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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균열을 낸 결정적 사건들
김형민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10월
평점 :
추천 권유도 6
어떤 기준으로 작품에서 각 이슈의 꼭지를 발굴하는 기간을 설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역사 3천5백 년 역사 중 전쟁이 없던 시기는 270년에 불과하며,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90년에 이르기까지 2,340주 동안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던 기간은 단 3주라고 한다.
한마디로 이야기해 세계는 하루도 빠짐없이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고 항시 전쟁 속에서 전진하고 진보해 왔다는 것이다.
작품은 위와 같은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 중 누구나 알고 있고, 나름 의미를
갖고 있는 사건이지만 쉽게 알 수 없는 사건 30여 개를 선정하여 간략하게 이를 분석하며 그 사건이 지닌 의미성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나는 작품에서 언급하고 있는 30개의 사건 중,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거나 그 사건의 진의가 왜곡되어 내게 기억되고 있는 사건 4꼭지를 작품에 근거하여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으며 기타의 사건에 대해서는 일반상식 수준에서 참고하는 수준에서 정리해 보았다.
사건 1)
- 1939년 소련과 핀란드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서 등장한 ‘화염병’은 당시 소련의 외무장관 이름
에서 차용된 ‘몰로토프 칵테일’이라 불리는데, 핀란드는 당초 소련이 침공하면서 요구했던
이상의 영토와 산업시설의 10%를 상실하지만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독일편에 서서 소련에
대해 대응하나 전쟁 말기에는 독일과의 연합군 형태를 깨고 자국의 안정을 위한 전략을 택하게
된다.
즉, 적(소련)에게 역부족일 경우 고개를 숙였지만 복수를 위해 적(독일)에게 접근해 칼을 가는
숯 돌을 빌릴 줄 알았고, 적이 다시 득세할 기미를 보이자 냉큼 돌아서서 동맹군을 저버렸다.
---> 핀란드 지도자들이 소련에 대해 벌인 조변석개식 국가 운영 방식에 대해 이를 지탄할 수는
있었지만 국가의 리더가 자국과 자국민의 안정을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전략적 선택
이었다.
---> 당시 독일과 연합해 소련에 대항했던 ‘라스토 뤼티’ 대통령은 전쟁 이후 전범으로 재판을
받으면서 징역 10년에 처해 강자가 되어버린 소런으로부터 동정을 받으나 그것은 그 순간
을 살아나가려는 국가적인 ‘쇼’였으며 ‘뤼티 대통령’의 업적을 기려서 추후 그의 동상을
국회의사당 앞에 세운다.
* 우리나라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졌으면 낮은 수준으로 근근이 빌어먹는 듣보잡 역사학자들,
역사와 전혀 상관없는 노동자 대표단체들, 처음 들어보는 여러 시민단체들, 뻑하면 튀어나와
정의를 외치는 몰염치 종교인들이 아마 연일 데모를 했을 것이다.
왜? 진실은 중요치 않다. 약자들을 대변한다는 미명하에 자신들의 입지를 넓히는 것만 중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난리를 잘 쳐야 추후 ‘호가호위’가 일상화 되어 있고 비상식이 난무하며 몰염치가
판치고 어떤 저급한 짓을 하던 제식구만 감싸는 정치권 입장 티켓을 받아 후일을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공산 진영의 역사에 두 명의 ‘붉은 나폴레옹’으로 불리는 영웅 칭호를 받는 인물이 있었는데
한 명은 소련군의 젊은 원수 ‘미하일 투하쳅스키’와 베트남의 ‘보응우옌잡’ 장군이다.
---> 보응우옌잡은
1)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가 아닌 ‘나의 사전에 불가능한 싸움은 없다’가 슬로건.
2) 3불 전략으로 ‘적들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는다’, ‘적들이 싸우고 싶어하는 장소에서
전투를 치르지 않는다‘, ’적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싸운다‘
- 수나라가 고구려를 무릎 꿇리지 못한 이유는 고구려가 강력하게 저항한 측면도 있으나 고구려
군이 항복 의사를 표해 올 경우 승기를 잡았다고 공격을 감행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말고, 어떻게
할지 반드시 황제에게 물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을 어기고 포르투칼이 영국과 교역하자, 프랑스에게 스페인이 포르투칼
을 징벌할 것을 제안
--->프랑스군이 스페인을 경유 포르투칼을 점령하기 위해 스페인 도착했으나 오히려 스페인에
눌러 앉음
---> 스페인 국민들은 당시 왕(카를로스 4세)을 몰아내고 그의 아들 페르난도 7세를 옹립
---> 스페인 국민들은 ‘게릴라전’을 전개, 조직적으로 프랑스군에 대항(스페인 독립 전쟁)
- 고려 거란전쟁을 통해 새로이 발굴된 '양규 부대'는 그들이 구한 고려인이 자그마치 3만 명
이었다고 한다. 고려 인구를 300만 명 정도로 잡으면 인구의 1%를 구해낸 것이다.
- 나치의 만행을 폭로한 인물로 독일인 ‘쿠르트 게르슈타인’과 폴란드 군인 ‘비톨트 필레츠키’가
있다.
- 영화 ‘스파르타쿠스’의 각본을 담당한 ‘돌턴 트럼보’는 시나리오 작가였다. 그는 할리우드에
매카시즘 선풍이 몰아칠 당시 공산주의자 색출을 목적으로 한 청문회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서
증언을 거부한 열 명, 즉 ‘할리우드 텐’의 일원이었다.
- ‘합스부르크’ 가문은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중부 유럽의 패권을 거머쥐었던 가문으로
14세기 초 스위스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가혹한 지배하에 있었는데 ‘빌 헬름 텔’이야기는 실화가
아니라 스위스 역사학자 ‘에기디우스 추디‘라는 인물이 쓴 창작물이다.
- 중세(유럽)에서 가장 잔혹한 전투로 꼽히는 ‘모르가르텐 전투’에서 스위스 보병이 용맹성이
오늘날 교황 근위대의 전통이 되었다.
--->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약하지만 비루하지 않고, 작지만 바스라지지 않는 자존감을
고수하는 약자는 그 어떤 위기에서도 용기의 빛을 발하고 패하더라도 굴하지 않으며,
타인들로부터 존중을 획득한다.
- 6.25 전쟁당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동원한 영국군 중 29여단 글러스터 대대 600명은
중공군 3만 명과 대치해 방어전을 펼치게 되는데 이 전투의 결과로 죽거나 포로가 되지 않고
생환한 이는 67명 뿐이었다.
- 칠레의 가수이자 ‘누에바 칸시온(스페인어로 ’새로운 노래‘)운동의 가수 빅토르 하라
---> 빈곤층과 인디오를 위해 노력한 인물 ‘살바도르 아옌데’를 위해 만든 노래 ‘벤세레모스
(스페인어, 우리 승리하리라)’를 앞세워 아옌데 열품을 불러일으키며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을 탄생하지만 미국과 칠레의 군부는 쿠테타로 사회주의 정권을 좌절
시킨다.
-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사를 사진으로 기록한 이기복
사건 2)
- 송나라 태조가 ‘반역의 죄가 아닌 한 죄를 묻지 않는다’는 ‘시씨 집안’에 내린 단서철권(丹書
鐵券)을 부여. 시씨 가문은 과거 ‘조광윤’이 반란을 일으키자 어린 황제(시씨 가문)로부터
황제 자리를 양보 받아 제위에 올라 송 왕조를 시작하게 된다.
---> 13세기 원나라의 침공을 받자 어린 황제를 보위하며 마카오 근처 ‘애산’에 집결한다.
대대로 송나라 황실의 보호를 받았던 시씨 가문 사람들이 절망적인 전투에 참가하지만
멸절되고 만다.
---> 애산 전투는 신뢰와 가치로 뭉친 용감한 약자들의 위대한 패배였다.
- 남북전쟁 당시 흑인들로 구성된 매사추세츠 54연대 이야기(영화 ‘영광의 깃발’)
- 세계사 최대의 악한 히틀러를 암살하려던 인물은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었고 이에 버금가는
인물로는 초등학교만 겨우 나온 목수 ‘게오르크 엘저’라는 인물이다.
- 이탈리아 마피아와의 전쟁을 수행한 조반니 팔코네 검사와 보르셀리노 판사
---> 마피아 조직원 344명에게 내린 형량이 무려 2,665년에 이른다.
- ‘코뮌(commune)이라는 단어는 ’공동 생활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의 작은 모임‘을 뜻하는 중세
라틴어에서 나온 단어.
사건 3)
- 해양으로 뻗어나가던 스페인과 포르투칼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통해 서경 43도 37분 서쪽은
‘스페인’이 동쪽은 ‘포르투칼’이 차지하는 것으로 합의한다.
---> 포르투칼은 아프리카 대륙 남단의 동쪽과 서쪽 해안 일부를 점령, 식민지화했다. 서남부
아프리카 해안에 상륙한 포르투칼은 유용한 상품인 ‘노예’를 발견하는데 우선 상대한
나라는 ‘콩고’였다
---> 당시 콩고의 왕 ‘은징가 아 은쿠우’가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면서 유럽 문화를 적극 받아
들였으나 포르투칼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콩고를 중심으로 노예를 마구 잡아들일 때
주변국 은동고(현재의 ‘앙골라’) 왕국의 ‘은징가 음반데’가 반기를 든다.
---> 은징가는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면서까지 자국의 종족을 보호하려 노력한다.
당시 포르투칼인들은 악독한 노예 무역상인인 동시에 신실한 가톨릭교도이기도 했는데
‘이교도들을 개종시킴으로써 영혼을 구한다‘는 명목은 위선적이었을지언정 그들은 성스러
운 임무로 받아들였다.
---> 스페인, 포르투칼인들이 흑인 노예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건 그들이 남미 대륙에서
노예로 부리던 인디오들의 수가 격감한 탓도 있지만, 기독교로 개종한 인디오들을 노예로
부리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이 힘을 얻었던 연유도 있다.
---> 포르투칼의 이익과 대척점에 서 있던 스페인 선교사들에 의해 바티칸의 중재로 왕권을
인정받아 포르투칼이 그녀와 그녀의 나라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는 데 성공한다.
- 에티오피아는 아르메니아, 조지아에 이어 역사상 세 번째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나라이다.
사건 4)
- 종교의 자유를 위해 최강대국과 맞선 네덜란드의 ‘오라네공 빌럼’에 관한 사항이다.
스페인 카를 5세의 아들 필리페 2세는 스페인 전성기를 이끈 황제로 신앙심이 독실한 인물로,
신교도들을 탄압하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인물이었는데 그의 치세기간 동안 벌어진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은 그의 이력에 큰 오점을 남긴다.
---> 네덜란드는 당시 스페인에게 황금알을 안겨 주는 나라였지만 이교도들의 세력 확장을
필리페 2세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당시 네덜란드의 총독으로 ‘오라네공 빌럼
1세’가 등극하면서 네덜란드 주민들의 정치적, 종교적 자유의 대변자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
---> 필리페 2세의 이교도 말살 정책에 빌럼은 저항에 나섰고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구심점으로
부상한다.
---> 네덜란드인들은 ‘누구나 종교의 자유를 가지며 어느 누구도 종교에 의해 심문을 받거나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며 수많은 항전을 벌인다.
그 중 대표적인 저항이 ’레이던 공방전‘으로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상징과도 같은 전투이다.
---> 네덜란드인들은 흰색, 빨간색 등이었던 당근을 교배해 오렌지색 당근을 만들어 퍼뜨렸다
고 한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오렌지 즉, 오라네공 빌럼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 오라네공 빌럼은 곧 자유와 독립의 상징이었고, 지배자가 아닌 대표자였으며, 군주가 아닌
동지였다. 세계사의 거대한 진전을 이뤄낸 시민혁명의 서막을 연 이 사건은 미국 독립보다,
프랑스 대혁명보다 200년이나 앞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