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기쁨 (개정무선판) 믿음의 글들 196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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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CS 루이스가 기독교에서 무신론으로 떠났다가, 다시 기독교로 돌아오기까지 겪은 영적

순례에 관한 기록으로

내가 어떻게 무신론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대답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고는 하는데 나는 아무리 작품을 읽어도 그 전후 사정은 둘째치고 내용도 잘 모르겠다.

작품 소개서에 나타난 글을 그대로 옮기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경험, 잉글랜드의 학교에서 겪은 고통, 옥스퍼드 대학에서 보여 준(?)

뛰어난 업적읕 통해 무신론을 버리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 등을 객관적 통찰과 주관적 통찰의

하모니 속에서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자 주제인 예기치 못한 기쁨이란 저자가 겪는 기쁨이자 궁극적으로 그 경험이 

가리키는 의미를 일컫는 말로서, 지적인 면과 직관적 면이 통합된 수준 높은 회심의 심리학이다. (인터넷에 소개된 작품에 대한 설명....나는 도저히 동의하지 못 하겠다)

 

하지만 지식이 짧은 나는 아무리 작품을 심도 있게 읽어가며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속 깊은 뜻을

헤아려 보려고 무진 노력을 해 보았지만 내용을 가늠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좌절감 속에서 

작품을 덮고 말았다.

그 이유는 단순한 문장 속에서 언급되고 있는 알 듯 모를 듯한 표현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고

그렇지 않아도 시원치 않은 나의 판단력과 사고력을 관장하는 뇌회로에 혼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처절히 말이다.

“A는 소년 홍길동의 마음과 죽음을 앞 둔 단종 임금의 슬픔을 한 데 어울려 버무린 

 슬픔 속에 태극기 휘날리며의 주인공 동생과도 같은 마음이었다

라는 식의 표현이 나를 미치게 하고 있다.

, CS 루이스의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위와 같이 홍길동전도 읽어야 하고, 죽음을 앞둔

단종의 마음과 당시 단종을 둘러싼 정치적 분위기도 알아야 하며 나아가서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내용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들이 지닌 심리 상태의 공통 분모를 찾아내야만이 해당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약이 올라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인터넷을 끼고 앉아 저자가 이야기하는

모든 작품을 검색하며 전부 읽어볼 요량으로 도전하였으나 작품에서 언급된 대개의 작품을 

찾을 수도, 읽을 수도 없으니 본 작품을 읽고 감동 감화를 받았거나 저자의 주장에 동의를 하는

사람들을 우러러 보려고 노력하였으나 작품을 소개하는 인터넷 서점 평가란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읽었다는 사람은 몇 분 계시는 것 같은데 관련 작품을 읽고 서평을 언급한 사람은 지극히 

적은 것으로 보아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작품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는 다소나마 안도가 되었다.

동일한 저자가 쓴 작품 책 읽는 삶, 두란노도 마찬가지다.

읽은 사람은 많은데 - 아마도 작품 제목으로 인해 읽었을 것이다 - 서평을 남긴 이들은 거의 전무하다저자가 똑똑하고 책을 많이 접한 것은 알겠는데, 독자들이 쉽게 해석할 수 있고 독자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집필이 이루어져야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쓴 작품이라면 나는

앞으로 저자가 책 읽는 삶에서 언급한 것처럼 - 작품을 읽어보면 내가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

알 것이다. 나는 해당 작품도 읽었다 - 나는 해당 저자의 작품을 읽지 않을 것이다.

책장을 덮은 지금도 약이 오른 상태다.

 

따라서 위와 같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앞으로 아래와 같은 독서의 방향을 아래와 같이 정했다. 이는 책 읽은 경험을 바탕으로 선정했다.

- 기업을 다녀보지도 않고 기업이 하는 일에 대해 쓴소리, 헛소리하는 작자들

- 얄팍한 사회운동가 특히 성금 걷어 떼어먹고 철면피를 자랑하는 인간들

- 바른말이라고 하면서, 잘되라고 충고한다면서 올바른 이야기를 싹수없이 하는 인간

- 내로남불 해 놓고 자기는 로맨스라 우기는 위선자들

- 다듬지 않아 안 그래도 더러워 죽겠는데 콧수염에서 냄새 날 것 같은 인간의 헛소리

- 여기 저기서 완장차고 난리치는 저급한 삼류들의 외침

- 앞에서는 노동자 위하는 척하며 난리를 치라고 부추기고 사고치면 변호사 남편 고용해

  돈벌이하는 위장 전술의 대가들

- 자기가 알뜰히 벌어서 비싼 것 사 입고, 치장하고 다니는데 난리치는 인간들

- 오늘 아침에도 봤지만 빨간 완장차고 남의 공사장, 기업체에 몰려가 난리치는 부류들

- 멸공을 외치던, 콩나물을 외치던 남의 의견을 갖고 왈가왈부하는 덜된 부류들

- 다양한 편가르기를 올바른 줄기 세우는 것이라 외치는 부류들

그 종류가 하도 많아 여기에 다 올리기도 어렵지만 아무튼 이런 부류들이 쓴 작품은 절대

안 읽을 것이며 가까이도 하기 싫다.


마지막으로 출판사도 정신 차리길 바란다.

독자들이 읽을 만한 작품을 펴내고 독자가 선택해 주기를 바라고 있어야지 난해한 책읽어도

이해가 반푼어치도 않되는 책, 겉만 번지르르한 책을 내 놓고 독자들이 책을 가까이 안 한다고

독자탓 하면서 책 안 읽는 국민들이라고 난리치지 말고 정신부터 차렸으면 좋겠다.

 

읽었으니 몇 구절 정리해 보는데 짜증이 확 밀려온다.

- 사람은 안정적인 행복의 기억이 있는 과거보다는 순간적인 기쁨의 기억이 있는 과거를 찬양

  하는 법이다.

- 역사가란 서사시가 제공하는 자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 어떤 만족감보다 그 갈망자체를 더 갈망하게 만드는 갈망’. 

  그것을 '기쁨(Joy)'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기쁨은 전문적인 용어이므로 행복(Happiness)’이나

  쾌락(Pleasure)’과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쾌락은 우리 재량대로 얻을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기쁨은 결코 우리 재량에 달린 것이

  아니다.

- 사람은 어떤 것을 질색할 때와 똑같은 강도로 다른 것에 매혹되는 법

- 신이 의도를 가지고 세상을 만들었다면 이처럼 약하고 흠투성이일 리가 없다.

- ‘기쁨은 소유물이 아니라 오래 전에 있었던 무언가, 저 멀리에 있는 무언가,

  아직 이르지 않은무언가를 바라는 갈망이다.

- 사람의 마음에는 일종의 중력이 있어서, 선은 선을 부르고 악을 악을 부르는 법

- 직접적인 시련은 동지애를 불러일으키며, 고난을 겪는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사랑까지

  (시련이 심할 때)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쾌락으로 포장된 시련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냉소주의,

  은밀히 사람을 괴롭히는 원한을 불러일으킨다.

- 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의 답은 결국 하나님이시니까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그분께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 자체가 그분의 주권이 법적으로 정당한 것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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