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다음과 같은 글을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걸어두고 가슴 뜨거웠던 적이 있었다. 이 책 98쪽에도 인용되어 있는 구절이다.
"GNP는 대기 오염과 담배 광고비를 따지고, 도로 위 부상자를 실어 나르는 구급차의 개수를 셈에 넣는다. 또 문에 다는 특수 잠금 장치의 생산량과 그것을 부수고 침입하는 범죄자들을 집어넣을 감옥의 개수와 비용도 따진다. 그리고 거기에는 삼나무 숲 파괴와 불규칙하게 확장되는 도시로 인한 자연 파괴도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GNP는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그들이 느끼는 즐거움은 측정하지 않는다. 또 GNP는 문학의 아름다움, 결혼 생활의 안정성, 공공 담론의 적절성, 정부 관리들의 성실성은 반영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의 지혜와 용기, 학습, 열정, 애국심도 반영하지 못한다. 요컨대 GNP는 우리 삶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요소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측정한다."
- 암살당하기 3개월 전인 1968년 3월, 로버트 케네디 [1963년 암살당한 대통령 케네디의 동생으로, (트럼프가 이방카와 쿠슈너를 기용한 것처럼?) 형이 임명하여 미국 법무부 장관이 되었고, 이후 뉴욕 주 상원의원을 지내다가 1968년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후 암살됨]
언제 읽어도 멋진 문장이다. 그러나 게리 베커와 캐스 선스틴의 세례(?)를 받은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우리 삶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요소"들이 진정으로 합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으려면, 이들에 어떻게든 가격을 충실히 매겨야 하고, 그 가격이 내가 생각하는 가치에 값할 수 있도록 차라리 '가격 산정 (방식)'을 놓고 사회적, 문화적 전장에서 싸워야 한다.
'이러저러한 것들은 도저히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므로, 불경스럽게 가격을 매기려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만 고수해서는, 스스로는 도덕적 우월감에 도취되어 만족스러울지 몰라도,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벌이는 싸움과 협상의 장에서 그 소중한 것들을 계정에 올려보지도 못한 채 배제되기 십상이다. 정책 결정이든, 분쟁 국면에서든, 인습과 통념을 타파한다는 차원에서든,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사실은 내가 '가격을 어떻게 매길 것인가' 하는 싸움을 방기해둔 사이에) 세상 모든 것에는 가격이 매겨지고 있고, 명시적 암묵적으로 비용-편익 분석이 일어나고 있다.
세월에 걸친 얽히고설킨 싸움의 향방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리고 교환방식이 변하기는 하여도, 예나 지금이나 생명, 사랑, 우정, 희생과 헌신, 그 밖에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매겨지는 가격이 없었던 것이 결코 아니다. 누군가와 결혼을 하는 결정을 하기에 앞서서도 당연히, 누구나 본능적으로, 그로 인한 비용과 편익을 저울질해보게 되고(기회비용도 고려된다), '자유연애'가 생소하던 시절에조차 대부분 사람들이 도망치거나 목숨을 버리는 등 큰 비용이 따르는 선택을 하는 것보다 봉건적 관습과 이를 담지한 부(모)의 뜻을 따르는 것이 낫다는 계산을 한 것이었을 뿐이다('자유로운 선택'의 가격이 지금만큼 높지 않기도 하였고). 과거 경제학에서 재생산노동, 가사·돌봄노동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였던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경제학은 적폐라며 담 쌓고 실리 싸움에서 퇴각하여서는 곤란하다. 경제학자, 통계학자들 가운데서도 자신이 가진 무기로 주목받지 못하였던 것들에 빛을 비추는 연구를 하였던 사람들이 분명히 있어왔고, 사회가 성숙하고 인식의 지평이 넓어짐에 따라 이론도 얼마든지 많은 것들을 포괄하게 되었다(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연구가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데, 그 많은 연구자들이 모조리 바보에 냉혈한이 아닌 이상 20년, 30년 전 몇 권 책에서 읽은 내용이 그 분야의 전부일 리 없지 않은가).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인 것도 맞지만, 기왕이면 주장할 바를 주류적 문법으로도 설득력 있게 번역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다 떠나서, 지금 베이비시터, 가사도우미 시장이 역할 하나하나를 어떻게 더하고 빼는지, 또 그분들이 어떤 능력이 있고 어떤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에 따라 얼마나 세밀하게 값을 매기고 있고, (인터넷 발달과 더불어) 수요 공급을 얼마나 철저하게 반영하고 있는데, 왜 이런 노동에 가격이 없단 말인가. 맞벌이 부부 한쪽 소득이 고스란히 베이비시터에게 들어가는 판국에 언제 적 저평가 이야기인가. [그런 면에서, 출산율이 떨어져 '국가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호들갑 떨면서 괴이한 정책만 들고나오고, 급기야 출산을 독려한답시고 '애국심'에 호소하기까지 하는 못난이들은, 이 시대에 왜 연애, 결혼, 출산이 '손해 막급한 장사'가 되었는지에 대한 감을 전혀 잡지 못하고 있다.]
여하튼 "문화는 [...] 사회의 집단 가격 체계이[고]"(책 251쪽), "어떤 행동이 한 국가의 정치 문화 속에 깊이 뿌리 내렸다면, 그것은 그 행동이 가격에 합당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책 246쪽). 50년대생, 60년대생, 70년대생, 80년대생, 90년대생, 21세기생의 생각 차를 보면, 최근 들어 그 '집단 가격 체계'는 더 급격히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역사적 사명을 다한 세대는 새로운 세대의 가격 체계가 사회를 운영하는 중심원리가 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지은이가 런던에서 quantum fields and fundamental forces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기에 책이 조금 더 학술적일 것을 기대했으나, 영락없이 저널리스트의 책이다(지은이 프로필 https://nytedu.com/faculty/eduardo-porter/). 이렇게 삽화들을 모은 것도 의미가 없지 않지만, 여러 '불편한 진실 시리즈'가 다소 난삽하게 나열되어 있는 느낌이다(그런데 이 책에는 원래 문헌 인용 표시가 전혀 없는 것일까? 아무리 대중서라도 미국 출판계에서 어지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역자와 출판사가 임의로 뺀 것일까?) 아무튼 내용을 좀 더 잘 꿰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중간중간 빼어난 통찰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미 이러한 사고와 연구에 익숙하신 분들께는 막상 그렇게 새롭다고 여겨지는 대목은 많지 않으실 수도 있다(게리 베커가 이미 오래 전에 우리의 생각을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여전히 대단히 도발적이고, 4장 '여성의 가격' 부분은 찬찬히 따져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며, 개인적으로는 7장 '문화의 가격' 부분이 좋았다.
지은이는 올해 3월 신간을 냈다. 표지가 이게 아닌데, 알라딘에는 이 빨간 책만 나온다(2020. 5. 16. 현재). 선스틴 교수의 『The Cost of Rights』도 참조. 우리나라에서야 아직은 샌델 교수의 '도덕주의'나, 주류 경제학이 시장을 만능으로 생각한다고 부당전제 한 채 이를 악마화하는 '반경제학주의'가 더 잘 팔리겠지만, 위에 쓴 것처럼 그런 도덕 우선의 가격 체계(도덕을 특권화하여 도리어 고립되는 결과를 낳는...)도 점차 궁지가 드러나면서 당분간 도전받고 정정되는 것이 불가피하지 않나 싶다. 구시대에 당대의 통념을 깨고 여성의 권리를 앞장서서 옹호했던 이들이, 정의론자, 도덕론자가 아니라 사회통계학의 기초를 마련한 수학자 콩도르세, 벤담이나 존 스튜어트 밀 같은 공리주의자였다는 것도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 이전에 쓴 "박홍규 교수의 샌델 비판" 글도 참조.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0486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