.org/wiki/Hanawon 참조.


  분단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교류 단절 상태가 오래 지속될 줄 알았더니, 연결, 저장매체의 발달로 남북이 서로의 실상을 간접적으로나마 꽤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책 2장의 "한국 대중가요에 푹 빠진 평양 시민", "한국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평양 시민"에서 보는 것처럼, 상당히 많은 북한(평양) 주민들이 남한 컨텐츠를 소비하고 또 동경하는 것 같다(북한이탈주민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분도 지인 소개로 북한에서 남한 드라마를 숨어서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유학 나가있는 당 간부 자제들은 웹하드, 토렌트 사이트에 가입하여 남한 영화, 드라마, 대중가요를 '불법 다운로드'하여 즐긴다(10년도 더 전에 들은 일이다). 유튜브에서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북한을 여행하고 업로드한 영상을 쉽게 만날 수 있고, 심지어 북한 쪽에서 운영하는 계정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책이나 영상을 보면 적어도 평양만큼은 전혀 아무 것도 없는 상태까지는 아님을 알 수 있다(생각보다 준수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미국에서도,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더라도, 특히 트럼프의 카운터 파트너로서 '김정은'에 대한 관심이 늘어있다. 서점에서도 북한 관련서를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국제 학술대회를 가보면 북한의 '장마당'이나 웬만큼 자율권을 갖는 '회사'들에 관한 이야기가 오간다(책 1장 "시장경제의 펌프, 장마당" 등 참조).


  요컨대, 북한은 '자본주의'라고까지는 못해도 '시장경제'를, 어쩔 수 없이, 부분적으로라도 도입하고 있고, 2009년 화폐개혁 실패 후 시장에 대한 통제력은 더욱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대외교역 없이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있다(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변화가 임박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다. 1년? 3년? 아무리 늦어도 10년 내에는 올 것이 오리라고 보고 있다. 그 때까지 저 체제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독일, 베트남 등 모델이 거론되고 북한의 지하자원에 관하여 많은 기대를 거는 것 같지만, 이 책 328쪽 이하에 나오는 것처럼 과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통일로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늙고 있다[책에 인용된 KDI 보고서는 김두얼, 남재현, 김석진, 김영훈, 이상준, 송준혁, "남북한 경제통합 연구: 북한경제의 장기발전전략" https://www.kdi.re.kr/research/subjects_view.jsp?pub_no=13282인 것으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최근 김정은의 신변을 둘러싸고 벌어진 해프닝으로 주성하 기자가 그런대로 믿을 만한 정보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이었다. 다만, 이 책은 주로 기억에 의존하여 쓴 것인지 디테일에서 빈구석이 보이고(날짜가 궁금한데 책에서 찾을 수 없다거나), 책 특성상 일일이 출처를 들 수 없는 면이 있는 것도 같지만 위와 같은 문헌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그래도 지은이가 머리말에서 희망한 것처럼 "북한을 이해하는 데 대표적인 입문서"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발상을 전환하여 북한을 '에스토니아' 모델로 발전시키는 것은 어떨까. IT 기술이 격차를 빠르게 좁히는 묘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최근 미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년간 암호화폐 거래소 해킹 등으로 수십억 달러를 빼돌렸다고 한다. 정상적 경제활동이 막혀있다 보니 이런 식으로 외화를 버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모르긴 몰라도 상당한 기술자 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Danny Nelson, "미국 정부, '북한 암호화폐 범죄' 목록 공개", Coindesk Korea (2020. 4. 16.) https://www.coindesk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70735; Ian Allison, "북한, 암호화폐 이용한 거래로 경제 제재 회피" Coindesk Korea (2020. 4. 9.) https://www.coindesk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70685; Sebastian Sinclair, "North Korean Hackers Ramp Up Efforts to Steal Crypto Amid Coronavirus Pandemic," Coindesk (May 11, 2020)].


  빠른 사회 동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법문화의 통합이라고 생각한다. 책 전반에 나오는 것처럼 북한 사회는 현재 '뇌물의 연쇄'로 돌아가고 있고, 공동체를 위해 규범을 지킨다는 의식이나 공감대가 거의 없는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위반자들을 아무리 사형시킨다 한들, 법이 먼저 공정하고 또 일관되게 집행되지 않는 한 규범력은 결코 높아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평양의 법률시장 개방이 임박했다는 소식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사회에 법치주의와 법문화부터 뿌리 내리게 해야 한다. 강한, "(단독) 북한, 사실상 법률시장 개방… 법적 인프라 구축 본격화", 법률신문 (2020. 5. 18.) https://m.lawtimes.co.kr/Content/Article?serial=161567; 강한, "(단독) 한국 로펌, 평양 진출 추진", 법률신문 (2020. 5. 18.) https://m.lawtimes.co.kr/Content/Article?serial=161551 등 참조.


  전 세계가 방역하느라 정신이 없는 시기이지만, 그런 때일수록 더 철저하게 대비하고 움직여야 한다. 어쩌면 많은 나라가 여력이 없는 지금이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국제적 협력, 특히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인심을 쌓아두어야 한다. 중국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시기가 위기이자 결정적 기회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채권에 외국인 투자자가 모이고 있는 것은 호재다. 결국 통일자금은 그렇게 마련해야 한다. 이미 많은 기관들이 나름의 분석과 행동전략을 마련해두고 있지만, 불현듯 닥칠 제재완화와 교류증대의 상황에 먼저 발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각자 처한 위치에서 만반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덧) 133쪽에서 137쪽까지에 나오는 '대동강맥주' 이야기, 특히 1번부터 7번까지 맥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정말 매혹적이다. 현지에서 먹는 맛이 궁금하다!


  주성하 기자는 위 책 이후에도 책을 한 권 더 내셨다.




  북한의 경제와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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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2020-08-04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 글에서 통일부의 ˝북한이탈주민 입국인원 현황˝은 입국자만 집계한 것이어서, 실상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불과 며칠 전에 성범죄 수사 중 재입북한 탈북민에 관한 기사가 언론을 뒤덮기도 하였지만, 끝내 남한에 정착하지 않고(또는 못하고) 제3국으로 가는 인구도 함께 고려에 넣어야 할 것이다. 이에 관하여는 주성하 기자의 다음 영상을 참조. https://youtu.be/vm2Qz8Zx7Uo

오늘 ˝좋아요˝가 달려서 보니 글에 잘못된 내용이 있음을 깨닫고, 원문을 수정하지는 않고 댓글로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