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글들을 많이 담고 있다. 2002년에 나온 책으로, 인용된 문헌들은 훨씬 더 오래된 연구들이라, 이 책만 봐서는 최근 20~30년 사이에 눈부시게 발달한 방법론을 전혀 챙길 수 없다(책에 따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은데, 1995년에 정민사에서 같은 책이 나왔던 것으로도 보인다). 현실의 법제도 운용에 곧바로 젹용될 수 있는 실용적 연구들임에도, '실증자료에 입각한 과학적 정책 수립'과는 거리가 먼 우리 문화에서는 '법심리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제대로 크지 못한 채 딴 나라 이야기로 머물러 있다.
[어느 나라나 다소간 그런 경향을 가지고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정책 결정의 방향을 좌우하는 것은 '진영'이고, 그 진영에 의한 '프레임 선점'이다. 한 번 프레임과 방향이 서고나면 그와 배치되는 어떤 증거도, 전문가들의 우려와 이견도, 덮고 넘어가기 일쑤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http://likms.assembly.go.kr/bill/main.do에서 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들여다보면, 별다른 근거도 없이 당론에 따라 대충 감으로 만들어지는 법이 얼마나 많은지를 여실히 볼 수 있다. 우리가 깔보는 여러 선진국들은 법을 그 정도로까지 허술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아무리 트럼프 같은 대통령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더라도, 대중의 관심을 끄는 상징적, 이데올로기적 정책 일부를 제외하고는(오늘날 정치는 거대한 비즈니스이고, 정당도 이익집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와 같은 정책들은 국가의 예산과 자원, 인사권을 둘러싸고 벌이는 경쟁-선거-에서 대중을 낚기 위한 擬似쟁점(pseudo-issue)이고 미끼들이다), 효과와 부작용에 관한 경제학적 분석, 비용 편익 분석을 당연히 거치고, 다양한 입장과 각도에서 작성된 심도 깊은 논문·보고서가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제출되며(근거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는 게 아니라 정해진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근거를 만드는 경향이 최근 더 뚜렷해진 '정당 산하 연구소'들과는 다르다. 또한 국회의원들이 어떤 자료를 참고하여 법을 만드는지를 알기 어려운 우리와 달리, 입법자료가 온라인에 충분히 공개되어 여러 방식으로 검증받는다), 다른 입장에 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청회가 개최된다(누구라도 쉽게 온, 오프라인으로 볼 수 있다). 그 자리에서 의원들은 입장을 열어둔 채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실질상 대다수 법들에서 대통령이나 정당은 문제되지 않는다. 어쩌면 분야별 전문가 풀을 최대한 활용·존중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누가 되든 큰 틀에서 나라가 굴러가는 데는 대차가 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다만, 이번 팬데믹 국면에서 미국은,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이 여러 약점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대재앙을 초래하고 있다). 연방제 국가의 경우, 신기술이나 여타 새로운 사회적 현상과 관련한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 복수의 주(state)가 저마다 일자리 유치 등 다양한 동기에서 다른 버전의 정책을 내놓고, 연방 차원에서는 이들의 정책실험 결과를 본 뒤에 최선의 것을 연방법으로 최종 낙점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미국은 이론상 50 개 이상의 법이 실험될 수 있다). 아무튼 우리 유권자들도 미디어로 보이는 이미지만 볼 것이 아니라 대표자들이 어떤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따져 그들의 '유인구조'에 건설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안목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의안정보시스템에 공개된 회의록(특히 소위원회)을 찬찬히 보면, 겉으로는 멀쩡하게 잘 포장되어 있는 정치인들마저 실제로는 얼마나 전문성이 떨어지고 책임 없이 아무 말이나 늘어놓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우리가 이들에게, 언론에 나갈 '한 방'에만 집중하면 되는 유인구조 이상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도 당내 정치, 이미지 관리나 신경쓰고 정쟁에 골몰할 뿐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료와 근거를 따지지 않는 이런 문화를 바꾸려면, '링크'를 허용하지 않는 포털의 기사 제공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하여야 한다. 우리 이상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에서 주요 언론이 자료를 인용할 때 그 근거를 링크로 달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독자는 기사를 직접 검증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스스로 더 조사할 수도 있다. 따라서 링크 여부는 민주적 언론 환경의 징표이다. 그런데 우리는 각 언론사가 아니라 포털의 큐레이팅을 통해 뉴스를 접해왔고(네이버는 다음카카오와 달리 기사 선별 정책을 바꾸었지만 여전히 독점적 플랫폼으로서 지위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 상황에서는 '클릭장사'에 가장 큰 유인이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론사들이 굳이 더 노력해서 양질의 기사를 생산하려 하지 않는다(다른 나라들에 비해 기사 길이가 짧고 독보적 기자 몇 명을 제외하고는 수준도 얕다. 언론이 대중교육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이는 크게 우려스럽다). 시장이 작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자료를 꼼꼼히 링크로 달아 신뢰성 높고 차별화된 기사를 내는 언론들이, 더 많은 독자, 혹은 절대 독자 수로는 아니라도 기꺼이 구독료를 낼 수 있는 독자를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안타깝게도 충분히 개선되지 못한 지금의 기사들마저 독자를 유튜브에 빼앗기고 있다).]
돌아와서, 책의 13장 중 12장이 직, 간접적으로 형사법 이슈를 다루는 논문인데, 우리는 실증에는 관심이 없고 규범만 따지느라 범죄학, 범죄심리학, 행형학과 같은 인접학문의 성과들이 법에 충분히 녹아들지 못한 채 따로 놀고 있어 씁쓸할 따름이다. 원자료(raw data)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다 보니, 사회과학자들도 우리 사회의 문제는 충분히 분석하지 못하고 나날이 격차를 벌리는 외국 연구만 부럽게 바라보며 손을 빨고 있어야 하는 형편이다.
어쨌든 법심리학은 우리나라에서 불모의 상태로 남아있는데, 그나마 Wrightsman's Psychology and the Legal System 제8판이 감사하게도 올해 3월 번역되어 나왔다. 제8판은 2013년에 나온 것인데, 미국에서는 한글 번역본이 나오기 2년 전인 2018년 3월 이미 제9판이 나왔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 책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최신의 지식은 어쨌든 대개 영어로 생산되고, 영어로 직접 읽지 않는 한 최소한 5~10년씩 번번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연구자 풀이 두텁지 못하여 쏟아지는 최신 지식을 모두 소화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국내에서 유명한 대중 강연자 내지 지식소매상의 강연이나 대중서 몇 권을 접하고선 그것이 전부이고 최고라 생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너무 많다. COVID-19에 대한 상대적 성공만으로 자만하기에는 아직 우리가 이룬 것이 턱없이 적다. 겸손하게 내실을 다져야 한다.
[해외체류 경험이 전반적으로 많아지면서 다행히 예전보다는 우리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 같고, 고생 중인 2030세대는 윗세대에 비하여 편협한 자기중심성이 덜한 것 같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이들 세대는 이전 세대가 누렸던 기회를 누릴 수 없을 것이고, 당분간 계속 힘들 것이다. 그러나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이라 불리는 이들 능력자들이 주역이 될 15~20년 후에는 지금 응축한 실력이 분명 빛을 볼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한편 또 그럴 수 있으려면, 타인과 소수자에 대한 배타성부터 뼈를 깎는 노력으로 고쳐야 한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 혐오와 차별적 인식은 '세계가치조사' 등 여러 조사에서 최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부끄럽고 '저질스러운' 모습이다. "조나단, 한현민, 라비 '흑형'이란 말에 상처 받는 이유", BBC News 코리아 (2019. 9. 4.) https://www.youtube.com/watch?v=QnTPdBMLzOo; 세계가치조사 http://www.worldvaluessurvey.org/WVSContents.jsp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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