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때때로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변화를 우리 생에 새긴다. 제물로 선택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흘러가는 것뿐이다.

  아기가 태어난 후 고민의 차수가 늘어났고, 겁이 많아졌다. 생기 넘치는 아이가, 매일 아침 재생되는 것 같은 싱싱한 마음으로, 매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빠를 부르고 있는 동안에는, 생각에 잠길 겨를도, 뭔가를 느낄 시간도 없다(372쪽). 다만,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을 아이의 눈으로 다시 바라보게는 된다. 그 어떤 작고 하찮은 것도 아이의 눈에는 마법이다. 오늘은 갑자기 아빠 다리털이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이로써 티읕 발음을 연습하기 시작한다. 어느덧 세상은 같은 우리말 자음으로 시작하는 단어들끼리 묶이기 시작했다. 멍멍이는 엄마고, 바지와 바이올린, 바나나는 모두 '바'다. 하루하루 너무 빠르게 아이의 생각과 몸에 배어드는 아빠의 상징계가 미안하다. 이미 아이는 태어날 때 지니고 있었던 많은 감각과 직관을 적극적으로 퇴화시켰다. 기차라도 막아설 수 있을 것 같지만(178쪽), 어머니 배 속에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아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372쪽).

  우리는 호르몬으로 가득한 반죽 덩어리이고(136쪽),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178쪽). 200년쯤 뒤에 누군가 우리의 흔적을 추적한다면(229쪽), 혼인과 출생, 사망의 기록은 포착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가정의 역사, 관계의 중력은 거의 기억되지 못할 것이다(210쪽).언젠가 슬픔을 마주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 슬픔을, 평생 이들을 모르고 사는 삶과 바꿀 수는 없다. 우리는 의심하기 때문에, 기도한다(224쪽).

  옛 친구들을 만났다. 인생의 한 점에 잠깐 모였던 이들이, 딱 그만큼씩을 더 살아 저마다 멀어졌다. 생각지 않은 길을 돌아왔고, 삶은 점점 더 내 것이 아니게 된 것도 같다. 이런 모습으로 살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몸도 마음도 많이 뻣뻣해졌다. 한 선배가, 사람들은 제게 주어진 운명을 생각 이상으로 잘 받아들여 어떻게든 그 자리를 딛고 살아가는 듯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꾸 움츠러들게 된다. 심장의 전기적 활동이 계속되는 동안(107쪽), 어쨌든 순간순간 열심히 온기를 나눌 따름이다.


  가디언에 지은이와 리비아의 사진이 포함된 2017년 기사가 있다(아래 링크와 사진 참조).

  "In Every Moment We Are Still Alive by Tom Malmquist review – a deeply personal account of loss", The Guardian (2017. 6. 8.)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7/jun/08/in-every-moment-we-are-still-alive-by-tom-malmquist-review


  최근까지도 책이 회자되고 있다(Aftonbladet은 1930년 창간된 스웨덴 신문으로, 현재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신문이다).

  "Jag hade lovat Karin att skriva klart den", Aftonbladet (2019. 3. 8.)

  https://www.aftonbladet.se/kultur/a/OnGyww/jag-hade-lovat-karin-att-skriva-klart-den


  톰과 리비아 두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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