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사회에서 있었던 여러 젠더 이슈들을 "인식"할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해 답답하던 차였는데, 생각의 도구들을 많이 충전할 수 있었다. 완벽한 답까지는 아니어도 무엇을, 어떻게 질문하여야 하는지, 또 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좋은 안내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재미도 있다.
실린 글 다섯 개와, '들어가는 글' 모두 챙겨 둘 만한 생각꼭지를 담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는 제주지검장 사건을 '퀴어 범죄학(Queer Criminology)' 관점에서 다룬 루인 님의 글이 가장 흥미로웠다. 퀴어 범죄학은 생소한 분야였는데, 1990년대 중후반 등장하여 2010년대 들어서부터 활발해졌다고 한다. 찾아볼 필요를 느꼈다. 다만, 루인 님의 글에서, 잘 차려진 질문들 위에(이를테면, '공적 공간'과 '공공성' 내지 '공연성' 개념이 관찰자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우발적으로 구성되는 개념임과 동시에, 관찰자가 어떤 존재냐에 따라 달리 규정된다는 점에 대한 지적. 예컨대, "제주지검장의 행위를 목격한 사람이 '덩치 좋은' 성인 '남성'이었다면 어땠을까?" 책 83~86쪽), 결론부에 해당할 87쪽 이하 "'괴물'을 보호하라" 부분은 논지가 충분히 서술되지 않았다고 느꼈다("쾌락을 생산하는 음란 행위와 성행위를 범죄로 판결하는 현행법, 혹은 사회 규범이 정말로 보호하는 것은 성/폭력을 재생산하는 바로 그 자신 아닌가? 지배 규범의 윤리에 따라 괴물로 추방된 존재인 나는 나와 같은 괴물을 '보호'하기 위해 '괴물'을 보호하는 사회에 질문하고 싶다. 괴물을 보호하라. 그런데 누가 괴물이고 무엇을 보호하는가." 책 90쪽).
정희진 님의 글은 책 제목을 이루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나도 전략적 차원에서 간혹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양성평등은 여성주의의 덫이다. 여성주의의 목적 중 하나는 사회 정의로서 성차별을 철폐(완화)하는 것이지, 남녀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역사도 역사지만, 집단과 집단이 평등해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책 49쪽)]. 한국 사회의 근대성 지향에 기댄 양성평등 담론을 성찰하고 비판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였으나,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다음과 같이, 조금 허탈하게(?) 끝맺고 계신다. "현재 한국 사회가 여성의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성차별이 극심한 사회에서 남성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모색을 제안해야 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사회 정의의 문제이자, 남성 개인의 양심의 문제이다. 젠더 문제에 관한 한 남성에게는 '양심의 자유'보다 '양심의 의무'가 더 중요하다. 나는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여성 문제에 대한 '외면의 정치'가 인간 본성으로 굳어질까 두렵다. 사회는 '여성 문제'를 부담이나 갈등으로만 여기지 말고, 여성주의에서 대안적 삶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책 56쪽). 이전에 쓰셨던 다른 글들과 차이를 느끼지 못했고, 인용 표시가 충실하지도 필연적이지도 않다.
권김현영 님의 글은 '미성년자 의제강간죄'를 다루고 있다. 최근 의제강간 기준연령이 만 13세에서 만 16세로 상향되었는데, 그것만으로 충분한 조치는 되지 못할 것이다. 여성 청소년과 남성 청소년이 달리 처하는 성별화된 조건과, 청소년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권리에 대한 분석과 논의가 함께 따라야 한다. 메갈리아 미러링과 한국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를 다룬 류진희, 한채윤 님의 글도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다뤘다. 다른 도란스 기획 총서들도 제목이 눈길을 끈다. 모두 읽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