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 평전 보리 인문학 1
한명기 지음 / 보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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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언제부터 나는 독서를 마치면 무거운 주제이거나 내가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용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몇 날 며칠을 읽은 작품을 갖고 혼자 고민 아닌 고민을 하고는 했다

일종의 병이 아닐까?

이유는 하나다.

작품 내용과 주제를 되씹어 보면서 왜 그랬을까?”, “그렇게 밖에는 할 수 없었을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반복되는 점은 없는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등등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이런 쓸데 없는 주제를 갖고 고민하고 있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본 작품을 갖고 이야기하기 전에, 위와 같은 관점으로 작품을 분석해 보고 음미해 보았을 때

순전히 개인적인 소견이다 - 우리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전문가들의 편협함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크게 든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나라 건국일의 기준을 갖고 내노라 

하는 학자(?)에서부터 얼치기 역사학자까지 총망라해서 정치권과 벌이는 이전투구를 보면

내가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알 것이다.

단언컨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이런 현상은 반드시 또 반복될 것을 나는 확신한다.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과 접근 방식은 십인십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좌도 우도 아닌 입장에서 정의를 분명히 세워놓고 이를 

달리 해석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정권을 잡은 기득권층에 의해 근본부터 다시 평가하려는 모습을 보면

역사학계가 예산이 남아 보도 블럭을 다시 까는 구청 수준도 아니고 국가의 뿌리가 되는 사항을 

완전 통째로 들고 엎어버리고 권력의 입맛에 맞게 재 편집을 해 버리니 정말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될수록 또 해석하고 평가하는 잣대가 시대에 따라 변화되는 사회라면 누구도

역사 앞에 당당할 수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상한 역사 논리를 들고나와 사회와 나라는 물론이고 일반인들 사이

에서도 분란을 일으키게 하는 삼류 학자들과 거기에 편승해 발광하는 정치 모리배들은 정말 

정신차려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지는 작품을 읽어보면 알 수 있는데,  

의 다툼 속에서 최명길 선생이 보여주신 행동은 사건의 중심부에 있었던 인조

인정하듯 결코 폄하될 수 없을 만큼 큰 업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서는 대세를 저버린 

희대의 간웅으로, 죽어서도 평가조차 제대로 못 받는 사항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그 분이 활동

했던 시기는 물론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진정한 평가를 방해하고 있는 노론을 추종하는 

학자들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역사를 접하다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저명한 인물임에도 후세에 알려진 게 거의 없거나 

기록이 전무한 분들은 대체적으로 당시의 주류층이 아니었기에 전해지거나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게 현실로 생각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해당 작품 역시 최명길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500여 페이지에 달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 작품을 찬찬히 뜯어보면 거의 비슷한 이야기와 사례가 매 장마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고 있어 최명길 선생 개인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보다는 주변부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참으로 아쉬운 작품이었다고 생각되는 바이다.

이유는 아마도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분의 치적을 알 수 있는 자료가 극히 부실했거나

아니면 오랑캐 청과 은혜를 베푼 명나라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닥경(닥치고 공경해라)’’

하려는 주류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해 그와 관련된 자료가 폄하되고 훼손되어 그러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보다는 편향된 역사관을 갖고 있는 주류학자들의 방임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국심이 더 든다.

역사를 연구하는 후손들이라면 양이던 음이던 모든 것을 수렴해 연구해야 진정한 학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자료가 적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는 외눈박이 역사적 사실에 목을 매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나는 지난 2019 6월경 화살맞은 새 인조대왕”(김인숙/서경문화)라는 작품을 읽은 후 서평을

통해 인조대왕의 재임기간 동안의 문제점에 대해 열거한 적이 있는데 해당 작품은 인조를

중심으로 한 정치 권력의 문제점을 분석한 내용으로 생각하였으며 여기에 다시 당시 요약을

정리해 보면

 1왕권의 정통성 확립을 위해 아버지 정원군에 대한 추증 문제로 신하들과의 날 선 대립이연일 

     이어졌고

 2) 반정에 대한 부담을 떨치기 위한 인목대비와 정명공주(선조의 딸)에 배려와 사위에 대한 불신

 3) 청나라의 압박과 조선 출신 통역관들의 안하무인격 횡포로 인한 스트레스

 4)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궁궐 내 저주사건과 잦은 병치레로 인한 스트레스

 5) 왕과 세자의 혼사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왕의 권위에 대한 추락과 도전

 6) 송시열과 치열하게 다투었을 ’예송문제‘

등으로 조선의 역대 그 어떤 왕보다 더 많은 골치 아픈 시간을 보냈을 것으로 판단된 게 나의 

소감인데,

작품은 청나라(실리)’명나라’(명분)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로가 옳다고 주장만 하는 

권력층의 이면과 함께 전쟁으로 인한 조선 사회의 정치, 사회적 혼란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는 평을 하고 싶다.

저자께서는 권력층의 탁상공론적 분열 속에서 오로지 국가와 종사의 안위, 백성을 헤아리려는

최명길 선생에 대해

 1) 책임과 희생정신

 2) 유연함과 포용력 냉철한 현실 인식과 전략 마인드 

 3) 현실에 발을 디디고 대안을 제시했던 경세가

로 평가하신 점에 전적으로 동감을 표하는 바이다.

작품에 대해서는 요약을 하는 것은 작품의 가치와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정리하는

것은 지양을 하고 독자들에게 한번쯤 읽어 보기를 강력히 권하는 바이다.


나는 작품을 통해 역사적 사실에 감추어진 몇 가지 주변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는데


첫째, 최명길이 청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을 만들어낸 배경에 관한 것으로 그가 

       내세운 청과 화친하지 않으면 종사와 백성을 보전할 수 없다는 배경의 출발점을 엿보는 

       대목인데,

       “최명길을 통해 우계 성혼의 존재를 일깨워 주는데, 성혼은 최기남(최명길의 부친)

        존경하는 스승이었다. 성혼은 전란 중에 임금을 내팽개친 불충한 인물로 당대에 비난받는 

        인물로 주화파의 길을 걸었던 최명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명길에게 큰 영향을 준 

        최기남이 성혼의 제자였다는 사실과 성혼 또한 최명길처럼 임진왜란 당시 시의를

        거스르면서 일본과의 화친을 주장했다가 곤욕을 치뤘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점이다. (* 성혼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부족하여 더 이상의 언급 없이 인용해 보았다)


둘째, ‘적폐청산도 좋지만 우선적으로 무엇을 생각하여야 하는지를 생각하라

        평안도 관찰사 박엽구명 운동을 했는데

        해당 인물은 광해군 정권에서 수많은 구설에 올랐던 인물로 정사야사에 기록된 내용

        만으로도 삼뜩하고 부정적인 내용이 낭자하다는 인물이었지만 당시 최명길은 장수의 지략

        이 뛰어난 인물이라고 그를 평가하면서 박엽을 살려 두어야만 후금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하며 그를 살리는 것이 나라의 장성을 보전하는 것이자 후금의 침략을 막는 

        길이라 여겼다.

        박엽은 장기간 평안도에 머물면서 후금과의 교섭 능력과 경험, 그리고 그가 확보하고 있던 

        후금과의 외교 통로가 상당했었던 인물로 최명길은 그의 능력을 중시했는데

        병자호란 당시 청인들이 박엽이 만약 있었다면 우리가 조선에 들어올 수 없었을 것

        이라고 할 정도의 오랑캐들에게는 두려운 존재였다고 한다.

        또 다른 예는 장인 장만의 집사 출신이었던 정충신(이괄의 난 당시 공로자)’과 관련된

        이야기로, 최명길은 일단 사람의 능력과 재주를 인정하면 그의 다른 측면들을 별로 괘념치 

        않는 스타일이었다. 비록 전 정권의 인물일지라도 그의 경험과 능력이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하다면 주저 없이 등용했다고 한다.

        (* 이 부분은 정권이 바뀔 적마다 구시대 적폐청산만을 외치는 우리의 위정자들이 새겨 

            보고 본 받아야 할 점이 아닌가 생각했다)

셋째, 열불나게만 하는 ‘탁상공론에 집중하는 위정자들의 작태

        골수 척화신들이 보기에 인조는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음으로써 임금의 자격을 이미 

        상실한 더럽혀진 군주였다. 인조는 신료들이 자신을 오군으로 여기는 데 빌미를 제공한

        원흉으로 김상헌을 지목했다.”

        상기 내용은 저자의 관점으로 당시 집권층에 만연된 분위기와 리더가 부하를 바라보는 

        관점을 표현한 내용으로 당시 상황을 직접 목격하거나 현장에 있지 않았어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확연히 든 내용으로 마치 오늘을 사는 우리 정치현실을

        목격하고 기록한 듯한 내용이다.

        거기다 인조까지 자신의 부하를 부정적 시각 김상헌은 인조가 청에게 항복을 결심하고

        남한산성에서 내려왔을 때 죽음으로 항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조를 호종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간 전력이 있다 - 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하여간 나라가 온전히 운영되거나

        외세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정신전력과 단합력이 거의 바닥 수준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에, 최명길만은 인조를 다독이면서 임금의 권위를 회복하는 문제, 조정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 출사를 기피하는 풍조를 불식하고 인재 등용 문제, 전란으로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진 민생을 안정시키는 문제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넷째 위정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정말 중요하다.

        좌의정 이성구는 청으로 끌려간 자신의 자식을 빼내기 위해 속환값(몸값)을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가격이 아닌 터무니 없이 크게 지불해 속환값 폭등의 단초를 제공해 이를 감당

        할 수 없었던 다수의 서민들에게 실망과 좌절감을 안겨주어 사회적 공분을 초래하고 

        이것이 문제가 되어 조정에서도 크게 꾸짖는데,

        해당 사건을 보면서 1620년대에 일어난 정묘호란에서 가진 자들이 보여 준 모습과

        1340년대 영불간에 벌어진 백년전쟁당시 칼레의 시민들이 보여주었던 모습을 대비해 

        볼 때 시간적으로 300년 가까이 벌어져 있고, 도덕과 양심이 그래도 서양보다는 많이

        고양되었을 동양, 그것도 조선에서 배우고 가진 자라고 여겨지던 인간들에 의해 그런

        저급한 행동이 나왔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한심한 것은 그 이후 5백 년 가까이 흐른 작금의 시기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우리의 위정자들 사이에서 주택 소유 문제, 갑질 문제, 음주운전

        문제, 비대면 종교모임의 권유 무시, 내로남불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정치권 문제가

        코로나로 인해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범부들을 더욱 더 서글프게

        하고 있다.  


        현대판 최명길 선생이 북악의 하늘 아래서 번민과 고뇌 속에서 진정으로 사람이 먼저다

        라고 외칠 그날을 학수고대해 본다.    

       역사는 반드시 반복되는데, 최초로 실패한 리더(위정자)는 단순히 실패한 리더로 기록

       되지만 역사의 실패 속에서 교훈을 찾지 못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한다면 혼군()’ 

      혹은 무능한 리더 기록할 있음을 기억해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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