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집사란 무엇인가?‘, ‘품위란 무엇인가?‘

  그것은 전문가적 실존을 사적인 실존을 위해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이다.


  『본격소설』보다 더 본격적으로 영국적이다.

  이방인이었을 작가가 영국사회 바퀴의 중심축을 이만큼 움켜쥘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바퀴의 살은 어제의 위가 오늘은 아래에 놓이고, 오늘 아래에 있던 것이 내일은 다시 위로 가지만, 중심축만은 언제나 고정되어 있고, 그래야만 바퀴로서 기능할 수 있다. 뒤집어지거나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다리와 다른 점이다.


  자신의 실존을 쏟아부었던 시절의 잔해와, 파국을 유예하면서 어쩌면 불가능한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서글프고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의 알속을 잃어버리는 날이 왔을 때 어떻게 거죽만 남은 실존을 껴안을 것인가. 남은 날에 지나간 날과 화해할 수 있다는 것도 생의 빛이 남아 있을 때에나 가능한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 드리운 니힐리즘을 극복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덤으로 Ernest Barker의 책을 갈무리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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