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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최인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추천 권유도 8
작품 서두에 저자는
“지혜란 자신이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를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건물 어느 곳에 창을 내더라도 그 창만큼의
세상을 보게 되듯이, 프레임이라는 마음의 창을 통해 세상을 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프레임을 통해서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따라서 프레임으로 인한
마음의 한계에 직면할 때 경험하게 되는 ‘절대 겸손’ 이것이 지혜의 출발점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무엇을 ‘보는지’,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
모든 과정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결국 특정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모든 정신 과정을 프레임이 ‘선택적’으로 제약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처음부터 전혀 보지 못하는 대상과, 고려조차 하지 못하는
선택지가 존재할 수 있다.“
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는데, 전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으로 저자의 주장 중 작품의
방향성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확실한 단락이 있어 그대로 옮겨(100페이지) 보았다.
“버클리대 조지 라코프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보수 진영은 이라크 침공을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명명하고, 진보진영은 ‘점령’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라크 사태의 본질이 ‘전쟁’으로 명명되면 그 해결책 또한 분명해진다. 전쟁이라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프레임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프레임으로 볼 때
이라크에서 철수하는 것은 곧 ‘패배’로 규정될 수 밖에 없다.
반면에 이라크 사태를 점령으로 프레임하면 이라크에서의 철수는 당연한 것이 되고
다만 언제 철수할지 그 시기만 문제될 뿐이다.
정치세력들이 주요 선거를 앞두고 이슈가 되는 구호와 어젠더를 선점하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위 내용은 해당 작품 주제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작금 우리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란 세력 치죄 과정’과 ‘다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준 낮은
전횡’이 함께 대비되면서 좌로든 우로든 어서 빨리 이 지난한 과정이 조속히 종결되어 다수의 민초가 좋은 소식, 밝고 힘찬 뉴스만 들어도 힘든 이 세상에서 밝은 미래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 연일 ‘다수’에게 깨지는 ‘소수’ -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어느 분이 주장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관점에서 소수에게 힘을
실어주어 기울이진 운동장이 되지 않도록 - 를 통해 뭔가 돌파구를 찾는데 도움이 될
만하다고 여겨지는 사항을 전하고 싶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가만 있어도 법범자로 단죄될 인간군상들에게 살아날 단초를 제공한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기에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그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정확한 위법성과 영향의 정도가 특정되지 않은 행위를 갖고 ‘반란’,
‘내란’ 운운하면서 자신들도 그리 잘한 게 없는 상태에서 미친년 널뛰듯이 침 튀어가며 목청 높이는 일부 수준 낮은 정치꾼과 그 추종 세력들의 치졸함과 극악스러움을 마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작금의 이런 모습은 쉽게 이야기해 이 땅에서 다수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정치권
라스푸티차’(기상 악화로 전장 터가 진흙 뻘로 변해 전쟁 양상을 지치게 만듬)현상은
특정 세력이 상대를 자신들이 의도하는 특정 ‘프레임’ 안에 상대를 가두고 자신들이
의도하는 방향과 방식으로 한껏 이용해 먹겠다는 의도로 밖에는 이해 되지 않고 있다.
이런 정치적 라스푸티차 현상을 깨고 건전하고, 효율적인 논쟁이 살아 숨 쉬는 정치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싸움의 판’을 전향적으로 바꾸는 즉, ‘소수의 주도에 의한 프레임 체인지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다수 주도로 난리 치는 행태가 시급한 민생과 민의 처리를
염두에 두고 하는 행동이라기보다 ‘자신들의 저급한 소욕’을 완성시키기 위해 벌이는 ‘보여 주기식 생쇼’라는 느낌과 함께 ‘이유는 없다 상대를 무조건 창피주겠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중세 특정 종교집단에서 ‘면죄부’를 팔 때 내세운 상식 밖의 저급한 슬로건인
‘성모 마리아를 겁탈해도 면죄부를 사면, 용서받을 수 있다’
는 막가파식 논리와 동급으로 내게 인식되고 있는 가운데, 반대 진영이 조금이라도
다수인 자신들의 의사에 반하거나,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하기만 해도
다수는 해당 주제와 전혀 관계도 없는 언젠적 사건인지 기록도 아스라한 ‘빠루사건’을
거론하는 ‘작태’를 보이고는 하는데, 이런 모습에서 그들이 국민과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하는 정치인인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수준 낮은 지지자들의 응원을 받으며
벌이는 난동질에 가까운 행동이 나의 눈과 귀를 거슬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정치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빠루사건’과 ‘비상
계엄 해프닝’ 배경에 어떤 공통 문제가 숨겨져 있는지를 잘 인식하고 있지만, 광란의
달콤함을 맛본 칼춤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칼춤 쇼’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더러워’
이야기를 자제하고, 침묵하는 것임에도 다수가 추는 칼춤에 대다수의 국민과 유권자가 동의하고 있다는 심각한 착각에 빠져 자신들의 행동이 마냥 옳은 듯 ‘무거운 민의’
를 안하무인격으로 해석해 수준 낮은 행동으로 연일 연결시키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따라서 이제는 일방적으로 추고 있는 다수의 칼춤에 대해 누군가 - 미약한 개인이지만 ‘나’부터라도 – 는 다수에게 자성과 건전한 방향으로의 전환을 촉구하기 위해 적극
나서서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여 작품을 접하고 의견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위와 같은 생각을 기본으로 이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프레임 전환’을
통해 상대를 역으로 특정 프레임 구조 속으로 몰고 가지 않으면 이 악순환의 고리를
쉽게 끊을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중은 논리로 설득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칼춤의 주인공들이 벌였고, 벌이고 있는 추태에 가까운 수준 낮은 언행에 적극 대응해 일방적으로만 당하지 말고 적극 대응할 때 ‘정치 집단 간 발전적인 선순환 경쟁구조’가 완성될 수 있을 것 같아 ‘강하게 대응’할 것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람이 우선’이라던 역대 최악의 수준 낮은 전임자가 특정인 집 앞에서 시위하는 것을 ‘양념’운운 하다 입장이 바뀌자 전전긍긍 했고, 회의 도중 주식거래 하는 사건, 과거 대리운전 갑질 사건, 싸드 설치반대 집회에서 난리쳤던 수준 낮은 인간들의
쎄쎄 사건, 천안함과 세월호 사건에 대해 자작극이라 외치는 인간이 넘치는 집단이었고, 앞에서는 후꾸시마 오염수로 난장질하다 돌아서서는 오염수에서 잡은 물고기로 회식
하며 입으로는 반일을 외치던 집단이며, 그들이 좋아하는 ‘특감’을 공항 참사 사건에는 왜 적용하지 않고 있는지가 궁금하며, 불체포 특권을 버리겠다고 또 전직 대통령도
잘못했으면 수사 받으라고 외치던 인물이 입장 바뀌자 말을 바꾸는 모습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저들의 모순된 모습을 부각시키는 ‘표리부동, 일구이언 프레임’으로 응수해야지 상대가 지적하는 특정 사건에 매몰되어 다수가 펼치는 프레임 전략으로 정치 싸움에
임했다가는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지난 9월 24일 합참의장 청문회장에서 또 일어났는데 수준 낮은 어느 누가 말도 안 되는 프레임으로 육사 출신을 몰아붙이자 발끈하며 육사 출신의 소수가 대응했는데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 다수의 말도 안 되는 ‘물귀신 작전’에 말릴 뿐 아니라 이기지 못한다.
내가 강조했듯이 그런 발언을 한 해당 인물의 과거 발언했던 내용을 근거로 ‘역프레임’
전략으로 대응했어야 했다. 발광했던 당사와 관련된 신문 컬럼(조선, 250308, 박정훈)을 옮겨보면
[왜 정권 바뀌자 '없던 간첩'이 계속 잡힐까]
문재인 정권의 간첩 검거 실적은 역대 최저였다. 간첩이 진짜 없던 게 아니라 없는 척하며 안 잡은 것이다. 12·3 계엄 정국은 잊고 있던 여러 사람의 과거를 소환했다.
대표적인 것이 박선원 민주당 의원이었다. ‘체포 명단’을 폭로하고 군 사령관들을 압박하며 내란 프레임을 만드는 데 앞장선 그는 종북 용공 단체 출신이었다. 연세대 ‘삼민투’ 위원장이던 1985년, 미 문화원 점거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징역형을 살았다.
이후 영국 유학을 다녀와 노무현 청와대의 행정관으로 공직에 입문한 뒤에도 천안함
폭침이 북 소행임을 부인하는 등 종종 논란을 일으키곤 했다.
특히 주목받은 것이 그의 국가정보원 이력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이듬해 그를 국정원장 특보로 기용한 뒤 4년 내내 기조실장·1차장에 앉혀 놓았다. 그 많은 전문가 중 하필이면 종북 이력의 국가보안법 사범을 간첩 잡는 국정원 수뇌부에 포진시켰으니 핀트가 안 맞는 ‘안보 어깃장’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박선원이 재직하던 동안 국정원은 역대 정권 중 가장 초라한 간첩 검거 실적을 남겼다. 방첩(防諜)이 주 임무인 국정원이 북한과 대화·협력하겠다고 나설 지경이었다. (중 략)
정권이 바뀌자 없던 간첩이 갑자기 생겨났을 리 없다. 간첩이 없는 게 아니라 안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문 정권 시절, 국정원에선 일선 요원들이 간첩 수사 보고서를 올리면 간부들이 휴가 등을 핑계로 결재를 피하는 일이 잦았다는 증언이 나와 있다. 결정적
대목을 삭제해 수사를 막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민주당은 국정원의 대공(對共) 수사권을 박탈하는 법안까지 강행했다.
만약 그 법이 몇 년만 더 빨리 시행됐다면 민노총 간첩이나 창원·제주 간첩단은 영원히 묻혀 버렸을지도 모른다. 계엄을 대한민국 파괴 범죄로 규정하며 헌법 수호를 내세우는 민주당이 이상하게도 간첩 문제 앞에선 흐물흐물해지곤 했다. 탄핵 정국의 와중에 새삼 민주당의 ‘과거’를 떠올리게 됐다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튼 이런 수준 낮은 인간들이 제기하는 문제를 갖고 발끈하지 말고 해당 인물이
행한 과거의 행적 중에서 두드러진 공적(?)을 선정해 또 그런 문제적 인물을 최초 추천한 인물까지 엮어서 맞불을 놓는 프레임 전략으로 또 칼춤 집단 내부의 문제를 갖고
‘역공 프레임’을 만들어 대응하게 되면 좋은 전략이 될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다수 집단 속에서 불거진 건을 갖고 활용할 대표적 사례로는 막말의 귀재 박수무당
비슷하게 생긴 인간이 지난 2018년 당시 모 종편 프로그램에서 특정인을 거론하면서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도 싫다 항상 분란이 일어난다. 왜 안 도우냐고 묻지만 그냥 안 도와주고 싶다. 하나하나 입에 올리기에 민망한 사건이 너무 많다‘고 한 발언과 최근에는 ‘그가 자기고, 자기가 그다’
라는 표현을 써가며 아부의 극치를 달리는 수준 이하의 처신을 소재로 역공의 프레임을 짠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또 그들의 단골 메뉴인 ‘빠루’를 물색없이 들고나오면 ‘그래서?’로 응수하고, 위에서
언급한 너희들의 문제는 위에 언급한 이런 것이 있는데 반성은 했냐?는 식으로 적극
대응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소수들의 전략가들은 어찌 생각하는지가 궁금할 따름이고 다수와의 싸움에서 무뇌아적 생각에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고는 해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결론적으로 유권자와 국민은 사건의 배경을 알고자 하지 않음이 지난 비상계엄을 통해 여실히 밝혀진 이상
특정 사안에 대해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두 번째 문제다.
사건에 대한 배경 설명은 자제하고 ‘팩트(프레임)’에는 ‘팩트(프레임)로 대응‘해야 할
것을 주문하고 싶다.
또 다른 방안 한가지를 추가로 제시해 본다면,
집권 세력의 칼춤은 특정 시점(?)까지 지속될 것이고 그들의 야욕이 채워질 때까지 지속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이를 인위적으로 막거나 강도를 낮출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이 현재로선 없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판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상대의 실수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들의 페이스에
말리지 말고 그들의 허실을 역사가 증거할 수 있도록 시리즈로 공표하는 방법을 강하게 권하고 싶다.
그 방안의 일환으로 기업에서 근무한 사람들은 쉽게 이해가 될 것으로 이해되는 방법
중 하나가 가칭 ‘정당 정치의 민낮’을 까발리는 방식의 제도를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것은 기업을 다녔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한 번은 해 봤을 ‘불량품 새벽 시장’같은 제도로 이런 행사를 정기적, 주기적으로 개최하여 칼춤 집단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홍보전을 전개해 보는 게 어떤지 생각해 본다.
끝으로 권력의 칼춤을 아이돌 수준으로 추고 있는 이들이 왜 저런가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의 심리를 감히 예측해 보면 저들은 ‘이권 확보를 위해 저 난리를 치고 있다’라고 판단된다.
대표적 사례가 가난 코스프레를 통한 주식 장난질을 비롯한 얼마전 있었던 모 인사에 의한 주식질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과거 정권에서 문제가 일으켰던 분야인 방산, 체육 및 태양광과 부동산 문제 등을 피해서 아직 특정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듯 보이는 ‘환경’과 ‘농어촌 분야’ 그리고
차기 황금 시장으로 예측되고 있는 ‘교육’ 관련 분야에서 뭔가를 만들 것이라는 느낌이 크게 들고는 한다. 그 단초로 고위직을 임명하기 전 인사청문회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대표적 분야가 교육부다.
왜일까? 흔들기 좋기 때문이다. 왜 흔들까? 그 결과를 우리 나중에 토의해 보도록
합시다.
한때는 종교를 흔들려고 했으나 코로나를 거치면서 코로나 확산의 주범들이라는 부정적 여론으로 국민적 부정적 감정이 거세지자 칼춤의 무리들은 방향을 선회한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어쨌든 요즈음 너나없이 소수를 짓밟는데 앞장서는 데 혈안이 된 여의도 정치꾼들의
작태, 특히 상대적으로 그 행동 범위가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치마입은 동지들이 펼치는 난리를 보고 있으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물색없이 나대는 이상한 치마, 정신 이상 수준의 발광하는 미친 치마, 돈 떼먹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치마, 버젓이 가짜정보 퍼트리고도 반성 없는 치마, 겁탈당한 과부같이 툭하면 난리치는 모지리 치마, 손만 대면 남 이롭게 하는 X맨 같은 치마 등 별의별 치마들이 누군가의 눈에 들기 위해 난리치는 모습이 조선시대 후궁들의 암투를 보는 듯해 한심하다 못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런 그들의 수준 낮은 치마 바람과 그들의
파트너들이 벌이는 칼춤을 보고 있으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같은 ‘악의 평범성’이 떠오르고는 해서 참으로 갑갑할 뿐으로 그들에게 조국이, 국민이, 국가의 미래가 있는지를 묻고 싶을 뿐이다.
모두가 웃으며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어서 빨리 오기를 기다려 본다.
Chapter 01. 프레임에 관한 프레임
- 마음을 비춰보는 창으로서의 프레임은 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보도록 이끄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보는 세상을 제한하는 검열관의 역할도 한다.
---> 프레임은 뚜렷한 경계 없이 펼쳐진 대상들 중에서 특정 장면이나 대상을 하나의
독립된 실체로 골라내는 기능을 한다.
- 프레임은 우리가 지각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선택적으로 제약하고, 궁극적으로는
지각과 생각의 결과를 결정한다.
- 프레임은 ‘맥락’이다.
프레임의 변화 즉, ‘맥락의 변화’는 다양한 얼굴을 만들어 낸다. 선거 전과 선거 후 당선인이 된 이후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정치인에게 ‘변절자’란 말을 쉽게 쓰는 것은 적절히 않다. 그가 후보로서 접하던 맥락과 실무자로서 접하는 맥락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 처하기 전에는 보지 못하던 것들이 이후의 맥락에서는 보이게 마련이다.
---> 작금의 우리 정치인들은 언젠가 누군가 이야기해 사회적인 이슈를 만들어 낸
국민을 저급한 개, 돼지 수준으로 보고 너무도 쉽게 거짓말과 말 바꾸기로 수준
낮은 대다수의 유권자를 우롱하는데 사용하고 있지만 다수의 유권자들은 그게
맞고 정의에 부합되는 줄 알고 맹신에 가깝게 부하뇌동하고 있어 그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 프레임을 바꾼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정의’를 바꾼다는 의미로 사물과 상황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다시 내려 보는 것, 그것이 프레임을 바꾸는 것으로 프레임 싸움은
‘단어의 싸움’이다.
--->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프레임으로 세상을 살면 매순간 순간이 중요해 진다.
---> 한 대상을 지칭할 때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는 단순한 어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프레임을 결정하는 중요한 행위다.
- 프레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여론 조사의 힘’ 즉, 질문의 내용뿐 아니라 질문의
순서도 영향을 주는 여론 조사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 대표적인 사례가 2002년과 2012년에 있었던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은
질문을 통한 프레임의 위력을 보여준 사례이다.
- 어떤 실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도구로 사용하는 비유가 사람들이 그 실체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따라서 회사를 바꾸고 싶다면 그 은유적
표현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 가족으로 비유되는 회사는 관계가 중시, 실험실로 비유되는 회사는 모험과
창의성이, 가족으로 비유되는 회사는 위계질서와 조화가 핵심가치이다.
- 프레임을 바꾸기 위해서는 ‘경험의 순서’를 현명하게 디자인하라 즉, 안 좋은 일을
먼저 경험하는 게 낫다.
- 효과적인 광고는 ‘대상에 대한 판단’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대상’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 구강청정제를 원래 치과에서 사용하던 치료용 의약품이었지만 입 냄새
제거제로 인간 관계의 치명적인 장애물로 프레임을 바꾸었다.
Chapter 02. 나를 바꾸는 프레임
- 행복한 사람은 ‘의미 중심’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 상위와 하위 수준의 프레임을 나누는 결정적인 차이는 ‘Why?(상위 프레임)'와
’How'(하위 프레임)를 묻는 차이점이다.
즉, 상위는 왜 이 일이 필요한지 그 이유와 의미, 목표를 묻고, 비전을 물으며
이상을 세우지만 하위는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성공 가능성은 있는지 등
구체적인 절차를 묻는다.
그래서 궁극적 목표나 큰 그림을 놓치고 항상 주변의 이슈들을 좇느라 에너지를
허비한다.
따라서 상위 수준의 프레임을 갖고 있는 사람은 No보다는 Yes라는 대답을
자주한다.
- 성취하는 사람의 프레임은 ‘접근’ 프레임이지만 안주하는 사람의 프레임은 ‘회피’
프레임이다.
- 프레임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 펩시콜라와 코카콜라의 사례
- 함께 나눌 수 있는 관계의 경험들이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따라서 현명한 소비자는 소유보다는 경험의 프레임을 가지려 노력한다.
- 지혜가 간구의 대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지혜는 끊임없는 훈련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지혜의 본질이 우리 마음의 한계를 지각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Chapter 03. 세상, 그 참을 수 없는 애매함
- 애매함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프레임’이다.
한마디로 프레임은 우리에게 ‘애매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주는 것이다.
- 우리의 감각적 경험도 항상 객관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프레임에 따라 달리
경험할 수 있는 본질적 애매성을 갖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 은메달리스트가 동메달리스트보다 더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거둔 객관적인
성취를 가상의 성취와 비교함으로써 객관적인 성취를 주관적으로 재해석했기 때문.
은메달 리스트들에게 그 가상의 성취는 당연히 금메달이었던 반면 동메달리스트들이
비교한 가상의 성취는 ‘노(no)메달’이었기 때문이다.
- 삶의 문제에는 단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에 감성지능(EQ)과 사회지능(SQ), 이 두 개념이 인기가 있었던 것이다.
Chapter 04. 자기 프레임, 세상의 중심은 나
- 어리석음의 첫 번째 조건으로 ‘자기중심성을’을 꼽는다.
---> 나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에, 내 주관적 경험과 객관적 현실
사이에는 어떤 왜곡도 없다고 믿는 경향을 철학과 심리학에서는 ‘소박한 실재
론’이라고 한다.
- 어떤 것이든 자기 자신과 관련지어 바라볼 때 기억이 잘되는 이런 현상을 ‘자르기
준거효과’라 한다.
-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은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 ‘나’의 입장에서 타인은 짧은 시간에도 파악할 수 있는 ‘단순한 존재’이지만,
나 자신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야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 ‘복잡한 존재’로 보고 있다.
- 진정한 지혜는 내가 나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는 마음의 습관에서 나온다.
- 자기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창구가 되는 것을 막을 순 없다.
하지만 지혜는 우리에게 이런 자기중심성이 만들어내는 한계 앞에서 철저하게 겸허
해질 것을 요구한다.
Chapter 05. 사람인가 상황인가, 인간행동을 보는 새로운 프레임
- 나치의 반인륜적 악행을 설명할 때 사람들은 ‘소수의 악인, 소수의 사이코패스가
저지른 악행’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한다. 즉, 악(惡)이란 소수의 특정 악인에게만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존재 누구에게나 있음을 주장하는 것으로, 인간의 행동이
‘내면의 결과’라는 프레임을 갖고 있으면, 나치의 만행은 소수의 악인이 저지른 산물
이지만 그런 행동이 ‘상황의 산물’이라면, 아이히만의 행동은 그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그렇게 밖에는 할 수 없었던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 보통의 사람들은 ‘사람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 프레임’이
언제나 옳다는 과학적 증거는 생각보다 빈약하다. 오히려 사람의 행동은 그가 처한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는 ‘상황 프레임’을 지지하는 증거가 많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의 힘을 직시하게 되면, 나쁜 행동을 한 사람에게 조금은 더
관대해진다.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조금 덜 영웅시하게 된다. 쉽고 익숙한 ‘사람
프레임’에서 불편하지만 진실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 프레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Chapter 06. ‘내가 상황이다’의 프레임
- 상황 프레임이 인도하는 지혜의 끝은 ‘나 자신이 타인에게는 상황이다’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 그 사람의 내면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상황 때문에
기인한다는 깨달음, 그것이 지혜와 인격의 핵심이다.
- 우리는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친구의 힘은 인식하면서도, 우리가 친구
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 즉,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너의
한마디’란 말은 있지만 ‘너의 인생에 힘이 되어준 나의 한마디‘는 없다.
- 다른 사람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내 선입견이 먼저 내 행동을 바꾸고, 그 행동이
타인의 행동을 바꾸는 이 위험한 순환을 인식할 수 있도록 우리는 지혜로워질 것이다.
- 우리의 얼굴은 누군가에게는 탁월함의 기준을 높이는 자극이 되기도 하고, 그 기준을
낮추는 자극이 되기도 한다.
---> 탁월한 사람들 옆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탁월해질 가능성이 높지만 안주하는
사람들 옆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안주하는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 누군가에게는 내가 바로 프레임이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Chapter 07. 현재 프레임, 과거와 미래가 왜곡되는 이유
- 현재에만 존재하는 결과론적인 지식이 과거에도 존재했던 것처럼 착각하고 ‘내 그럴
줄 알았지’, ‘난 처음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심리 현상을 ‘사후 과잉
확산’ 혹은 ‘후견지명’ 효과라 한다.
--->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후에 내리는 모든 판단에 대한 확신을 지금
보다 더욱 줄여야한다.
- 과거는 현재의 눈으로 볼 때만 질서 정연하고 예측 가능한 것이다.
- 우리는 현재의 자신을 ‘챔피언’으로 보기 위해 과거의 자신을 기꺼이 ‘얼간이’로
치부한다.
- ‘현재 프레임’은 과거에 대한 회상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측 과정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 현재의 의지에만 집착하여 미래 계획을 세우다 보면 관심이 자기 내면으로만
집중하게 된다.
- 미래에 무엇을 할지 선택해야 할 때는 가장 좋아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편이
좋다.
Chapter 08. 이름 프레임, 지혜로운 소비의 훼방꾼
- 프레임을 좌우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름이다. 사람은 자신이 붙인 이름대로 세상을
판단한다.
- 지혜로운 경제생활의 출발은 ‘돈‘이다. 이름을 붙이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특히 ‘공돈’이는 이름을 피하는 게 좋다.
- 경제적 합리성의 기본은 돈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데서 출발한다.
Chapter 09. 변화 프레임, 경제적 선택을 좌우하는 힘
- 부자가 되는 것이 행복의 왕도가 아님을 잘 알면서도 너나없이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이유도 부자가 되어 가는 과정이 부자가 된 상태보다 더 즐겁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이득 상황으로 문제가 프레임되면 모험을 감행하기 보다는 안전하고
보수적인 대안을 선택한다.
---> 주어진 대안들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고민하기 전에 그 문제가
이득으로 프레임되어 있는지, 손실로 프레임되어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 지혜로운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 상태로 주어져 있는 대안을 ‘중립적인 대안’으로
리프레임해라.
- 어떤 프레임으로 제시되더라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경제적 지혜의
핵심이다.
Chapter 10. 지혜로운 사람의 11가지 프레임
- 최선의 프레임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인격성의 최후 보루이자
도덕적 의무다.
-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데 도움이 되는 11가지 방법들
1) 의미 중심의 프레임을 가져라.
2) 접근 프레임을 견지하라.
---> 자기 방어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 밖의 세상을 향해 접근하라. 접근함으로
인한 후회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안주함으로 인한 후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진다.
3) ‘지금 여기’ 프레임을 가져라.
---> 행복으로 가는 길은 지금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감사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됨
4) 비교 프레임을 버려라.
---> 비교 프레임은 배움의 기쁨과 도전정신도 앗아간다. 우리로 하여금 잘하는 것
에만 안주하게 한다.
5) 긍정의 언어로 말하라.
6) 닮고 싶은 사람을 찾아라.
7) 주변의 물건들을 바꿔라
---> 경쟁적인 마인드를 갖고 싶다면 경쟁심을 유발할만한 물건들로 주변을
채워라
8) 소유보다는 경험의 프레임을 가져라
---> 편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위해 소비해야겠지만, 정녕 한차원 높은
행복을 경험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소비하도록 하라.
9) ‘누구와’의 프레임를 가져라.
---> 탁월한 성취를 이룬 사람, 커다란 역경을 이겨낸 사람, 자기 삶에 만족을
누리는 사람들. 이들에게는 거의 예외 없이 ‘누군가’가 있었다.
10) 위대한 반복 프레임을 연마하라.
---> 우리가 천재로 알고 있는 사람들 대다수는 타고난 천재성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집중과 반복의 산물임을 기억하라.
11) 인생의 부사(副詞)를 최소화 하라.
--> 대표적인 인생의 부사는 ‘소유물’과 ‘타인의 시선’이다.
문장이 살아 있어야 삶에 생명력이 있다. 글과 삶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이지
부사가 아니다.
책에서 얻은 짧고 얄팍한 잡지식들
- 나는 세상을 강자와 약자,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배우는 자와 배우지 않는 자로 나눈다.(벤자민 바버, 사회학자)
- 행복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다.
행복은 ‘대상’이 아니라 ‘재능’이다.(헤르만 헤세)
- 지혜의 핵심은 올바른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존 사이먼)
- 실수한 적이 없는 사람은 결코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지 못한 사람이다.(아인슈타인)
- 인생은 자신을 발견하는 작업이 아니라, 자신을 창조하는 작업이다.
-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다.
- History는 ‘His + Story'의 합성어가 아니다. History는 그리스어 ’Historia'에서 유래한
것으로 ‘탐구를 통하여 배우는 행위’라는 뜻에서 나온 단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