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 지성의 몰락 - 미네르바 부엉이는 날지 않는다
송호근 지음 / 나남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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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지성은 그 생명을 조금이나마 연장하기 위해 산소 호흡기와도 같은 상식과 염치, 이성과

도덕에 의지해 발버둥치고 있으나 그 누구도 그런 몸부림을 애달아하기 보다는 나는 잘하고 

있는 데 상대가위정자들이, 여당이, 야당이, 교수는 잘하는 데 대학이, 사회와 정책이 대학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해 이런 사태 즉, 지성이 죽어가고 있다

는 게 우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깔려 있는 생각이라 판단하고 있다.

 

얼마 전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나는 사전 투표를 하고는 선거 당일 일찍 예전부터 계획했던 며칠간의 여행길에 올랐다.

올 초에 있었던 수술로 인해 몸이 너무 안 좋아 요양차 그동안 점찍어 두었던 전주 한옥마을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 여행길에서 우리의 지성이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더 확실한 표현으로 이야기한다면 반지성이 판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안타까웠다.


상황은 이랬다.

그날은 국회의원 선거일이었기 때문에 선거 종료 후, 개표방송이 심도 있게 다루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선거 종료 후 방송된 선거 방송은 특정 정당의 선거 완승이 곧 특정 지역의 출신들에 의해 나라가 재 탄생된 듯한 멘트와 축하메시지로 난리 법석이었는데, 승자로서 

느끼는 환희는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특정 정당과 특정 지역의 나라가 아니지 않은가. 패자에 대한 배려나 선거 후 어떤 

방향으로 선거로 흩어진 민심을 달랠 것인지에 대한 거시적 방안은 고사하고 선거로 자신들만의 세계(?)가 완성 된 듯한 멘트로 일관하는 모습이 대한민국 속의 또 다른 나라와 국민을 보는 

듯하여 역겨웠다.

그 지역에서의 선거는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지역 국민들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은 게 아니라 

특정 지역의 민심과 그들만의 자부심을 고양시켜 줄 인물 뽑기 대회를 보는 듯 하였는데

특정 정당이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내가 본 그 방송은 선거는 요식 행위에 불과한 것이었고 

그들만의 인력과 자리 나눠먹기 잔치였다는 게 선거방송을 본 나의 심정이었고 그것을 통해 나는 해당 지역의 지성이 살아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 최악의 방송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특히 압권은 자신들의 지역구 당선 국회의원에 대한 출신지를 정리하는 것까지는 이해되는데,

전국 당선자들 중 자신들 지역 출신이 누구이며 그들이 어느 지역에서 당선되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지속적으로 방송하는 것을 보면서 그게 올바른 방송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그 행위가 방송국 놈들이 기획한 만행인지 그 지역의 모든 사람들의 뜻을 대변하는 

지역 이기주의적 행위인지를 놓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정권에서는 출신지역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 서러웠다고 외치던 그 지역 분들이 이제는 

대 놓고 지역색깔지역 갈라치기‘ - 내가 볼 때는 그랬다 - 를 전면에 내세우고 난리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크게 들었다. 이런 저급한 행위는 분명 추후 어떤 형태로든 댓가를 

치룰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며 해당 지역의 지성이 살아 있다면 더 이상 이런 치졸한 짓은 자제

했으면 한다.

그 방송은 말미에 의사들의 파업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의사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듯한 

발언도 있었는데 지역 갈라치기를 하는 그 방송이 말 할 자격이 있었는지가 의심스러웠다.


하여간 이런 하나의 사례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말도 안 되는 비지성적 행태가 심심치 않게 자행되며 사람들을 물들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에서 열까지 이 땅의 중심점이 되는 지성과 지성인이 있기나 한 것인지 또 있다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또 지성이란 단어를 적용할 만한 경우가 있기는 한 것인지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께서는 작품을 지성의 산실은 대학이라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데내가 볼 때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대학과 교수들이 행태가 얼마나 저급해졌는지를 저자께서 그 곳에 소속되어 있어 잘 몰라 

그러시는 것 같은데, 언제적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거의 경악에 가까운 관점이라 생각하고 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우리 사회에 있어 대학과 교수들이 지성의 변방의 시정 잡배 수준으로 변화된지는 이미 오래 전이며 정치 모리배들이 깔아준 길을 대학과 대학인 특히 폴리페서들이 따라가고 있고 대다수가 이를 추종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무슨 이야기가 필요한지 답답할 뿐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조선의 식자층을 상대로 사문난적의 칼춤을 추던 송시열이후 이 땅에 

진정한 지성과 지성인은 멀리 출장 갔고, 이상한 적폐청산 논리를 갖고 승자처럼 행동하려는 

몇몇 수준 낮은 리더라고 참칭하는 일부 위장 전술의 대가들이 벌이는 진지전고지전을 

벌이는 집단들만이 득세하며 아류들만 남아 있을 뿐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판단하고 있는 지성이 사라진 흔적을 살펴보면

- 무죄 추정의 원칙을 악용해 감언이설로 국민을 대표한다고 외치는 인간들

- 노조 활동이 만사 형통하다는 믿음 속에서 더 약자인 노동자들의 골육을 빼먹는 인간들

- 입만 열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괴벨스 같은 세치혀의 달인에 열광하는 인간들

- 남들이 뭐라하든 누구보다 정신적 멘탈이 강한 어느 일가족과 그 일파들

- 한 때 고위 공직자로 활동하다 임기가 끝났으면 조용히 여생을 보낼 일이지 또 노욕을 부리고

  자신만이 제일이라고 떠드는 인간들

- 상대의 잘못은 침소봉대하고 자신의 잘못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적폐 청산의 정점에 섰던 저급

  저질의 인간들

- 정치권에 기대 난리치다 효과가 떨어지면 모르쇠로 일관하는 질낮은 딴다라 인간들

- 조폭들과 한 패되어 난리치다 대중이 망각의 늪에 빠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개 빳빳이 들고

  활개 치는 인간들

- 재산 불법 상속과 우리 편 밀어 달라고 외치던 인간이 코너에 몰리자 아니라고 우기는 인간들

- 코인 갖고 놀기, 후원금 빼 먹기다 걸려 놓고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인간들

- 자신들 편이 불리하게 되자 재판 질질 끌다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재판부 기피하는 인간들

- 영끌 청년들 자살로 내 몬 법안 만들어 놓고 반성 근처에도 가지 않다가 때 되면 나와서 자기는 

  잘났다고 지랄하는 인간들

- 툭하면 민의가 어떻다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헛소리하는 인간들

- 지들이 외치는 민의의 전당에서 상대방 발언할 때 깐죽거리는 저질 인간들

- 자신은 잘했는데 후임이 잘못한다고 외치는 찌질한 전직 고위 공직자에 있었던 인간들

- 대기업 저승사자라 자랑질 해 그것 믿고 뽑았더니 3류 보다 못한 시민운동가 출신 인간들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맹자는 다섯 가지 불효를 경계하라고 했는데,

첫째, 수족을 게을리 해 부모님을 잘 섬기지 못하는 것

둘째, 도박과 음주를 즐기면서 부모님을 섬기지 못하는 것

셋째, 재물 욕심과 자기 처와 자식만을 알면서 부모를 섬기지 못하는 것

넷째, 듣고 보는 대로 말하면서 부모님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

마지막, 불량한 자들과 다니면서 부모님의 신변에까지 위협을 끼치는 것

이라고 했다. 부모 대신 백성을 대입해 보면 우리의 지성이 왜 죽어가고 있는지 알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하도 여기저기 쓰고 이야기해서 더 이상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안타까울 뿐이다.

 

나의 호소와 주장이 얼마나 이 땅의 지성인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가 그들에게 대오 각성을 

촉구할 수 있겠냐만은 그렇지만 나는 이 땅에 참 지성이 살아날 수 있도록 오늘도 노력하고자 한다.

 


[1부 막오른 문명 대변혁]


121세기 문명의 도래

- 외부 환경의 변화와 내부 동력의 점진적 교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인간 능력에 잠재된 

  적응력과 대응력에 기대를 걸기 마련이다.

-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가져온 ‘20세기 문명은 지구 생물계에는 최고의 독()이었다.

- 산업혁명 이후 줄곧 성장률은 자본수익률을 밑돌았는데, 결과는 성장률 제로 시점의 도래이다.

  그것은 불평등 악화와 자본주의의 붕괴를 의미한다.

- 20세기 문명을 작동하는 뇌관과 문법이 교체됐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반에 활발하게 개발

  됐던 정보커뮤니케이션기술(ICT)‘21세 문명으로 넘어오는 징검다리였다.

- 21세기 문명은 글로벌 네트워크에 AI, 사물인터넷(IOT), 로봇, 가상현실(VR), 메타버스

  (Metanerse)의 세계를 구현해서 예측보다 더 빠르게 20세기 문명의 엔진을 갈아치우고 있다.

  그것이 혁명적인 이유는 사회집단과 인류 사회의 존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인프라 

  패러다임의 변혁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문명은 어느 장기적 시간대의 생존양식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개념, ‘문화는 그 생존양식을 

  이끌어 가는 정신적 양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 두자. 문명과 문화는 육체와 영혼의 관계와 

  유사한데 두 가지 개념을 합쳐 문명이라는 개념으로 통칭하기도 한다.

- 19세기 과학과 경박한 경험주의가 배태한 비인간적 자본주의 경쟁으로부터 인간을 구제한다는

  굳은 의지에 불을 붙인 일단의 지식인이 태어났다. 대표적인 인물이 관념론의 기수였던 

  ‘루카치그는 영혼과 형식이라는 저서를 통해 정신적 각성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

  했는데패전국가 독일이 관념론 부활의 적지였다.

- 작금에 들어서 과학은 인간의 통제범위를 넘어서기 시작했고 급기야 AI, 디지털 시대에 돌입

  하면서 수십 년간 지속된 과학에 대한 인간적 통제 환상이 깨지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 오픈AI, 기술합리성이 오히려 지배체제로 등극하는 현상에 직면했다.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통제 불능 상태로 진입하는 과학기술에 주체의 자리를 내주기 시작한 것이다.

- 기후위기 극복방안으로 제출된 네 가지 해결책들 - 성징 레이스 완급조절, 탄소제로, 생산과 

  소비 적정화대체 에너지 개발 - 은 곧 문명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 과학과 지구를 통제할 수 있다는 인간적 오만으로 가득 찬 이데올로기 시대가 저물고 인간이

  오히려 통제 대상이 되는 과학 독주의 시대가 출항하고 있다.


2장 규율권력, 과학기술21세기 문명의 도래

- 정보화로 통칭된 지난 40년간은 챗봇 AI 탄생을 향한 짧은 전환 과정이었다.

- 인간이 창조했지만 인간이 오히려 규제당하는 감시체계의 탄생 이것이 감시 자본주의 

  본질이다이에 비하면 인터넷 기술은 과학기술이 선물한 낭만에 지나지 않았다.

- 2015년 에릿 슈미트가 웹의 미래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인터넷은 사라질 것입니다라는 답을 

  주었는데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감시 자본주의를 주장한 쇼사나 주보프

  ‘우리는 디지털 자본이 제조하고 조작하는 행동시장의 객체로 전락한다. 우리가 남긴 디지털 

   발자국과 디지털 빵부스러기들은 요새화된 디지컬 테크에 의해 행동예측상품으로 둔갑한다.

   그 행동에서 파생된 지식에 대한 접근권도 통제권도 거부당한다. 디지털 수탈이다

   우리는 우리 경험의 지도를 스스로 그릴 권리를 박탈당한, ‘인간이라는 천연자원에 불과하게

   된다.‘

    ---> 디지털 자본은 현실 마이닝을 통해 인간을 천연자원화하고 급기야는 인간성 멸절을 초래

          한다는 엄청난 가설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 사용자를 포획해 우리에 가두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행동엔지니어링을 통해 기획 상품으로

  제조하는 욕망, 거기에 포박될 수밖에 없는 사용자들의 운명이 문제다

  그것은 곧 인류의 미래운명이기도 하다.

- 행동주의 과학자에게 자유, 의지 같은 추상적 개념은 없다. 그것은 다만 아직 설명되지 않은

  아직 행위 코드로 정복되지 않은 빈 공간이자 무지일 뿐이다.

 

3장 펜데믹이 가르쳐 준 것, 문명적 뉴딜

- 코비드19의 감염과 사망 수준은 의료서비스의 사회적 포용 수준에 반비례 한다.

  ‘사회적 포용이란 공적 서비스와 제도에 대한 사회집단들의 접근성을 지칭한다.

- 문명의 패어다임 관점에서 관찰한다면, 산업화 이후 20세기까지는 땅의 문명이었다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의 분석처럼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구가했던 

  기간이었다문제는 여기에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이동해도 땅을 착취하는문명의 본직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코비드19는 이 땅의 문명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려준 슬프고 뼈아픈 계기다.

  즉, 성장 일변도의 각축전과 풍요를 향한 무지의 질주가 낳은 대가가 무엇인지를 각인시켜준 

  엄중한 경고장이다. 그 경고장의 제목은 문명의 그늘이다.

- 땅의 문명은 번영과 성장의 배후에서 그것을 파괴하는 두 가지 힘이 자라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그것은 공간미립자의 세계다.

- 펜데믹은 최악의 경우 인류의 절반을 죽음으로 몰고 가지만, 공간의 역습은 전멸이다.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코로나 보다 더 무서운 공간의 공습이 예상되는 시점이다.

- 기후재앙과 바이러스는 일란성 쌍생아다. 공간의 역습은 마이크로 세계를 깨운다. 인간의 면역    체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교환하는 바이러스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인체를 위협한다

  미립자 바이러스는 땅의 문명이 번성했던 경로를 따라 전파된다.

- ‘문명은 보이는 적과의 전쟁에서 취득한 전리품이다.

- 코비드19가 몰고온 뉴노멀 현상

   1) 언택트 문화

   2) 탈세계화와 지역협력, 혹은 블록경제로의 회귀현상

   3) 땅의 문화의 핵심인 자원 활용의 극대화에 심각한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4) 위험의 불평등

   5) 페놉틱 사회 혹은 모니터링 민주주의를 불러온다.

- 자본주의 체제가 지난 250년간 발전시킨 이윤극대화 성향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그린 뉴딜은 불가능하고 더불어 지구의 생명도 종언을 고한다.

 

 

[2부 대학의 사회생태학]

아카데미즘의 본질 변화

- 지식인의 집단거주지인 대학의 성격 변화가 지식인의 실종을 부추겼다.

- 교수들은 문명비판의 전사가 되고 싶다. 그러나 숨 막히는 대학의 현실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교수들은 의사 사회주의라는 작은 오아시스로 도피하기

  일쑤고총장과 개혁 성향 교수들의 혁신안은 조직화된 무정부주의속으로 증발된다.


4장 대학과 지성

- 문명은 지성을 낳고 지성은 문명을 이끈다.

  한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조망하는 지적 능력, 또는 시대의 중추 신경을 정확히 짚어 내고

  그것의 본질을 드러내 보이는 지식의 응결체가 지성이다. 지성은 부분적 현상 분석에 머물지 

  않고 전체와의 상관관계를 포착한다. 전체는 부분의 합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부분의 합이 

  창출하는 발현적 성격을 놓치면 종합적 조감은 불가능하다. 지성은 앎과 지식의 총체로부터 

  나오는 무형의 힘이지만 세상의 현실을 바꾸고 인간의 행동을 개조하는 유형의 충격파다.

  독일어 개념인 시대정신(Zeitgeist)'는 시대를 관통하고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 내는 정신의

  요체를 지칭한다. 19세기 말 유럽을 지배했던 정신 사조를 실증주의라고 했을 때

  그것은 곧 시대정신을 뜻한다.

  이후 손에 잡히는 것, 보이는 것, 반증 가능한 것에 집착했던 실증주의의 경박성을 부정하고 

  그 배면에 작동하는 더 본질적인 원리, 깊숙한 곳에 존재하면서 현상적인 것들을 운영하는 

  원리가 있다고 믿는 관념론적 사상 풍조가 실증주의에 반격을 가했다. 그것 역시 시대정신이다.

- 지성은 시대의 거대한 조류를 파악하는 지적 사고체계이자 현실 세계에 대한 비판적 조망을 

  동시에 담는 사상의 동력이다.

- 19세기 대학은 교양시민을 길러내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었다. 예비지성인을 길러내는 곳

  타락한 사회에 도덕과 윤리의식을 불어 넣을 지식 전사를 배양하는 곳이었다.

- 대학의 첨단기술은 글로벌 기업이 상용화하는 테크상품과 디지털 네트워크의 부속품에 불과한 

  정도다.

- 지성은 문명의 휘슬 블로어였다. 문명의 치명적 폐해를 주시하고 경고했던 휘슬블로어를 배양

  하고 보호했던 곳은 대학이었다. 과거에는 독점적 지위를 누렸던 지성인의 위상은 SNS 시대에

  작은 초가집 정도로 전락했다

   ---> 문명비판의 주체가 기술문명을 주도하는 조직의 하수인이 된 것이다.

- 공중이란 공적 쟁점에 대해 감응하고 반응하는 대중, 어느 정도 학식을 갖추고 대중매체를 

  구독하는 일반 대중을 말한다.

- 공중을 매료시키던 청년 지식인들 즉, 문명비판을 생산했던 문화적 프런티어가 무너진 것은 

  대학이라는 안정된 제도권 내부로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흡수된 1960년대 후반부터 두드러졌다.

- 첨단과학기술의 엄청난 영향력과 디지털 테크 기업의 세계적 장악력에 의해 대학은 문명의 

  프런티어에서 문명의 동력을 공급하는 납품업체가 되어 버렸다.

- 대학은 미래 대응적 구조조정을 단행할 여력과 자율성이 없고, 자체 경쟁력을 배양할 지원이 

  절대 부족하다.

 

5장 대학의 진화와 사회생태학

- 대학은 권력집단은 아니지만, 권력의 부침은 물론 권력의 본질까지도 꿰뚫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기에 권력 집단 이상의 존경과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대학이 사회의 구성원이면서도 사회

  질서의 원리를 규명하고 진리로 다가서는 통로를 개척하려고 항상 사회와 거리를 유지했다.

- 대학이 서구사회의 중요한 제도로서 지금껏 존속해 왔던 이면에는 사회의 진보과정에 따라 

  그 존재 이유를 어렵사리 수정해온 대학 자체의 적응력과 대응력이 놓여 있다.

- 근대의 대학은 대학의 존립근거였던 절대주의적 가치관을 붕괴시키면서 상대주의를 대학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수용하였다.

- 대학은 하나의 거대한 지식공장이며, 연구실과 실험실은 공장의 부서이고, 미국의 아이비리그와

  같은 주요 대학군은 하나의 거대한 지식산업이라는 제조개념으로 인식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대학의 정신과 이념, 대학 구성원의 내부 조직, 교육과정과 교육방법 등에 현저한 변화가 

  수반되었다.

- 대학은 대학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전체적 진화과정에 따라야 한다는 신념이 소외와 고립에 

  기반을 둔 대학의 전통적 이념을 대치하게 되었다.

- 교수들이란 해결책보다는 문제 제기를 좋아하며, 분명하지 않은 어떤 쟁점에 대하여는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 대학은 사회적 환경에 적응력을 키워 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진보의 경로 설정과 

  수정에 적극 개입해온 지성적 사회조직이다.

- 20세기 대학의 성격 변화에 영향을 미친 환경적 요인은 크게 3가지이다.

  산업화, 도시화, 개입국가가 그것으로 이 요인들은 아카데미즘의 본질과 정향을 바꾸어 놓았다.

  첫째, 산업화는 대학에서 자유지식’‘에의 순수한 열망을 억제하는 대신 유용한 지식울 향한 

         실용주의적 성향을 촉진하였다.

  둘째, 대학은 인구증가와 대규모의 도시화에 따르는 급격한 사회 변동에 영향을 받는다.

  셋째, 개입국가의 문제로 대학은 때로 국가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의 제조창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였다.

  산업화가 이공계 대학의 산업참여를 촉진하였다면, 복지국가는 사회과학대학의 정치참여를 

  촉진전자는 이윤추구와 시장경쟁의 논리를 , 후자는 사회계획과 개혁의 논리를 대학교육과 

  연구의 중심 영역에 위치시켰다.

- 고학력 시대에 대학은 기회비용을 늘리는 기관일 뿐이어서 투자 매력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

- 보편성과 객관성의 기준 및 가치관을 둘러싼 논쟁이야말로 자유지식의 본질일지 모른다.


6장 대학의 조직 생리와 양면성의 정치

- 교육시장이 학력시장에서 변화된 배경에는 교육이 곧 엘리트의 여과기제이며 신분과 계층상승

  욕구 실현의 가장 주요한 수단으로 기능하여 왔다는 한국사회의 독특한 사정이 놓여 있다.

- 교육이란 사람들의 인성과 지식을 계발하고 모든 사람이 선천적 불평등과 관계없이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교양과 지혜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한국 사회는 교육을 지위 획득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 현실주의자라는 딱지는 이상주의에 매진하는 대학생의 주체성을 훼손시키는 것이어서 대학생

  에게는 가장 심한 욕설이다.

- 학력이 유사한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평등 이념은 거시적으로는 사회적 비판의식으로 작용하고

  미시적으로는 학내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 사회주의 이념의 중요한 평등주의는 교수 - 학생의 관계를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학생에 대한 평등주의적 관리는 곧 형식적 관계로 변질된다.

   ---> 사회주의적 원리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대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상을

          점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 한국의 대학은 평등주의 방식으로 방목되어 평등주의적 가치관을 내면화한

  그래서 이제 불평등한 사회 환경과 많은 마찰을 빚을 후보생들을 길러냈다.

- 교수들의 활동이 사회의 각 분야로 확대되면서 교육과 강의에 쏟는 절대적 시간이 축소되었다.

- 논의의 무성함과 행동의 결여가 학내 정치의 특징이다.

 

 

[3부 지성의 몰락]

대중과 작별 또는 이념의 전사되기


7장 지식인의 실종

- 지시의 최전선에서 물러가는 대학은 이제 주체의 자리를 기업과 대규모 연구소에 내주고 있는    중이다.

- 학문의 벽을 깨고 융합적 사고방식과 이해 지평을 넓히는 교육은 중요하다

  전인적 시선을 확보  하는 것 이것이 대학교육의 본질이다.

- 지식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목소리 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귀담아듣는 사람이 

  현저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 사회의 현재적 변동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사회와 시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올 사태를 

  미리 예견해 대비책을 쓰도록 경고하는 것은 사회과학자들의 기본임무이나 그러나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다.

- 학술계간지와 문학계간지의 시대가 저물고 전문학술지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학문 발전을 기한다는 점에서 전문학술지의 확산은 긍정적 현상이다. 그런데 그 이면에 사회 

  쟁점의 제기와 비판, 논쟁의 전선에서 지식인이 대거 물러갔다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했다.

- 문사철 주소의 시대에 지성 종합지가 태어니 지식인 사회를 하나로 묶어 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이들은 종합지성지를 통해 대중과 접속하고 대중적 언어로 시대적 쟁점을 풀어 

  나갔다. 주요 일간지도 이런 작업에 동참해서 종합지성지와 언론이 공론장을 주도하는 시대를

  이끌었던 것이다 지식을 전달하고 시대적 고민을 집약하는 대중 매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종합지성지가 구심점을 점령했다고 볼 수 있겠다.

- 문사철의 시대는 19805월 광주민주화운동과 동시에 막을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식인들은 광주학살과 같은 역사적 비극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떨었고, 나아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에 유용한 혁명이론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사회과학의 시대1980년대 신군부의 개막과 동시에 열렸다.

- ‘문사철도 혁명에 봉사하는 문학, 주체성을 구축하는 역사, 자본주의의 전복을 꾀하는 철학이

  아니고는 지식인 공론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 586세대가 재촉한 현실참여와 이념적 몰입이 2020년대 현재 지식인의 죽음내지는 지성의 

  몰락을 낳은 원초적 요인이었다.


8장 민주주의는 왜 지성을 몰락 시켰는가?

* 도입부의 내용(청산의 정치)은 전 정권에 대한 비판일색으로 여기에 정리하기엔 부담이 되기에

  독자들이 직접 작품을 읽고 느꼈으면 한다. 솔직히 틀린 말이 별로 없지만 요약해 정리하기가

  부담스럽다.


-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욕망과 의지가 아무리 강하고 정당하다고 확신해도 공론장에서의 

  발화는 술집 주먹다짐과는 다르다.

- 지식인을 자처하는 부류도 지성의 파괴를 초래하는 행동거지를 주저 없이 행한 것이 한국 

  민주화의 유별난 특징이다. 정치인과 지식인은 한국사회에서 지성의 몰락을 초래한 두 

  주역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치는 한국사회의 일번 언어와 도덕적 양심을 깨트렸고

  지식인은 이데올로그를 자처해 그런 행위를 정당화했다.

- 특정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악의의 난장에서 일반 시민들은 진위를 판단할 방법이 없다

  판단 기준을 잃어버린 공중들은 정치꾼들의 유쾌한 거짓말과 악마의 궤변에 매혹된다.

  1860년대 영국도 그러했다. 자유주의의 본질을 사수하고자 했던 밀(J. S. Mill)은 혐오로부터 

  공중을 보호하지 못한 점을 걱정했다.

- 정신적 성숙의 징표는 덕(VIRTUE)이고, 덕을 쌓는 방법은 교육이다.

- 새로운 시대와 요구에 대응하려면 지적, 도덕적 심성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 ‘지성이란

  “옛것과 새로운 것을 통합해 재구성하는 능력, 과거의 경험을 지식으로 전환하고 그 지식을 

   생각과 목적에 투영해 미래의 무엇을 예견하고, 또 바라는 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지시하는

  능력을 뜻한다. 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실천이다. 지성이 바로 자유주의를 

  혁신하는 근본적 힘이자 사회적 실천이었다.

- 지성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작동하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으로서, 개인적 욕망의 제어

  타인에 대한 배려, 공익을 향한 비전을 뜻한다.

-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성을 죽였다는 점에서 반 지성주의의 전형이다. 반 지성중주의란 사회적

  공론장에 지적 담론을 축출하고 정치적 행태에 지적 논리와 비판을 들이대는 것을 배격하는 

  일체의 행동과 사고 양식을 말한다.

- 매도와 불신, 왜곡과 비방, 적대와 증오의 측면에서 보면 현 한국 사회는 매카시즘 선풍에 

  휩싸였던 1950년대 미국과 다를 바가 거의 없다.

- 294쪽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너무도 가슴에 와 닿는 문구이기 때문이다.

  ‘시민단체가 양쪽으로 갈라진 공중의 응원부대로 작동했다.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고, 반정권 

   슬로건을 만들어 배포했다. 모두 더 나은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웠음은 물론이다

   시민단체는 민주주의 투사를 자처했다. 시민단체가 자행한 비민주적 투쟁방식과 비밀 결사적     행태는 민주주의라는 대의명분에 가려 정당화됐다. 크고 작은 불법은 그대로 덮였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시민단체의 회계장부 조사 결과가 그렇다. 시민단체는 회비와 정부지원금

   을 멋대로 써 버렸다. 사적 횡령은 물론 시민단체의 목적과는 다른 별개의 사업에 객관적 

   규제 없이 낭비했다지식인그룹 역시 양쪽으로 갈라져 투쟁의 열기를 북돋웠다

   조망적 시선과 양비론적 성찰을 요구하는 지식인들은 기회주의자로 몰렸다

   어느 한편에 가담한 지식인들의 인기가 한순간 높아졌고, 그들이 획득한 대중적 인기는 정치

   입문의 기회를 넓혀 주었다. 대규모 시위와 쟁점별 시민운동을 통해 정치권에 안착한

   지식인들과 시민운동가들은 그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권력을 실행하거나 정권투쟁을 반복했다.

   거리의 정치가 의회 정치가 되었고, 의회 정치가 거리의 정치를 통해 출구를 찾았다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지적 성찰과 양심적 자제가 사라진 한국의 민주주의는 사악한

   욕망과 악의에 감염되었다.

    ---> 국민들은 투표권이 보장되는 한, 거리에 나가 자신들의 의지를 표출할 수 있는 한 

           정권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데 그것은 착각이다.

 

- 극단적 선동가와 정치인들이 대중적 인기를 통해 정당을 장악하면 민주주의 오물을 여과할 

  거름망이 망가진다. 그러면 민주주의는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서서히 무너진다.

- 민주주의 가드레인 붕괴 현상 3가지 지표 중 2번째가 상대 정당의 정당성 부정과 비방이다.

  독선적 정치인은 경쟁자를 범죄자, 파괴분자, 매국노 혹은 국가안보 및 국민의 삶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비난한다이런 선동 행위와 언설이 대중에게 먹힐 때, 더 나아가 대중이 거리로 

  뛰쳐나와 선동에 화답할 때 민주주의는 대중 독재에 감염된다

  항생제는 자각, 자제, 성찰 외에는 없다이런 역할을 담당할 유일한 집단이 지식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들은 이미 지성의 위선과 우유부단함, 기회주의적 성향을 몰아세우는 

  반지성주의의 전사가 되었다. 아니면 침묵을 선택했다. 반지성주의를 깨트려야 할 지식인이 

  반지성주의의 참호를 지키는 경비병이 되어 버렸다.

- 대학 캠퍼스는 비밀결사의 생성 장소이자 도원결의의 집회장으로 변했다. 자신의 행동과 

  선택이 폭력적 인지를 검토하는 문학적, 철학적 담론공간은 혁명이론으로 채워졌다.

  사회구성체론이 혁명 분파를 생산했다.

- 혁명세대는 독재의 종식과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할 일을 잃었다.

- 어느 국가나 이념 대립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한국의 이념 분열은 유별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시민운동의 정치화가 이념균열을 더욱 강력한 분절선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2020년 총선에서 다수당 지위를 차지한 것에 기대어 각종 법안 남발

  행정명령긴급자금과 추가예산 지출 등을 단행하였다. 비용과 혜택 간 권리와 책무 간 균형 

  감각은 안중에 없었다시장은 자본과 대기업의 놀이터, 고용규칙은 정규직의 배타적 특권

  정권의 취지에 앞장선 민노총은 정의를 구현하는 기사단으로 상정되었다.

  그러는 사이, 불평등은 악화되고, 평균소득은 제자리걸음을 치거나 하락했고, 고용은 줄었다.

  영세자영업자와 영세 기업주는 급격히 무거워진 고용유지 책임과 세금 부담에 어려움을 

  호소했다그러나 이미 자본으로 분류된 그들의 고통에 집권층이 신경 쓸 리 없었다.

 

[ 출 구 ]

- 유럽 대학의 역사는 은둔하는 대학에서 시민사회의 주요 행위자, 특히 사회와 역사의 발전 

  방향을 시사하고 사회변혁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지식 기지로 이동한 궤적이다.

- 한국에서 지식인의 이념 성향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는 영역은 시민운동과 언론매체의 컬럼 

  쓰기다시민운동과 칼럼 쓰기는 이데올로기 분쟁의 열기를 식힌다거나 해소하는 창구가 

  아니라 원한과 증오를 증폭하는 수단이 되었다. 논쟁은 진리로 다가서는 방법일진대 서로 

  허위의 껍질을 벗기고자 달려드는 양상은 자기검열의 최소한의 기제도 배양하지 못했다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 논쟁의 가열은 좋은 현상이지만 분노의 가열은 적대감을 양산한다.

  지적 성찰이 도모하는 적대감의 해소가 지성의 힘이라면 이념적 낙인찍기, 궤변과 욕설로 

  상대 논리를 저지하기, 진영의 장벽을 높이 쌓아 올리기로 일관되는 한국 사회 공론장의 현실은

  ‘지성 몰락의 슬픈 증거다.

- 객관성과 학문적 자기검열의 긴장을 버린 주장과 논조들이 지식인의 경계대상 1호다.

- 촛불 민심의 독점이 일어났다. 촛불 민의의 왜곡이 일어났다. 평등, 분배의 정치이념을 민심과      민의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채 밀어붙이는 반민주적 독주가 민주주의의 명분으로 강행되었다.

  공공지식인의 편파적 언설에 촉발되었다면 공공지식인의 책임이다합리적 토론의 기초가 

  파괴되면 반 지성주의와 신비주의로 빠져든다언론방송은 이데올로기 전쟁의 전사들이다.

  공공지식인의 주요 구성원인 기자는 언론사의 이념적 위를 사수하는 경비병이 되었다.

  글로벌 무대가 더 친숙한 신세대가 약진하는 현실에서 북한이 민족모순의 동반자는 사고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시간대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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