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의 역사 1 - 풍속과 사회
에두아르트 푹스 지음, 이기웅 외 옮김 / 까치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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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


평소 나의 독서 스타일을 살펴보면 특히, 작품을 고를 때에는 특정 작품을 읽다 저자 혹은 작품 

속에서 언급되는 좋은 작품이라고 추천 혹은 언급되는 경우 이를 메모해 두었다가 꼭 찾아서 

읽는 버릇이 있는데 본 작품도 그런 방식으로 선택한 것으로 해당 작품도 다른 분의 작품을 

접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는데, ‘풍속을 연계한 인류 역사의 발달사를 주제로 한다는 

소리에 또 작품의 가치가 상당하다는 소리에 혹하여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어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접하였는데, 작품을 읽을수록 당초 내가 생각한 범위를 넘어

서는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어 짧은 역사적 지식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일정 페이지를 넘기

면서 어떤 측면에서는 버겁기도, 어떤 측면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을 복습한다는 자세로 

작품을 받아들이게 되어 해당 학문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내게 다소 무겁고도 부담스러운 내용

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다음 페이지의 내용이 기대되었던 최근에 접해보지 

못한 그런 류의 작품이었다.

결론적으로 해당 작품은 인간의 정치, 경제 및 역사적 발달사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으로

- 4권이라고 하는데 1권부터 이런 생각을 갖게 할 정도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스펙트럼이

  장난 아니다

단순히 읽고 느낄 그럴 내용의 작품집은 아니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이야기를 아주 쉽고도 근원적인 배경을 포함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내가 아래에 행한 정리가 자칫 저급하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나의 흔적을 남기고자 한다.

 

작품의 서론을 살펴보면 해당 작품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어느 정도 가늠될 것이다.

 

역사에 영구히 적용되는 모럴의 기준이란 있을 수 없으며 이러한 기준은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따라서 오늘날의 기준으로 과거를 비난하려고 하는 것은 실로 유치하고 어리석은 행위다.

  그러므로 연구가의 임무는 모든 사실을 과학적인 연구를 통하여 면밀하게 조사하고 분류하여

  역사의 틀 속에서 결합시키고 그 전체적인 틀 속에서 사실을 만든 법칙을 도출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비로소 체계적인 사실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사실까지도 역사를 원래의 모습 그대로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작품을 통해 인간들의 풍속이란 결국 성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변화, 발전된다는 사실과 

성을 통해 살아 있는 본능의 움직임은 그 시대의 도덕행위, 도덕관, 도덕률에 나타나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작품이 집필한 것이라 생각하는데앞으로 3권 정도가 더 시리즈로 있다고

하니 전부 읽어보고 나의 느낌을 정리하려고 하며 여기서는 작품 내용 위주로 정리해 보았다.

 

[모럴의 기원과 본질]

- ‘일부일처제는 개인적인 성적 사랑과 전혀 다른 문명의 결과로 점검 커져가는 부()가 한 

 사람의 수중에 - 남자 수중에 - 집중되고, 그 부를 남자의 자식들에게 상속시킴으로써 타인에게 

  넘겨주지 않으려는 요구에서 발생되었다.

  ‘사유재산제는 여자에게만 일부일처제를 요구했는데 그 이유는 적자(嫡子) 상속인을 보호

  하려는 목적에서 나타난 것이다.

- 사유재산제, 즉 물질적인 이해관계가 성 모럴의 모든 토대를 결정하고 또 싫든 좋든 끊임 없이

  성 모럴의 하부구조를 결정한다. 바꾸어 말하면 사유재산제라는 것이 모럴 전체의 토대이기 

  때문에 성 모럴은 그 커다란 틀 속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또 성 모럴을 지배하는 사유재산제가 

  겪게 되는 변화와 발전에 따라서 변화해 간다.

- 16세기 조합이 도제를 고용할 때 자유인이며 명예로운 혈통을 문제 삼아 사생아가 아니라는 

  증명서를 요구했는데 이는 도제의 독점력을 보존하기 위한 조치였다.

  , 수공업 기술을 배우려 몰려들었을 성원들을 규약을 방패삼아 쫒아낼 수 있었던 것.

- 늘어나는 재산 덕에 남편은 아내를 사치품으로 여기게 되면서 아내는 주부로서의 권리와 

  의무에 대하여 당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규칙이 아내에게 적용되었다.

  , 수공업 마스터의 아내에게 부차적인 것이었던 남편에 대한 향락봉사가 상의 아내에게 

  전적인 목표가 되어서 그것이 아내의 가장 중요한 의무가 되었다아내는 최상의 사치품이었고 

  최상의 향락도구였다.

- 도덕의 표준은 어느 시대에서나 명백한 계급차별을 발생시키는 이해 관계에 맞도록 자의적

  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항상 이 도덕의 표준을 기초로 하여 특수한 성 행동에 관한 표준이 

  결정되었다. 또한 특권 계급의 지배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은 모두 다른 계급에게는 도덕률로 

  강요되었다.

  대표적인 사항이 목욕탕이 주제넘은 귀족이나 도시귀족의 지배에 대한 반항의 중심지로 변하

  게 되자 지배계급은 기다렸다는 듯이 목욕탕이 풍기를 문란하게 하는 장소라고 선언했고 

  권력이 흔들릴 경우는 즉시 목욕탕을 폐쇄해버렸다.

  결국 도덕이란 각각의 특수한 계급이익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모든 삶의 이해

  관계에 기초를 둔 사고방식이었고 도덕률이란 특정한 사회적인 요구에 입각한 사고방식,

  즉 사회를 지탱하는 경제적인 토대의 상부구조를 드러내주는 것에 불과하다

  계급의식이 아직 충분하게 발달하지 않고 다라서 사실이 조작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아직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는 오직 지배계급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만이 일반적인 규칙이자 

  당위적 규칙으로 간주된는 상황이 되었다.

- 성행동의 안정기에 점차 성장해온 도덕의 표준은 경제상태가 안정됨에 따라서 사실로 굳어져

  간다. 이 때문에 도덕은 일반적인 법칙처럼 보이는 관습으로까지 발전한다.

 

[르네상스의 본질]

- 삶 속에서 특수한 운동의 모습을 형성하고 그것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지해나가게 하는 것은 

  인간의 물질적 이해관계이다.

- 인간의 기존의 생산관계의 근본적인 변화, 즉 혁명적인 변화는 생활 속에서 아주 새로운 정신

  내용,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새로운 관념을 탄생시킬 수 밖에 없다.

- 특정의 생산 양식이 발흥하여 기존의 생산양식과 대립하고 따라서 전혀 상이한 사회조직이

  필요하게 되면 근본적인 변혁이 일어나며 그 변혁은 또한 전혀 새로운 사고방식과 관념의 

  탄생을 촉진시킨다.

- 역사 발전이 전환기적 단계에 이르면 시대는 혁명의 시대에 접어든다.

  사회전체가 전혀 상이한 토대 위에 놓이면 적어도 모든 계급들의 안목이 높아지며 기존의

  낡은 견해는 교한되어 소멸해 버린다.

- 자연 경제에 대립하여 마침내 그것을 붕괴시킨 요소란 아주 간단한 형태로 부단히 진전되어 

  오던 분업이라는 자연적인 경향이었으며 이 분업에 의해 생산 노동수익이 증가했고 마침내 

  독립수공업이 탄생했으며 이는 시장의 발생을 초래했다. 시장의 발생은 화폐의 등장을 촉진

  한다결국 화폐의 출현은 중세적인 봉건적 생산양식을 동요시키고 붕괴시켰다.

- 상품거래는 상인으로 하여금 전혀 새로운 계급인 근대적 부르주아의 최초 형태를 만들게 했고

  이전까지 자리를 잡고 있던 다른 계급을 모조리 변화시킴으로써 전혀 새로운 사고 방식을 

  형성시켰고 그와 동시에 전혀 새로운 에너지를 역사의 발전과정에 방류했다.

- 인간은 집단주의자로부터 개인주의자로, 무엇보다도 배금주의자로 변모시켰다.

- 자본은 카톨릭 신자만이 아니라 구매력 있는 모든 인간에게 수월한 돈벌이인 상업을 통해서 

  행복을 가져다준 존재가 되었다.

- 견고한 민족국가를 건설했던 것은 실은 상업자본의 경제적인 이해관계의 결과일 뿐이었다.

  민족국가의 성립과 함께 언어도 통일되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어 국어라는 것이 발전국가를 

  형성하는 힘이 가장 왕성했던 지역인 대도시에 의해서 국어의 주권이 행사되었다.

- 모든 혁명적인 것은 자기 눈앞의 현실의 벽을 뛰어넘으려고 할 경우에 미쳐 발달하지 못한 

  뒤처진 현실의 어느 부분 때문에 무자비하게 채여 부서진다모든 발전의 경향은 성숙된 단계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명확히 드러낸다.

 

[색의 시대 - 역사와 본질]

- 절대주의 시대는 인류가 이를 악물지 않으면 안 되었던 가장 비참한 비극의 시대였다.

- 계급 운동이 역사에 등장할 때는 항상 혁명적으로 고전적인 증거가 바로 기독교 역사로

  기독교는 본디 거대한 혁명운동이었다.

- 절대주의도 처음 역사에 등장했을 때에는 혁명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권역이었다.

  절대주의는 16세기에 기원한다. 그 세기에 절대주의는 그 당시에 등장한 상업자본주의의 

  대변자로서, 그 발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민족국가를 이룩하고 군주를 내세워 중앙 집권을 

  도모하며 나아가 그것에 반대하는 지방의 봉건 귀족들을 제압함으로써 군주의 권력을 최고의 

  수준으로까지 절대화했다.

- 중앙 집권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절대군주의 지배가 어느 나라에서나 출현했던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향한 발전에서 불가피한 단계였느데 절대주의라는 정치적 단계를 통과하지 

  않고 자본주의 단계로 바로 건너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필연성은 스페인에서 가장 빨리 나타났다.

- 프랑스의 절대주의는 세계제패에 실패한 스페인의 쇠사슬을 끊은 뒤에야 비로소 유럽에 대한 

  정치적, 문화적 지배권을 공인받게 되었다.

- 자본주의적인 생산 양식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그 때문에 봉건적인 저항이 강력하게 일어나자 

  계급투쟁은 더욱더 거친 형태를 띠게 되었다.

- 가난은 절대주의 하에서는 경찰의 요주의 대상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절대군주들 

  가운데서도 가장 절대적인 군주라는 낙인이 찍힌 인물은 루이 14세다.

- 세계사적 운동은 모두 혁명기가 있는데, 그렇다고 그러한 운동이 모두 영웅시대를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

- 종교전쟁이라는 관념의 껍질 속에는 군주적 중앙집권의 강화를 위한 싸움이 내재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 추기경 로베레(율리우스 2)가 교황의 자리에 앉았을 때 세상이 그에게 흡혈귀라는 별명을 

  붙이게까지 한 그의 참혹한 수법은 기독교라는 구원의 종교가 아니라 절대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 절대주의가 한번 탈취한 권력을 사생결단을 하고 독점하려는 것은 마치 정치권력을 탈취하려

  고 하는 야수성과 같다.

- 절대군주는 국가를 지배하려고 하는 여러 세력들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허울뿐인 

  전지전능함에 의해서 자신이 당연히 살아 있는 신이라고 진정으로 믿게 되었다.

- 절대주의 시대의 지상의 신들은 하늘에 있는 우리의 신이 보여주는 모범을 그대로 흉내냈으나

  어떻게 해도 흉내낼 수 없는 하나 있었다. 지상의 신들은 하늘에 있는 신이 행하는 기적을 

  보이려고 몹시 애썼으나 기적은 하나도 이룰 수가 없었다.

- 자기 나라의 인민을 팔아넘기는 수법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소국의 군주들이 가장 즐겨 

  사용했던 재정개혁이었다.

- 1777년 프랑스 전국에서 집계된 거지의 숫자는 25만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12만명이 파리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그 숫자는 파리 전체 인구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 절대주의 시대에 권력자에 대한 비판은 곧 신을 모독하는 일이었고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검열이라는 수단을 동원해 학문은 화석화하거나 까다로운 

  형식주의 속에서 질식해 버렸다. 따라서 가장 밑바닥의 인민 계급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나 

  무지와 끝없는 미신이 만연해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정통파에 의해 억압되고 봉쇄된 대중은 될

  대로 되라는 체념에 짓눌려 있었다.

  17세기에 들어와서 곳곳에 진을 친 종교 단체, 곧 형제교단이나 자매교단의 대두는 사회에

  팽배한 절망감의 반영이었다.

- 절대주의는 일시적인 정치적 기회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결국 사회라는 육체에 파고든 

  기생충이었다. 기생충을 제거하는 작업은 영국에서는 1649년의 혁명으로프랑스에서는 

  1789년 대혁명으로 이루어졌다.

- 절대주의는 스페인에서 강력하게 태동하였지만 17세기 말 프랑스가 이를 이어받는다

  프랑스의 절대주의는 모든 나라들 가운데 가장 강력했다. 그 이유는 첫째 경제적 토대가 절대

  주의를 위해서 형성되었고 둘째, 정치권력의 집중화가 거의 완성되었기 때문이며 또한 지리적 

  조건이 파리는 일찍부터 국제무역의 교차점이 됨으로써 자연히 절대주의 세계의 수도가 

  되었는데 절대주의의 최고의 예술적 승화도 이곳에서 로코코라는 예술 양식에 의해 이룩

  되었다.

- 독일을 역사에서 후퇴시킨 가장 큰 원인은 16세기 초에 나타났는데 그 이유는 동인도 항로의 

  발견으로 15세기 말부터 무역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독일 군주들은 

  인민의 노동 결정체를 갉아먹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그 피를 빨아 먹고 살았다고 할 정도였다.

- 영국의 경우는 영국 대혁명 이후 겨우 30년 동안 밖에 절대주의가 존속하지 못했다.

  인도라는 보고에서 무진장한 부가 런던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나타나

  절대주의를 강력하게 견제했고 자신들에게 아무 이익도 가져다 주지 않는 군주에와의 거래를 

  재빨리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 절대주의 시대는 여자의 고전시대였다. 여자가 수렴청정하면서 시대를 지배했을 뿐 아니라  

  실질적인 지배권마저도 꽤 가지고 있었다.

 

[부르주아의 시대]

- 부르주아의 시대는 18세기에 등장한 순수한 상품생산 경제 양식을 바탕으로 했던 근대 자본

  주의시대이다. 부르주아 국가는 거의 150년에 걸쳐서 최고의 신으로 공공연히 모시던 자리에서

  여성을 끌어내렸다. 여성은 철저하게 예속되어 있던, 권리 없는 노예나 단순한 오락물의 위치에

  서 점점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가 되어갔다.

- 지금까지의 역사에 내재했던 실제와 외관 사이의 가장 큰 모순은 사회발전이 최후 결과였으며 

  따라서 그것은 바로 근대적 부르주아 시대의 고유한 특징이 되었다. 사물과 관념의 거대한 

  모순을 은폐하기 위한 외피로서의 위선은 이와 같은 역사적 정세로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조정자가 되었다. 이제까지는 사회의 일부층의 특징에 지나지 않던 것이 부르주아 시대에 

  들어서자 전체의 특징이 되었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 처하더라도 겉으로는 도덕군자연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법칙이 생긴 것이다.

- 새로운 생산양식의 담당자인 시민 계급, 즉 부르주아 계급은 국가권력을 자신들이 으뜸으로 

  여기는 근대 자본주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했다.

- 1840년대부터 독일에서는 비로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눈부시게 발달했으며 그 결과 

  절대주의가 타도됨으로서 진정한 부르주아적 사회제도가 실현되었는데 이것은 영국보다

  200, 프랑스보다 50년 이나 뒤진 것이었다,

- 절대주의를 완벽하게 제압함으로써 등장한 부르주아 사회제도의 지배정신은 어떤 입장에서

  보더라도 항상 인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진보를 의미하고 있다.

  부르주아 사회와 더불어 연대의 진정한 개념이 나타났다. 인민의 거대한 연대는 부르주아

  사회제도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미화했다.

- 봉건사회가 멸망함으로써 탄생한 근대 부르주아 사회는 계급 대립을 없애기는커녕 이전의

  계급 대신에 새로운 계급, 억압의 새로운 조건, 투쟁의 새로운 형태만을 이식시켰다

- 부르주아 계급은 대개의 경우 간판을 다르게 색칠한 왕권, 즉 왕권을 대표한 계급으로서

  언제나 반 봉건적인 대지주 계급과 타협했다.

- 부르주아 계급은 이상하게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어느 수준이상으로 확장되지 않고 오히려

  매우 협애화되었고 제국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 부르주아 사회는 최초의 사상적 처방전으로서 도덕적인 세계질서의 실현을 표방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자신들의 생활을 그다지 위협하지 않는 한 역사 발전의 어느 시점까지는

  도덕적 세계질서를 표방할 수 밖에 없었다.

- 부르주아적 사회제도의 규칙의 핵심은 외형적인 예의범절을 지킨다는 것이었다.

- 화폐가 역사에 등장한 이래, 어느 시대에서나 물질적인 이익이 사물을 규정하는 수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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