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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복음 - 로마서 ㅣ 김양재 목사의 큐티노트 로마서 1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 권유도 5
지난 2012년 저자의 ‘복 있는 사람’(두란노 출판사)이라는 작품을 읽고 아래와 같이 기록한
사실이 있다.
“기독교 서적을 읽다 보면 불신자들을 주님 곁으로 인도하기 위한 말씀을 전해주는 데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순종하지 않는 자는 그리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할 것이라는 거의 협박 수준의 말씀을 강조하는 내용이 있는 반면,
과거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나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하면 복된 영생을
얻을 것이리라는 충고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전자의 경우와도 같은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비 신자들
에게 자칫 위화감 내지는 공포감을 조성해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게 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
나는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한 번쯤 경험했을 '고난'
혹은 '역경'이라는 단어를 화두로 던져서 '원죄' 속에 몸부림치고 있는 인간들이어서 회개하고
주님의 품 안으로 빨리 들어오기를 간곡히 권유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나뿐만이 아니라 웬만한
교인이라면 선호하는 전도 방식으로 아주 거부감 없이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권유의 말씀이 아닌가 생각한다.”
본 작품을 읽으면 저자의 이야기 패턴은 거의 비슷하다.
다시 이야기해 저자의 관점 내지는 주장하시는 내용은 거의 내가 위에서 언급한 사항 중 전자에
가깝다. 기독교 신자인 내가 읽어도 거북하고 신경에 거슬리는데 비신자 혹은 가뜩이나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르는 세태를 반추해 봐도 그리 환영할 만한 전도의 방식 혹은 아름다운 사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데 나만의 생각이기를 바랄 뿐이다.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비신자들과 육욕에 찌든 남자들 – 저자의 관점 –을 바라보고 인도
했으면 한다.
특히 짧게 끝난 저자의 결혼 생활이 어떠했는지는 작품을 통해 잘 알고 있기는 하나 비신자들
특히 남성들을 거의 동물 수준으로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짜증에 짜증이 더 할
뿐이다.
앞으로 이미 구매한 본 작품인 ‘절대 순종’을 포함해 그 어떤 작품이라도 이 분 작품은 읽지
않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나도 남자이기 때문이다.
종교인의 관점에서 작품을 읽고 느끼고 나를 더욱 생각하게 한 문구만 정리해 보았다.
- ‘바울’이라는 이름은 헬라어 ‘파울로스(paulos, 작은자)에서 온 말로, 어원인 paulos의 어근인
’파우어‘에는 ’포기‘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 바울의 이름은 ’사울‘이었다.
’사울‘의 뜻은 ’희망‘으로 ’하나님께 구한다‘라는 뜻이 있다.
바울이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첫째 근거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이다.
- ‘사도’는 ‘아포리톨로스’라고 하는데, 부름심을 받은 자, 보냄 받은 자를 의미한다.
- ‘유앙겔리온(기쁜 소식)이 복음의 어원이다.
- 올바른 가치관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아무리 성공을 해도 자기 상처로 다른 사람을 상처 주게
되어 있다.
-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통이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죄를 알아야 한다. 내 죄를 깨닫고
나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때문에 무엇을 하든 영혼 구원이 목적이 된다.
- 내 삶에 불확실하고 혼란스럽던 것들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확실해지는 게 복음이다.
- 하나님이 나에게 힘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은 나를 통해 이루실 역사가 크기 때문이다.
- 밉지만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이 나의 상한 마음을 바뀌 주신다.
미운 너보다 너를 미워하는 나의 죄를 회개하게 하신다.
- 남을 위해 드리는 기도가 곧 자신이 복을 받는 비결이다.
- 복음의 능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 사함의 능력이다.
- 복음은 전적으로 하나님 쪽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고 방법이다.
- 하나님은 의롭고 옳으시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떤 세력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하나님이 택하신
나를 지키신다.
-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공백이 있다. 이것은 어떤 피조물로도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에 의해 채워질 수 있다.(파스칼)
- ’가득한‘ 죄를 짓느라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마음을 온통 빼앗기는 것이 상실이고, 실성이다.
’불의‘는 하나님은 틀렸고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이며, ’추악‘은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이고,
’탐욕‘은 필요 이상의 욕망이며 ’악의‘는 악한 마음이다. ’사기‘는 하나님 없는 지혜로 간교
하다는 뜻이다.
- 진노의 사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통해 내 죄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간섭이 최고의 축복이다.
-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 죽음을 통해 담당하신 우리의 죄가 얼마나 참혹한지
를 보여주는 것이다.
-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판단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이다.
-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그럴 때 죄를
분별하는 지혜가 생긴다.
- 역할에 의한 책임은 상대적이고, 지위로 인한 특권은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죄인인
인간의 특징이다.
-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모든 사회의 관계 속에서 만족이 없는 이유는 우리가 역할과 지위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 신앙의 기준은 열심히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보는가 못 보는 가에 달렸다.
- 악의 본질은 자신의 죄와 불완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 신자가 불신자와 다른 점은 고난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는 것이다.
- 이웃은 정죄와 비난의 대상이 아니고 자기를 조라고 하나님이 주신 거울이다.
- 오직 소망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아는 사람이다.
- 죄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남의 죄만 보고 내 죄는 못보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욕망을 이루어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약속하신 것은 말씀하신
대로 꼭 이루시는 분입니다.
- 믿는 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평을 누리는 특권입니다. 화평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화평은 ’이루는 것‘이 아닌 ’누리는 것‘이다.
- 환난과 인내와 연단을 이루어 갈 일이 우리의 삶에 쉬지 않고 찾아올 것이다.
그때마다 자신을 바라보면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쉬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면 결론은 순종과 충성입니다.
- 죄는 교만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가면을 쓰게 하고,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게 합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죄를 것이다.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며 스스로를 의롭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죄를 깨닫기가 어렵다.
-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은 내가 더 이상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살게 하시려는 뜻이다.
- 육신은 죄의 도구이고, 죄는 율법을 통해 드러나며 그 결과는 죽음이다.
- 선함에서 선함을 이끌어 내려 하지 말고 악한 것,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환경을 통해 하나님께
로 돌아오는 선함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 선악과의 용도는 그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명령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 ’탄식‘을 원어로 보면 ’해산의 고통‘이다. 피조물과 인간과 하나님의 탄식을 들으며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숙제이다.
- 미국인들이 쓰는 험한 용어 중 ’갓 뎀(God damn)’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성령이 너를
떠난다’라는 뜻이다.
- ‘환난’을 원어로 보면 ‘트리볼룸’이라고 하는 데 이는 로마 시대에 쓰던 타작기를 뚯하는
단어이다. 우리말로 하면 ‘도리깨’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