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 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그린 이 시대 50대의 인생 보고서
송호근 지음 / 이와우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추천 권유도 7

평소 신문 사설이나 칼럼을 주로 읽을 때 남다른 필력과 예리한 분석력 그리고 차분한 논리로 독자와 나를 

매료시키셨던 저자께서 베이비 부머 세대인 50대들의 '힐링'을 위한 작품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또 평소 

저자에 대해 갖고 있던 나의 생각도 있어서 앞 뒤 생각하지 않고 작품을 접했다.

 

작품은 격동의 시대를 피와 땀으로 헤쳐 왔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길 수 없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인생의 

2막을 준비하는 모든 베이비 부머들에 대한 이야기로, 내용의 중심은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바로 

'너'와 '나'의 이야기였기에 작품을 읽는 내내 어느 샐러리맨의 단편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어 묘한 감정이

들었던 그런 시간이었다.

가장 공감되었던 부분은 아마도 베이비 부머세대들이 한참 시절에 경험했었을 고생과 추억으로 점철된 

이야기 그리고 그들만이 소유하고, 공유하고 있는 이 나라 경제의 성공적인 신화와도 같은 이야기는 거침

없이 달려 온 이 시대의 주역들에게 멋진 추억을 제공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나를 또 다른 흥분 속에 몰아

넣고는 하였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받은 느낌은 마치 어느 등산가가 산행을 마친 뒤 마주하는 어떤 허전함이랄까 혹은 

아쉬움이 짙게 묻어져 나온 그런 작품이었다.

, 뭔가 '힐링'이 될 줄 알았던 작품이 오히려 가슴 한 켠의 응어리는 해소되지 아니하고 더욱 단단한 

옹이자리 매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를 고민해 보았고, 그 옹이는 도대체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굳이 부연 설명하지 않더라도 퇴직을 했거나 눈 앞에 둔 세대들이라면 크게 공감할 몇 

구절을 통해 답을 찾아 보았다.

 

- 한국의 50대 남성들은 경제적 부양 책임을 이행한 대가로 가족들에게 정신적, 심리적 의존을 알게 모르게 

  구걸해 왔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 부모 세대는 '낳고 기른 공덕'을 노후보장과 맞바꿀 수 있는 불가침의 신성한 권리로 주장한 당당한 

  세대였으나 하지만 지금의 50대 중, 후반의 우리들의 베이비 부머 세대가 그랬다가는 쫓겨나는 수가 있다.

 

-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부모와 아이돌 그룹의 음악과 패션을 즐기며 자라난 자식들 사이에 낀 틈새 세대 

  베이비 부머들은 혈연 외에는 화해할 공통점이 없는 두 부족(部族)의 유별난 요구를 들어주느라 여념이 

  없다.

 

- 베이비 부머는 고답적, 복고적, 전통적 행위 양식을 '부모의 권리'로 강제하는 부모들의 가치관을 수용해야 

  하고, 현대적 합리성과 평등한 행위 규범으로 무장한 자식 세대들의 요구를 받아 들여야 하는 사태에 자주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 50대의 초반에 닥쳐오는 제2의 사춘기 시절 엄습하는 '허무'는 그간의 정체성을 부숴버리는 괴물로 다가

  오지만, 다른 한편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라는 긍정적 신호이기도 하다. 지금보다 훨씬 가혹한 혼란을 

  겪을 노년을 앞두고 청년 시절을 버텨 온 힘인 정체성을 새롭게 하라는 시그널이다

  그러므로 아예 일정 기간을 정해서 '정체성 수리 중'이라는 팻말을 뇌 속에 걸어두는 편이 낫다

  팻말 거는 방법이 의례와 의식이다.

 

- 누가 당신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주겠는가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과거에 대한 집착은 홀로 서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취미는 정서적, 심리적 홀로서기에서 필수 

  항목이며 요리 능력 역시 그 한 범주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사회관계의 소멸이다. 소득세를 낸다는 것은 

  사회관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베이비 부머들의 가슴 한 켠에 자리 잡은 응어리들의 실체를 나름의 관점으로 바라 보면,  

퇴직을 눈 앞에 두었으나 모아 놓은 것이라고는 달랑 아파트 한 채 밖에 없고, 부부의 영원한 채권자들로 

구성된 자식들과 이들의 뒤치닥 거리를 하다 모아둔 재화도 별로 없는 그야말로 뭐 두 쪽 밖에 없어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면 회사를 나서는 그 순간부터 아무런 대책도 없는, 그렇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회사에

목을 매고 뛸 수 밖에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퇴직 후 살아가야 할 뚜렷한 경제적 방어 전략도 제대로 

수립되지 않아 항시 전전 긍긍하고 있으나 별 뾰족한 대안도 없는, 그래서 이런 저런 사정을 감안해 뭔가 

준비해 보려고 마누라 몰래 융자를 받아 주식에도 투자해 보고, 전도 유망한 사업을 하는 친구 회사에 투자도

해 보았다가 거의 쪽박 수준이 되어 버려 꿈에 그리던 퇴직 후의 안락한 삶은 이제 완전한 꿈이 되어버린 

현실이 너무도 허망해 긴 한 숨만 절로 나오는 사람들의 그런 현실이 바로 응어리의 실체가 아닌가 생각한다.

더욱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이런 고생도 그 끝이 보여야 하는 데, 그 누구도 고생의 끝이 언제이고, 어디

까지인지에 대해 확언을 해 주지 못하고 있으니 그 응어리는 더욱 베이비 부머 세대를 옹죄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작품을 읽고 난 후 모든 상황을 에 국한하여 생각을 다시 해 보게 되었다.

작품 읽은 후, 퇴직을 하더라도 '나에게는 퇴직에 따른 경제, 사회인 어려운 날들이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라는 자만심 아닌 자만심이 있었다.

한참 시절 인간에게 다리가 왜 있어야 하는지그 이유를 모를 정도로 회사와 사회 생활을 거의 날아 다니며

(?) 했었기 때문에 이런 자세와 정신만 갖고도 모든 현실적인 문제가 전부 해결될 줄 알았고 그런 날의 연속

인줄만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었다.

퇴직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아닌데’,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지?’ 등과 같이 마주하는 

일상이 조직에 몸담고 있을 때와는 또 내가 조직 안에서 상상 속으로만 파악했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게 

벌어지다 보니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었다.

문제점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고는 있으나 꼭 그 이유만은 아닐 것이라는 자위도 해 보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 속에 살아 왔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고 그런 참담한 현실 속의 주인공이 

바로 내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 자신의 영광과 촉망받던 시절을 생각해 봐야 생각하는 본인만 괴로울 뿐이다.

퇴직이 현실이고, 재 출발이 순리라면 큰 물의 앞 물을, 뒷 물이 밀어 내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듯 모든 것을 

숙명으로 받아 들이고 사고의 폭을 현실성 있게 넓게 가질 필요가 있음을 새삼 느끼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한 금언을 다시 들여다 보게 되었다.

우리 인생에 있어 마주하게 되는 장애물은 우리를 막는 장애가 아닌 새로운 길을 알아 보라는

어떤 '계시'로 받아들이라

는 말이었다.

 

퇴직을 막연하게 세인들이 말하는 2의 출발선이라는 막연한 의미로 해석해 어찌되겠지 하는 생각과 

자세로 마주하지 말고 뭔가 새로운 도약의 밑받침으로 생각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게로 인해 마주한 퇴직임에도 마치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선택될 수 밖에 없었던 

길인 것처럼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든다. – 자발적으로 나온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렇다고 누가 본인의 억울함을 대신 풀어줄 수 있겠는가. 당사자인 본인 스스로가 헤쳐나가고 홀로 해결

야 할 운명인 것을 말이다.

결코 울지 않겠다.

그렇다고 그렇게 살아 온 날들을 후회하지도 않겠다. 내가 그렇게 살아 왔기 때문에 오늘날 나의 가정이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힘껏 또 도약의 기틀을 만들어 보겠다. 또 나만의 

자부심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다녔던 우리 회사가 오늘날 모든 이들이 우러러 보는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어느 누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던지 간에 나의 조그만 힘이 보탬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겠다. 그러나 힘들 것이다.

때로는 처절하게 외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내 개인의 삶이 아니겠는가 .

 

지금 이렇게 글을 써도 나의 마음은 정말로 무겁고도 무겁다 아니 무척 힘들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생각할 것이고, 가장 멋지게 어려운 고난을 이겨냈을 때를 생각하며

힘차게 살아가고자 한다.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더 중요 이유를 작품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누가 당신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주겠는가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과거에 대한 집착은 홀로 

 서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작품을 읽은 느낌을, 소회를 길게 써 봐야 답답함만 가득할 뿐이고, 홀로 세상이라는 정글에 내 버려진 듯한 

느낌만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그 자체이지만 나는 외치겠다.

 

"파이팅!”이라고 말이다


* 오늘은 퇴직 후 찾은 두 번째 직장에 사표를 내는 날입니다만 그렇게 서글프지는 않네요.

  그런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던 나의 감정에도 딱쟁이가 앉아 그런가 봅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겠죠?

  이렇게 글을 쓰고는 있지만 세상 참,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인생 2막 녹녹하지 않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