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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1 - 역사평설 ㅣ 병자호란 1
한명기 지음 / 푸른역사 / 2013년 10월
평점 :
추천 권유도 9
나라 전체가 진실 규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목소리 큰 놈이 주인 행세하고, 분별없이
엄한 짓한 주인은 세인들의 눈총을 받고 엄한 곳으로 붙들려 가 제 목소리도 못 내는 이런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 이와 유사하지는 않았지만 과거 우리 선조들은 어떤 혜안으로 어지러운
국가적 난국 상황을 극복했고, 헤쳐나갔는지를 역사로부터 얻어서 개인 차원에서 주변에 널리
알리기 위해 ‘홍경래의 난’이라는 작품 이후 또 다른 작품에서 교훈을 얻고자 - 내가 국가와 민족
을 그 누구보다 생각하는 인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건전한 상식을 지닌 그냥 평범한 한
국민으로서 - 고심하던 중 우리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런 ‘능욕’을 당했고 가장 큰 혼란의 시기
였다고 판단된 ‘병자호란’이라는 사건을 선정해 작품으로 이를 확인하게 되었는데 평소 알고
있었던 내용보다 작품으로 마주한 우리 조상들의 피해 정도와 후유증이 더욱 심각할 것 같아
읽는 과정내내 속 뒤집어지기가 수차례였다.
작품을 접하면 느낀 사항을 독후감으로 정리하려다 보니 역사관이 흐릿하거나 과거에 대한
무지의 수준이 과도한 인간들이 나의 독후감을 보았을 때 요즘 사태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비루한 인간으로 비춰지거나 자칫 누구로부터 사주 받아 글을 올리는 ‘꾼’으로 비춰져 폄하할
것 같아 고민하다. 쉽고 평이한 수준에서 머리 속에 맴도는 내용과 나만의 주장을 갖고 정리하려
노력했다.
작품으로 들어가,
다른 이들은 본 작품을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는 최근 우리의
통수권자가 ‘비상계엄’을 선포한 과정과 인조반정을 합리화하는 모반 세력들의 처세술, 청나라와
맺는 굴욕적인 외교상황 그리고 이를 비준하는 과정에서 논의하는 신료들의 말과 행동이 최근
우리의 통수권자에 의해 초래된 질 낮은 통치 행위를 촉발시킨 행위와 상당한 유사성을 띄고
있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런 질 낮은 조치를 취하게 만든 정치 환경을 보면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역사는 누가 뭐래도 반드시 반복 된다’는 것과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 그리고 ‘깨진
유리창 효과’,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들었음직한 여러 귀한 문구들
이 지닌 의미성이 한꺼번에 밀려와 큰 소름이 돋았던 시간이었다.
특히, 작금의 사태와 연관지어 보았을 때 위에 언급된 ‘하인리히 법칙’과 ‘깨진 유리창 법칙’에
부합되는 여러 사건이 시종일관 처음부터 끝까지 나타난 현상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대표적인 그 이유로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반정공신들과 그 자식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을
바라보면 '촛불정신' 운운하며 집권했고 아직도 그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남 뒷다리 잡기가
특징인 어느 집단의 패악질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으며,
자신의 리더만을 위해 만민 앞에 평등해야 할 법을 악용하고 남용하는 집단을 통해 패거리로
왕과 백성을 농단했던 ‘송시열의 잔당’들이 살아 돌아온 느낌이 들었으며,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고 ‘비토권’을 남발하는 못된 인간 군상들을 통해 또 이유도,
명분도 빈약한 상태에서 정권 쟁취에 몰두하는 수준 낮은 무뇌아 집단도 보았으며,
대단한 권력이라도 잡은 양 입만 열면 ‘국민의 대표’라고 큰소리 치는 대표같지도 않은 인간과
연륜과 경험도 일천한 인간이 옛날같았으면 마주 보지도 못할 선배에게 비아냥거리는 것을 보며
조선에서 포로로 청나라 잡혀간 뒤 악질로 변한 역관들과 명나라 사신으로 조선에 들어와 패악질
을 일삼던 중국의 사신들과 보았다.
특히, 전임자의 알박기 인사로 후임자의 인사권을 제한하며 악날하게 버틴 후 퇴임과 동시에 터진
아가리로 지랄하는 수준 낮은 인간과 자신이 무슨 큰 벼슬을 하고 있는 인간인양 아무에게나
막말과 하대하는 저질의 인간과 민의의 전당해서 국정을 운영해야 할 인물들 줄줄이 탄핵시키고
돌아서서 자랑스럽게 웃음짓는 모습에서 남송의 재상 ‘악비’를 제거하는 데 앞장 선 희대의
‘간신’이자 ‘매국노의 상징’인 진회(1090~1155)라는 인물의 환생도 마주했고, 그런 인물이 틈만
나면 우리를 깔보고 흔들어대는 국가에 대해 ‘쎄쎄’만 하라고 외치는 모습과 그런 리더를 믿고
따르자는 무지 몽매한 저능무뇌아 집단을 보면서 저들을 진정 내가, 우리가 뽑은 국민의
대표인가하는 의구심과 자괴감에 밀려와 미치는 줄 알았다.
말도 안 되는 내용을 갖고 난리친다고 해서 그런 인간들과 그런 인간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집단을 질책하자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그런 그의 상대가 똑똑해서 또 그들의 행위가 올바르기
때문에 그의 적수가 되는 집단을 칭찬하자는 것은 더욱 아니다.
집권 세력의 반대의 편에 선 집단이 지금과 같이 국가와 국민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작은
발언 하나, 행위 하나하나가 정권 쟁취라는 그들의 대의명분에 가려져 지속적으로 자살 행위적
발언으로 연결될 경우 언젠가 그보다 몇 배 아니 몇 백 배 크나큰 부담과 국가적 변란으로 우리
에게 나타날 것이 우려되기에 즉, 소소한 현재의 작은 잘못이 ‘하인리히 법칙’과 ‘깨진 유리창
법치’으로 연결되는 것이 우려스러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일념 하에 지적하는 것이다.
정치권이 이런 저런 이유로 정신 차리지 못하고 이전투구식 헤게모니 싸움으로 난리를 칠 때
과거 우리의 리더였던 사람이라면 큰 어른으로서 양 쪽을 자제시키고 합심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그 리더였던 양반은 아직도 과거의 미몽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또 ‘모문룡’의 후손들에게 받았던 홀대는 잊은 채, 고무다리 긁는 애먼 소리만 남발하고 있고,
정치권의 수장이라는 어느 인간은 자기의 분수와 그릇도 모른 채 루돌프 사슴도 아니고 방울소리
요란하게 딸랑거리며 중국집만 기웃거리고 ‘내가 왕이 될 상이 아닌가’ 하고 헛심을 품고 다니며
비루한 면상으로 만면에 웃음을 띠면 자신이 높아지는 줄 알고 폼잡고 있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그 사람 집에는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도 없는 모양이다. 그런 인간을 보면 거울을 사 주고 싶은
심정이다. 집에서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이다.
- ‘군주의 거울’(21세기 북스, 김상근 著)이라는 작품을 읽어보기를 강력 추천하고 싶다 -
거듭 이야기하지만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과 ‘깨진 유리창 법칙’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그 단초를
작금을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의 일부 몰지각한 위정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음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단초는 우리가 찾아간 나라에서 받은 ‘홀대’에 관한 사항으로 나는 굳이 그것을
‘혼합의 문제’라 칭하지는 않겠지만 ‘하인리히 법칙’과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그와 같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강조하고 싶다.
외국 사절을 불러놓고 혼 밥을 하게 하는 문제는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받은 치욕적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나라 국민과 국가에 대한 모독 행위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미래의 어느날 우리의 새로운 후임 지도자가 ‘모문룡’과 ‘홍타이지’ 후손들에게 동일한 대접을
받아 항의해도
“너희 전임자에게 대접했던 방식과 유사하게 너희 신임 리더를 동일하게 대접했는데 옛날
전임자는 조용히 밥만 잘 먹고 ‘쎄쎄’하고 갔는데 후임자는 전임자와 달리 왜 지랄하냐?“
며 타박하면 무어라 대응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가 우리의 자위권을 위해 도입한 방어 무기에 대한 굴욕적인 정책을 전임자가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우리의 주적에게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을지도 모를 USB도 줬는데 저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아마도 더한 것을 갖다 주었을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후임자가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을 때 저들이 전임자는 인상만 써도 잘만 갖고 오던데
너희 후임자는 왜 안 갖고 오냐고 몽니를 부리면 어찌할 것인지 자못 궁금할 뿐이다.
결국 전임자의 수준 낮은 대응 자세로 인한 악순환은 관례가 될 것인데 그래도 혼밥의 문제가
향후 우리의 위상을 결정지을 요소가 아니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혼밥 한 그 당사자는 오늘도 자신은 떳떳하며 해당 출장 기간 동안 자신은 그들 서민의
실생활을 잘 파악하고 왔노라 이야기하고 앉아 있으니....국가를 대표해 회담하러 가라고 했지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다 나오는 그들의 실생활을 파악하러 거기까지 가서 할 일인지가 자못
궁금하며 우리의 말단 공무원도 그런 식으로는 답하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리더라는 양반은 원래 모지리라 그렇다 치더라고 그를 보좌한 참모라는 작자들이 더 문제이며
진정으로 나라와 리더를 위하는 참모라면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최근 러 - 우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가 만나 회의 도중 면박 당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 모습이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졌을까?
절대 아니다.
트럼프가 당선되기 전부터 해 왔던 일련의 발언들을 생각해 보라.
작은 게 모여 그런 큰 모습을 보인 것이다.
청나라에 의해 이 땅이 침탈 당할 때 수 십 만의 우리 선조들은 북으로 북으로 끌려갔고 종국에는
포로로 끌려간 선조들이 상품으로 취급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진정으로 모르고 있다는 것인가?
그런 그들에게 ‘쎄쎄’를 외치며 굴종하자는 어느 리더의 선조 중 한 사람이 그 호란 당시 북으로 끌려간 사람 중 자신의 조상이 한 명이라도 끼여 있었다면 그런 말이 쉽게 나올 수 있었을까?
세월이 흘러 지금은 몰라도 자잘한 증세가 모여 어느날 크게 밀려 올 때 당신의 후손도, 나의
후손도 안전할 수 없으며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의 이런 발언은 그런 상대국과 철천지 원수로 지내자는 게 아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리더라면 발언을 하더라도 책임 있는 자세로, 행동을 하더라도 국민을 대신한다는 당당한 자세로 해 달라는 것이지 비열한 웃음을 띠며 ‘쎄쎄’하며 헤롱거리지 말라는 이야기다.
제발 우리 민족이 당한 아픈 역사책 좀 읽고 다시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당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자세를 갖추어 수준 낮은 망발과 국민을 낮추어 보이게 하는 발언은 지양하라는 의미다.
법인 카드로 호의호식했을 터인데 그런 구분도 못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성격’은 얼굴에 나타나고, 본심은 ‘행동’에 나타나며, 인간성은 ‘약자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남을 우리 국민 모두는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거듭 이야기합니다. 빨간색이든 파란색이든 그리고 어정쩡한 색이든 정신들 차립시다.
작품을 분석해 보니
첫째, 지금도 우리 역사에서 ‘하인리히 법칙’의 단초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옛날의 ‘임진왜란의 일본’과 ‘병자호란의 중국’에 의해 발생한 역사적 침탈 행위, 근세사에서는
일제에 의한 ‘한반도 강점’과 중공에 의한 ‘한국 전쟁 참전’ 등의 사건은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
으로 연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일본과 중국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자잘한 사건, 사고 역시 또 다른 역사적 ‘하인리히
법칙’으로 연결되어져 몇 년 전 일본에 의해 벌어진 ‘반도체 원재료 수출 금지’ 사건과 중국이
사사건건 몽니를 부리는 ‘싸드 문제’로 연결되고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특히 후자로 발생된 일본과 중국이 일으킨 문제는 우리의 수준 낮은 리더가 입만 열면 ‘죽창가’
운운하며 과학적으로 규명된 오염수 문제를 통해 저열한 반일 감정을 부채질하고 우리의 안보를 위해 도입한 싸드에 대한 실행하지도 못할 ‘삼불일한’ 약속을 남발해 중국의 수모를 자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쎄쎄’만 하면 모든 게 해소된다는 망발로 인해 또 다른 ‘하인리히 법칙’을 초래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특히 아쉬운 것은 어느 분이 ‘짱개주의’에 대해 극찬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자 그에 대한 맞장구를
치면서 극찬하고 있는데 과거 청나라가 호란 당시 우리 선조 수 십 만을 끌고 가 상품으로 취급
했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다.
그러면 그들은 이야기할 것이다 언제적 이야기를 하느냐며 과거에 얽매여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수준이하의 사람이라고 질타할 것이다.
과거를 들먹여 그들과 싸우자는 게 아니다. 과거를 정확히 알고, 미래를 잘 대비하자는 차원에서 동일한 실수를 발생시키지 않으려면 즉,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을 재발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며 왜 그렇게 중국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죽창가를 운운하며 오염수 방류에 대해 난리를 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이전 정부를 ‘삶은 소대가리로 평가’한 북에서도 ‘일본은 100년의 적, 중국의 천년의 적’이라 표현
하지 않았던가. 그런 적 앞에서 ‘쎄쎄’하라?
심청이 아버지 시력검사 하는 소리하고 있는 우리의 질 낮은 차기 리더라고 외치는 어느 작자의
미소가 참으로 가소로울 뿐이며 그런 리더에 아부하는 수준 낮은 무뇌아 집단들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그런 역사적 하인리인 법칙을 끊어보고자 지금의 통수권자는 당신이 그렇게 밖에 할 수
밖에 없었던 여러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잘못된 수단의 선택으로 인해 국민을 아주 피로하게
만들고 있고 그의 편에 서서 무엇을 이야기하려 해도 모든 게 부정 당하는 모습이 되고 말았다.
같은 이야기의 무한 반복이지만 좀 더 신중했어야 하며 좀 더 체계적이어야 했었다.
결국 리더는 하늘이 내지만 그런 리더를 믿고 따를 수 있는 목표가 정당하고 합리적이어야 했다.
둘째는 리더의 자질도 중요하나 더욱 중요한 것은
리더를 보좌하는 참모다운 참모의 부재(不在).
1) 광해 정권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요소 중 하나가 훈련대장 이흥립의 사위였던 국왕의 경호실장
격인 훈련도감 대장인 ‘장신’의 변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 전란 중에 가장 시급했던 것은 ‘민생 문제’였으나 조정 신료들은 후금과의 ‘화의’가 불가피
했으나 오랑캐와 화약을 맺을 수 없다는 명분 때문에 고민한다.
‘윤황’은 후금과의 화의에 반대하면서
‘오늘의 화친은 이름만 화친일 뿐 실제로는 항복입니다. 전하는 요행을 바라는 간신들에
넘어가 더러운 오랑캐 사자를 접견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십니다’라는
직격탄을 날리나 오히려
‘유식한 그대들은 오랑캐에게 항복한 임금을 섬기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라고 맞받으며 윤황을 잡아다 국문하라고 지시했다.
** 요즈음 우리 정치현실과 비슷하다고 여져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3) 당시의 상황을 보면,
신하들은 ‘무관은 춥지도 않은데 떨고 문관은 천장만 바라보고 슬퍼하면서 임금에게만 모든
허물을 전가한다’고 통탄하고 있다. ‘홍타이지’는 조선의 신료들을 상대로 ‘책은 읽었지만 백성과
나라를 위해 경륜을 발휘할 줄은 모르면서 한갓 허언만 일삼는 소인배들‘이라면서 ’왕은 지금
서생들의 이야기만 듣고 있다‘고 힐난하고 있다.
4) 인조는 사태의 책임을 앞뒤를 따져 보지도 않고 오버했던 것이 청의 침략을 부르고, 궁극에는
자신과 백성을 끔찍한 지경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했지만 전란 중에 문제를 일으킨 반정공신
과 그의 자손들 김자점, 김경징, 장신 등에 대해 엄격한 군율 적용을 주저하고 있다.
5) 진정한 참모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신규 세력이 등장하면서 구세력을 감싸지 않고 처단을
택해 발전의 동력을 스스로 제거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인조반정 직후 이이첨과 정인홍을 비롯한 30여 명의 관인들을 처형했다. 쉽게 이야기해 ‘적폐
청산’을 단행했다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던가...‘적폐청산’이라고....
그러다 보니 인조반정이 성공하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새 정권이 구정권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새 정권의 행로를 주시하던 구정권의 잔당들 그리고 새 정권에 기대를 걸었던
사민들 가운데 불만을 품은 자들이 역모와 고변을 자주 언급하면서 인조 정권은 공신들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기득권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이 극히 희박했다.
1) 반정 공신들인 이귀, 김류, 이서, 신경진의 행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한된 자료에 국한되어 전체를 파악하기는 어렵겠지만 기득권 세력이 된 반정공신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보위와 영구 집권을 위해 반이성적 행위의 주도자들이었다.
특히 군사부문에 있어 반혁명 세력을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기찰(譏察, 향동을 넌지시 살핌)’을
강화해 국가보다는 자신들의 안위를 더욱 강화했는데, 이괄의 난 이후에는 자신들을 보호하는
사병의 숫자를 대폭 늘리는데 혈안이 되었었지만 정작 인조를 경호하는 인력은 극히 제한
시켰으며 반정공신 ‘신경진’의 경우는 ‘인조’가 군사적 지시를 내렸음에도 이를 무시하는 등의
문제를 야기했다.
---> 호란 당시 후금 군에 대항해 싸우다 전사한 ‘남이홍’은 ‘인조 정권 실세들이 벌이는
'기찰' 때문에 군사 훈련도 변변히 할 수 없었다’는 유언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2) 반정 공신들은 광해군 정권을 뒤엎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괄’에 대한 공훈을 낮춘 결과
‘난’으로 연결되어 인조가 파천하는데, 인조를 지원하는 인력이 추종해 이를 따르는 무리가
거의 없었고 인조가 궁궐을 비우자 약탈이 심했다고 하며 심지어 반정 공신들의 집이 백성들
에게 약탈당했을 정도로 민심이 반정 세력으로부터 떠나 있었다는 것은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집단이 무슨 짓을 했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으며 간단히 이야기해 혁명
으로 권력을 잡은 공신들이 이전 정권의 문제점이라 지적했던 ‘폐정’을 바로 잡기는커녕 광해군
대에 자행되었던 비리를 반복했음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3) 부제학 ‘정온’은 인조에게 ‘진정으로 오랑캐와 싸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반정
공신들이 거느리고 있던 정예병들을 정규군에 배속시킬 것’을 간청했으나 인조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고 반정공신인 ‘김류’는 남한산성에서 청의 기습에 당한 것을 자신의 지휘부재로
판단하지 않고 자신을 잘 따르지 않았던 부하들의 책임으로 돌렸으며, 왕실이 강화화도로
파천하자 강화도 방어 책임자로 자신의 아들(김경징)을 추천하지만 그는 도성을 출발할 때부터
철저히 멸공봉사(滅公奉私)의 자세를 보임으로써 인조의 기대를 저버렸다 특히 그가 강화도
에서 보인 패악질은 극에 달했다고 한다. .
---> 반정공신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약’을 받을 정도였다면 어느 정도의
패악질이 강화도에서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며 반정공신의 아들의 비리가 이정도였다면
반정공신과 그 가속들에 의한 비리는 입에 담지 모 할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4)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었던 백년 전쟁 당시 잉글랜드군에 저항한 책임을 물어 도시를 대표
하는 ‘칼레의 6인’과도 같은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 같은 위정자들이 있었던 반면,
인조를 비롯한 높은 관료들은 자칫 자신들이나 자신의 자식이 전쟁의 결과로 청의 인질로 끌려
갈 것을 우려해 고위 관료직을 사직하거나 임명되지 않으려 높은 벼슬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 해당 부분의 부실함이 호란을 초래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되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 하고 싶고, 주장하고 싶은 이야기가 한 두 개가 아니나
나보다 더 똑똑한 분들이 많아 조용히 넘어가고자 한다.
하여간 나쁜 인간들이 너무도 많이 활개치는 세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넷째 권력쟁취와 리더의 안위 보전에 몰입되어 국가 운영에 대한 전략과
전술이 전혀 없었다.
1) 국내적으로는 광해정권을 무너뜨린 이후 수립된 인조정권은 권력 쟁취 후 국가 운영에 대한
대안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직 광해 정권을 무너뜨리며 제시한 대의명분(폐모살제, 재조
지은, 청과의 관계, 무리한 토목공사로 인한 백성 원망) 중 어느 하나 합리적인 운영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보여 주었고, 국가적 변란 중 보여 준 지도층의 수준 낮은 행동
으로 인해 그들도 이전 정권과 다르지 않았음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었다.
2) 국외적으로는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외교 전략에 대한 분석 능력도, 대처 능력도 부실을
초래한 결과, 심각히 전개된 대륙의 거대 세력 싸움에서 오판함으로써 나라와 백성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는데,
대표적 사례가 광해에 의해 치루어진 ‘사르후 전투’(심하전투)‘ 사후 대처부실로 인해 집권층과
백성들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3) 병자호란을 통해 가장 안타까운 것은 역사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청나라에 인질로 나가있던
기간 동안 신문물을 접한 소현세자를 귀국 즉시 독살(?)시켰다는 점이다.
이로써 조선은 국가 발전은 고사하고 외부 세계와의 철저한 단절모드로 들어간 결과 당시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에 대한 난맥상으로 중국과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이용만 당했다는 점이다.
- 당시 조선은 새로운 칸으로 ‘누르하치’ 8남 홍타이지(1592~1643)에 대해 주시하면서 적정을
탐지할 사신 등을 통해 후금의 내부 사정을 파악했지만 내부 권력 다툼이 심화되면서 대처
능력을 상실했고
- 임진왜란 이후 철저히 관리해 온 일본에 대해서 정보(조선 재침략, 청과의 연합을 통한 조선
침공)를 파악하면서 견제하려 했으나 가장 시급했던 누르하치 위협에 대처하려면 일본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필수적이었다고 판단해 일본의 몽니에 가까운 요구를 대폭 수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조선은 이를 적극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병자호란을 바라보는 개인적인 종합적인 판단
해당 독후감을 작성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고민했으나 나로서는 이 내용을 정리하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내가 어떤 형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던 시간이 지나 작금의 이 글을 본다면 동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서쪽에서 난리를 칠 것이고, 서쪽으로 쓰면 동쪽에서 지랄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땅에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과도 같은 고난사가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동이고 서이고간에 남이고 북이고 간에 합심할 것은 합심하고 가슴에 묻어둘 것은
묻어두면서 즉,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겠다는 자세로 화합하며 앞으로 전진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