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청기사 - 1918년의 ‘코로나19’, 스페인독감의 세계문화사
로라 스피니 지음, 전병근 옮김 / 유유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추천 권유도 6

이 작품은 스페인 독감의 세계문화사라는 부제가 알려 주듯이 작금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코로나 19’의 태동에 대해 또 그런 페더믹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를 

보여 주고 있는 작품으로 어떤 특정 사안과 방법 등에 관해 심도 있는 논의도 있었지만 사회

국가, 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현상과 대응에 대해 논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야기에 앞서 작품 제목 죽음의 청기사성서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네 명의 기사 중 

하나로, 세상에 종말을 가져오는 네 가지 재앙 중 질병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이 

눈길을 끌고 있다.

작품을 읽고 덮으려는 순간 앞 부분으로 돌아와 작품 내용을 다시 한 번 점검하려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문구는 병은 병에 그치지 않았고, 유산이 되고 역사가 되었다’ 였는데 아주 적절

하게 작품 내용을 설명한 문구였다는 생각을 해 본다.

 

스페인 독감의 위력을 보여주는 자료는

‘191834일 첫 환자가 나온 이후 19203월 마지막 사례가 있기까지 지구상 3명당 1명 

, 모두 5억 명의 사람을 감염시켰으며 5천 만 명에서 1억 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는 

1차 세계 대전(1,700만 명)2차 세계 대전(6천 만 명)을 넘어섰다.

 

중요한 것은 스페인 독감이 어마 무시한 결과를 초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만 기억될 뿐 

집단적으로는 기억되지 않고 있으며, 공간적으로 광범위했지만 시간적으로 얕았던 반면 전쟁은  

좁으면서도 그 충격파는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이를 잊힌 재난이라 부르고 있다.

 

작품을 덮으며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작품 후반부에 저자의 시각으로 내린 결론 

, 가장 위험한 상황은 지금 살아 있는 사람 중에 아무도 노출된 적이 없는 새로운 변종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 막을 최선의 방법은 감시와 예방에 효과적인 도구를 갖고 관련 정보를 숙지한 상태에서 

지침을 잘 따르는 공중을 상대하는 것이다질병 봉쇄 조치가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따랐을 때 

가장 효과적이라면 사람들이 병의 본질과 그것이 낳는 위험에 관해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객관적으로 적시에 전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작품을 읽고 이렇게 글을 맺고 싶다.

 

독감이 발병했을 때 병명과 원인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 했을 때, 현대라고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원인을 몰랐기 때문에 또 처음 접하는 질병이었기에 인간은 과거 유사하게 진행된

병에 대한 치료법으로 병을 이기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별 호과가 없자 고민했을 것이고 또 연구했을 것이다.

그러다 병의 실체를 알게 되었으며 그 치료에 도전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체 역시 호락호락 인간에게 자기의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새로운 변종을 

만들어 냈을 것이고 이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그 결과 나타난 것이 오늘날 우리를 힘들게 하는 코로나 19’가 아닌가 생각한다.

현대의 의학자들은 애써 말하고 있다.

앞으로의 미래는 바이러스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법 밖에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가 바이러스와 공존하기 위한 백신을 맞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 히포크라테스는 유행병이라는 뜻의 에피데믹이라는 단어를 의학적인 의미로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 바이러스는 혼자 힘으로 증식할 수 없기 때문에 숙주의 세포에 침투해 그 세포의 증식 기관들

  을 납치해야만 한다. 그 다음 바이러스의 자손이 그 숙주를 떠나 새로운 숙주를 감염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이러스는 원 숙주와 함께 수명을 끝내게 되는데 이것이 독감의 최후다.

독감은 인간과 동물 둘 다 감염시키는 미생물이 있다

- 독감의 자연적 병원소로는 일반적으로 조류, 특히 물새류가 꼽힌다.

어떤 종이 어떤 병원균의 보유고 역할을 함으로써 얻는 큰 이득은 그 병에 자신은 걸리지 

  않는다.

- 독감은 인간의 질병이 된 순간부터 인류의 역사를 빚기 시작했다.

- 범유행성 독감의 기원과 전파 방향을 밝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럽인은 적어도 

  19세기부터, 과거 자신의 동족이 신세계 구석구석에 치명적인 질병을 남겼던 사실은 잊은 듯,

  새로운 역병이 돌 때마다 그 역병이 중국 혹은 유라시아 스텝 거주민이 사는 고요한 지대에서 

  불어오는 것으로 속단해 왔다.

18세기와 19세기에 일어난 모든 분쟁에서 전쟁터의 부상보다 질병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더 많다.

 

- 세균과 질병 사이를 연결한 것은 독일의 로베르토 코흐와 프랑스의 파스퇴르다.

- 세균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세균이론을 실행에 옮긴 선진적 집단은 군의관들이다.

  ---> 병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라틴어로 ‘VIRUS’는 독 혹은 강력한 진액 같은 의미로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것은 1892년 

  러시아 식물학자 드미트리 이바놉스키다.

- 로베르토 코흐의 지도를 받는 학생인 리하르트 파이퍼가 독감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를 발견

  하는데 비로소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의 엄청난 충격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함

   ----> ‘파이퍼의 바실루스

  * 바이러스의 크기는 박테리아의 20배 정도로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아 독감의 원인이라는 

     의심을 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어 당시 의사들의 최대 고민이었다.

- 1918년 급작스레 발생한 질병을 모두 페스트라고 불렀다.

-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은 19174, 19184월에 독감은 이미 범유행병으로 

  커져 있었고, 전쟁 포로(러시아, 독일 등)의 석방으로 유럽 전역으로 번져나간 것으로 보이며 

  유럽 전쟁터에서는 군사 작전에 심각한 지장을 줄 정도로 큰 피해를 입혔다.

  8월이 되며 독감은 치명적인 파도를 타기 시작하는데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과 미국 보스턴

  프랑스 브레스트였는데, 이를 부추긴 것은 군대의 이동이었다.

- 러시아 내전과 시베리아 횡단 철도 그리고 페르시아의 지배권을 둘러싼 영국과 러시아의 

  분쟁이 북아시아 전력으로 독감이 확산되는 데 일조했다.

- 추가적으로 독감이 확산된 이유로는 대륙간 화물과 사람을 이동시키던 화물선이 주 범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대표적인 우편 화물선인 영국의 데메라라호와 같은 우편선 등이다.

- 병의 명칭은 당시 지구상의 최고 강대국(세계대전의 승전국)이 사용하고 있던 것으로 

  ‘스페인 독감으로 알려지게 된다.

 

- 방역선, 고립, 격리 이는 인류 역사에서 아주 오래된 개념으로 감염병을 옮기는 주체가 무엇

  인지 그 본질을 이해하기 훨씬 전부터 심지어 그것을 하나님의 행위라고 여기기도 훨씬 

  전부터 이런 것을 실행해 왔다.

- 유행병을 효율적으로 방어하는 방법은 특정 장소에 모아 놓고 감염 기간보다 더 오래 잡아 

  두는 것으로 격리를 맨 처음 생각해 낸 것은 15세기 베니스 사람들이었다.

- ‘로스 이론은 병에 걸릴 수 있는 개인의 밀집도가 일정 한계점 이하로 떨어지면 발생이 감소

  하기 시작한다는 사실로 유행병은 방해가 없느 한 자기 경로를 따라 진행되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밀집도를 줄이는 조치(사회적 거리두기)는 종결을 앞당기고 사상자 숫자를 줄일 수 

  있다.

-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신고 대상이 되고 범유행병이라는 사실이 인정되자마자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라는 비상 수단이 동원됐다.

- 최초의 신약이 진료소에 공급된 것은 1960년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다.

- 중국의 오지 내륙인 산시성에서 스페인 독감이 창궐하는데 그 원인은 1914년 중국은 중립을 

  선언하고 전쟁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영국과 프랑스에 대해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전선 후방에서 힘든 일을 떠맡는 노동자 지원단 결성을 제안하고 135천명이 

  프랑스와 벨기에로, 20만명이 러시아로 갔다 들어 오면서 해당 병원균이 중국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측한다.

- 계절성 독감과 범유행성 변종을 구분하기 위한 도구가 존재하는 지금도 범유행병의 경계를 

  확정 짓는 것은 본질적으로 임의적인 일에 해당한다

최초의 독감 백신은 1936년 러시아인 A.A 스모로딘체프가 생산했다.

스페인 독감을 일으켰던 H1N1 변종은 지금도 멀쩡히 살아 미국 조지아 애틀란타 봉쇄 시설에 

  갇혀 있다.

 

- 스페인 독감은 그 자체로도 악성이지만 여기에 폐렴이 더해지면서 복잡해지는 경향이 강했다

  대다수의 사람이 유일하게 의견을 같이하는 부분이 독감의 기원이 조류일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물새류가 엄청나게 다양한 독감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새류는 사람처럼 폐가 아니라 소화관 속에 대개는 아무런 부작용 없이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다가 배설물을 통해 바이러스를 방출하면 다른 새가 이를 먹이화하고 같은 새의 체내에서 

  서로 다른 바이러스 변종이 만나 유전자를 교환해 새로운 바이러스를 생산했다.

  ---> 조류 독감과 스페인 독감의 염기서열이 너무나 흡사

  * 참고로 말도 사람만큼 조류 독감에 취약하다.

- 인터페론이 인간 몸의 제 1방어선으로 면역세포는 사이토카인이러는 화학물질을 분비해 

  상처 입은 조직에 혈액량을 증가시켜 보다 많은 면역 세포가 그곳에 이를 수 있게 하고 이때 

  감염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면 숙주의 다른 세포까지 죽인다. 그 결과가 붉은 기운

  체열, 부기, 통증이다. 이것을 합쳐서 염증이라 부른다.

- 나이 많은 연령층이 1918년 독감 때 어느 정도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1830년 경 돌았던 

  H1이나 N1을 포함한 독감 아형에 이미 노출된 경험이 있었던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모든 감염성 질병은 유전적 요소를 갖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하나 혹은 몇몇 

  유전자가 그 질병에 대한 취약성을 통제하지마, 다른 사람의 경우에는 수많은 유전자의 작은 

  효과가 함께 힘을 발휘한다.

- 스페인 독감은 그 과정에서 인류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예로써 이미 말라리아나 결핵같은 

  다른 질병에 걸려 몸이 허약했던 사람을 제거함으로써 인구수는 줄었지만 더 건강한 인구가 

  남아 이전보다 높은 비율로 자손을 낳을 수 있게 한 것이다.

-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독감이 적대 행위의 종결을 앞당겼다는 데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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