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끝자락에 서서
양장 지음, 윤지영 옮김 / 슈몽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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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작품을 읽는 초기에는 앞 쪽에 읽었던 원청이라는 작품과도 같은 실망감 속에 

외국 소설이 다 그렇지’ 

하면서 일종의 작품에 대한 폄하 아닌 폄하를 하였는데, 작품을 넘기면 넘길수록 다가 오는 

느낌은 이제껏 여러 작품에서 느끼지 못했던 삶의 속살을 어루만져 주는 듯한 느낌과 함께 내가 

믿고 따르는 종교적 관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을 갖게 하는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개신교 신자인 본인의 눈에 들어온 한 가지 표현법 중 아쉬운 점이 눈에 띄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시종 일관 하느님으로 표기한 부분이었는데 열혈신도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그 차이를 찾아 보았다. 


[야후 국어사전]


+ 하느님

1. 종교적인 숭배 대상, 또는 신앙의 대상.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지니어 인류에게 화나

  복을 내린다고 믿음. 상제(上帝). 상천(上天). 천공(天公). 천제(天帝). 하늘

2. 가톨릭에서 신봉하는 유일신. 성부(聖父).


+ 하나님

개신교에서, ‘하느님을 이르는 말.


이라고 한다. 받아들이기 나름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이런 작품을 읽고 어떤 느낌이나 작품으로부터 받은 소회를 기록하라고 하면 작품 

분량만큼의 내용 - 아니 어쩌면 더 많을수도 있다 - 이 나올 수 있기에 작품에서 언급된 내용 중

그럭저럭 내 가슴에 와 닿은 문구 몇 개를 올려 보았다.

 

-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데 죽음이 무엇인지 알겠느냐?(공자)

- 호인으로 태어나서 악인이 될 재주가 없다면 그냥 손해 보면서 살자, 하면서 사는 거다.

- 사람이 괴롭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면 저절로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거나 하소연하며 묻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던가?

   내 물음에 답해 주던가? 하나님이 내 기도와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으로 

  하나님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가?

   예수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감람산에서 이 고난을 면해 달라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예수의 기도를 들어주었던가?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해서 예수가 

  자신의 신앙을 버렸던가?

   (나는 작품은 '하느님'으로 표기하였지만 개신교인이기에 의도적으로 '하나님'으로 변경해 적었다)

- ‘도깨비 담장에 부딪혔다고 당황해서 이리저리 길을 찾아서 헤매면 안 됩니다.

   그놈은 자기를 무서워하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 앞에서는 어쩔수 없으니 물러난다

- 신념은 마음 속에 존재하는 맹목적이다

  신념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저 깨닫는 것일 수밖에 없다.

- 대자연의 법칙이라고 하는 신념은 지식의 축적에서 시작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깨닫는 것.

-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진 대자연의 법칙이 결코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음을 믿는다.

  그렇다면 법칙을 만들고 지배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 물질의 돌발적인 움직임에서 일정한 법칙이 생겨났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 말을 수긍하기에는 과학의 법칙들이 얼마나 세밀하고 확실하며, 얼마나 조금의 

  빈틈도 없고, 얼마나 보편적으로 일치하는가!

   만약 물질이 스스로 이렇게도 세밀하고 정교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면 물질이 아니라 영성을

  가지고 있는 정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각각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

  대자연에는 일치하는 하나의 법칙에 따라 움직일 수는 없다. 대자연에는 틀림없이 신명을

 가진 주재자가 있으며 물질은 그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야만 대자연의 신명에 대한 믿음이 축적된 지식으로부터 생겨난 신념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 신념이 합리적인 반증을 거쳐, 번복할 수 없이 옳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믿음이 된다.

  나는 대자연이 신명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혹은 신명이 대자연을 만들었다는 믿음이 충분히 

  이성적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믿음을 미신이라 할 수 있겠는가?

  대자연이 가지고 있는 신명, 혹은 신명이 만들어낸 대자연에 대한 호칭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바로 하늘이다.

  보통 하느님혹은 하나님이라고도 부르고 좀 더 고상하게 조물주’, ‘천제‘, ’상제라고도

  부른다. 부르는 방식은 달라도 그것들이 가리키는 실체는 같다.

- 하늘이 내린 본성을 성()이라 하고,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한다.

- 세상이 귀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없다라는 것은 증명하고자

  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 옛말이나 속담은 인류 수천 년 지혜의 결정체이다(세르반테스)

  자고로 허투루 만들어진 속담은 없다.(한비자)

- 인간은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을 양능(良能)이라고 한다. 또한 인간은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것을 양지(良知)라고 한다.

- 인간의 본성 중에서도 근본이 되는 것이 바로 양심이다.

  공자는 양심에 대해 꼭 붙들면 보존할 수 있으나 놓으면 없어지는 것이라 했다.

- ‘영혼은 육체에 붙어 하나를 이루며 육체와 함께 느끼고, 욕망하고, 즐기고제멋대로 행동한다.

- 사람들은 자신이 지혜롭지 않은 것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게 너그러워진다.

-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은 근심하라(공자)

- ‘운명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은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많은 일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일이 정말 내 운명에 이미 정해져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내 성격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만하다.

-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인간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를 의심하게 된다.

- ‘최고의 선에 도달하는 것은 스스로 완전해지고 지극한 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

- 인간의 고귀함은 바로 자신에게 있다.

- 쇠가 불에 의해 달궈지고 단단해지듯, 인간도 걱정과 근심을 하면서 지혜로워지고 고통을

  겪은 후 미덕이 생겨난다.

  끊임없이 시달려야 좋은 사람이 된다

  ‘사람은 세상 속에서 갈고 딱으며, 칼은 숫돌 위에서 갈고 닦는다

  ‘백 번 다듬어야 모양을 갖추고, 천 번 다듬어야 쓸모가 있다

  ‘가장 힘든 고통을 겪지 않으면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기 힘들다

  모든 같은 의미를 가진 문구들이다.

- 나를 이해하려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인식해야 하는데 이것이 격물치지(格物致知)

- 인간의 몸은 쇠망치로 두들기거나 불로 달굴 수 없다 하지만 영성의 양심은 단련하면 할수록 

  더욱 강해진다.

- ‘수신(修身)’,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근본이다.

  세상의 만물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위해서 생겨났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인간은

  선과 악이 뒤섞여 있으므로 단련을 통해 순수해져야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 ‘’

  이 괴로운 세상은 쇳덩이를 담금질하는 공장, 운동선수를 단련하는 운동장,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실처럼 인간을 단련시키는 장소이다이것이 바로 인생이 고달픈 이유이다.

- 쌓은 공덕만큼 인생은 가치가 있다.

  그리고 공덕은 육체에 쌓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쌓는 것이니 영혼이 불멸하는 것을

  믿어야만 영혼에 쌓은 공덕이 가치를 가진다영혼의 불멸을 믿게 해 주는 것은 바로

  신앙이다그래서 신앙이 있어야 인생이 비로소 가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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