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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싱크탱크들
이저 윌로치 지음, 차재호 옮김 / 홍익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추천 권유도 3
지난 1998년 ‘나폴레옹(5권, 막스갈로, 문학동네)’이라는 작품을 통해 군인으로서의 ‘나폴레옹’
이라는 인물을 처음 접해 본 후, 그의 어떤 점이 사람들이 그를 따르게 하였고 그 과정에서 그의
참모들은 무슨 역할을 했고, 어떤 자세를 취했을까를 생각하던 와중에 지난 2002년경 해당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작품을 읽기 전 나는 그와 그의 참모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 속에
– 나는 평소 ‘리더’보다는 리더를 움직이게 하는 ‘참모론’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다 -
작품을 선정해 읽었으나, 당초에 내가 작품을 읽기 전에 가졌던 그같은 기대를 완전히 져버린
내용이 많아 솔직히 실망감에 실망감만 더한 상태에서 작품을 덮고 말았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의혹 사건들과 권력형 비리 사건을 접하면서 여태껏
내가 읽어 온 작품 어딘가에서 많이 접해본 듯한 사건이 연속으로 일어나고 있어 기억을 되짚던
중 갑자기 본 작품이 생각나서 다시 한 번 읽게 되었다.
작품을 통해 개인적으로 내가 받은 느낌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고 칭송되었던 박근혜 정부
에서 벌어졌던 어느 모자란 여인의 질낮은 언행으로 인해 벌어졌던 정권의 파국상과 그런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민중들이 들었던 촛불로 세워진 정권에서 벌어지는 모습들 중
특히, 권력자 및 권력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키며
‘보나파르트’란 인물을 등극시키기 위해 벌였던 모습의 축소판과도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다.
아직 국가, 사회적인 ‘논쟁적 화두’의 실제 내용이 법적 테두리 안에서 밝혀지지 않아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위인지를 가늠하기가 어려워 그 부분은 빼고서라도 그런 혼돈 속에 존재하는
권력자와 그를 둘러싼 참모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가끔 이상한
사람이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어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기가 참으로 어려운
현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정치’는 모른다.
하지만 ‘정치인’ 그들이 과거에 행한 언행과 행적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나에게는 힘은 없지만 그 힘보다 더 강력한 귀중한 한 표가 있음을 알고 있기에 오늘도 과거
속의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위정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어찌 되었던 간에 해당 작품은
1) 시대적, 정치적 혼란기에 ‘보나파르트’가 어떻게 권력을 쟁취할 수 있었는가를
2) 권좌에 오른 후에는 참모들로부터 어떤 도움을 직, 간접적으로 받았는지를
3) 참모들은 어떤 의도에서 권력자를 위해 큰 그림을 그렸는지를
4) 권력을 손에 쥔 권력자는 어떤 행동을 취했었는가를
기술한 작품이지만 기대만큼 내용적으로 완성된 작품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그런
작품이 아닌가 생각하는 바이다.
작품에서 눈에 띄는 몇가지 대목만 추려 본다면 –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전체를 갖고 논한다는
자체는 ‘프랑스 혁명사’와 ‘나폴레옹’ 등극사를 논하는 방대한 작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생략하고 모두가 알 수 있는 사건 위주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다.
나폴레옹은 '브뤼메르 거사'로 불리는 쿠테타로 권력의 핵심을 차지한다.
이 시기는 프랑스가 혁명으로 표출된 국민들의 이상을 실현하고 공화국의 이상을 달성할
‘영웅’을 갈망하던 시기로 각종 전쟁에서 괄목할 만한 전과를 올리던 나폴레옹이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되는 계기가 무르익는데 ‘보나파르트’가 나타나자 그런 영웅을 기대하던 추종 세력들에 의해 아무런 저항 없이 권좌에 오르게 된다.
우리의 역사나 외국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대체적으로 등극 과정이 올바르지 못한 권력자가
취하는 조치 중의 하나가 집권 초기 추방된 ‘구세력’을 통치권 안으로 포용하는 정책인데,
보나파르트 역시 정치적 반대파에 대해 가혹한 보복이나 징벌 대신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영구적
으로 자기편으로 만드는 전략을 추진했는데,
반대파를 포용하는 정책이 나폴레옹의 경우 잔꾀에 가까운 전략이었음이 역사는 증거하고
있지만 그래도 정권을 잡은 집단이 과거를 청산한다는 미명하에 ‘구 시대 인력’이라는 이유
만으로 내치고 모욕을 주는 모습보다는 한결 아름다운 행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자신을 수 십 년 동안 감옥에 가둔 기득권 층을 향해 정권을 잡은 뒤 ‘용서의 손길’을 뻗으며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겠다’는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아름다운 모습과 죽음의 문턱
까지 갔다 와 화해의 손길로 치유한 우리의 DJ선생께서 칭송되고 있는 이유를 정권을 잡은
권력자와 그의 주변부에 있는 참모들은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역사를 자신들 입맛에 맞게 해석
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확실한 대의 명분과 논리에 입각한 방식으로 내로남불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내로남불적’ 그 폐해를 작금의 현실에서 확실히 보고 있지 않은가?
황제에 등극한 그는 수많은 시간을 전쟁터에서 보내게 되는데, 그럼에도 국내 문제도 확실히
챙길 수 있었던 이유는 나폴레옹 정권과 운명을 같이한 권력의 2인자, '캉바세레스’때문이었는데,
그의 권력자에 대한 행동이나 처세는 단순히 비난하기에 앞서 참모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혹은
2인자를 자처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은 연구해 볼 만한 인물이 아닌가 생각하며 본 작품의
제목에 걸맞는 내용이었다면 오히려 이들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와 설명이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황제에 등극한 이후 그는 '국민 주권'이니 '의회 토론'이니 하는 것을 믿지 않았다고 하며, 지도자
의 확고한 의지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힘만 있으면 언제든,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믿는 타고난
'독재자'였다고 저자는 여러 정황 증거를 바탕으로 밝히고 있다.
또 나폴레옹은 '선거 제도'를 국가 개혁을 위해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불필요한 소모적인 제도로 보았는데, 이를 보완하고자 자신의 손으로 정치인을 임명하는 '지사단(知事團)‘을 운영하고 있다.
어찌되었건 간에 보나파르트 체제를 명실상부하게 받든 싱크 탱크들은 입법을 담당한 '블레',
내무를 담당한 '르뇨', 재정을 담당했던 '드페르몽'에 의해서라고 한다. 2인자인 '캉바세레스'
역시 그들과 함께 큰 활약을 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재자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의 하나인 ’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다.
나폴레옹은 루이16세 보다 더 가혹하게 언론을 통제했는데, 그는 '언론의 자유'를 위험한 것으로
생각했으며, 정치적인 신문 기사를 단호하게 처단하는데 이를 간파한 측근들이 언론 '검열제도'를
만드는데, 이 제도는 국가의 지식과 문화를 철저히 마비시켰고 후유증은 오래갔으며, 1811년에는
파리에 4개의 일간 신문사만이 남았다고 한다.
또한 보나파르트 측근들에 의해 자행된 ‘국민들에 대한 처벌 남발’이 보나파르트 정권의 정체성
과 신뢰도를 급속히 떨어트리는 결과로 연결되었는데, 정권의 싱크 탱크들 조차도 이런 사실을 충분히 인식치 못하였다.
- 이 부분은 우리의 역대 정권들이 답습한 방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
보나파르트는 분명 군인으로서의 많은 업적과 황제로서 행한 행위가 국민들에게 커다란 자부심
으로 각인되게 하는데 성공한 것은 사실이나 국민들에 의해 주도된 '혁명의 유산'을 더욱 긍정적
인 가치를 올리는데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는 도구 내지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후세 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나폴레옹'이라는 단어는 영웅으로서의 고유명사가 아닌 야망과
정복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였다.
어찌되었던 나폴레옹은 겉으로는 참모를 활용한 참 군주였던 것으로 생각되는 면도 있으나
한거풀 걷어내고 자세히 살펴보면 참모들에 의해 농락당한 절대 군주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크게 들게 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