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소문을 읽으면 조선이 보인다
구자청 지음 / 역사공간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추천 권유도 9

 

작품에 언급된 상소문의 내용을 찬찬히 읽고, 분석해 보면 전체를 아우르는 단어로 요즘 세상

에서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소통]과 일맥상통하고 있으며 이를 주제어로 선택해 엮어진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소문'은 작성되는 글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배경에 대한 상세한 고찰없이 작품에

게재된 내용 자체로만 당시의 정치, 사회상의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본다.

,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상소문은 임금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간의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자칫 글을 올리는 자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건전하지 못하게 사용할 가능성도 있음을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소문이라는 것이 오늘날과 같이 과학적이고도 체계적인 조사 및 측정 기법이 있어서

이를 유효 적절히 평가해 최적의 안을 도출, 절대권자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올렸을 수도 있겠으나 모르긴 몰라도 작성자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저자거리의 풍문

내지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마치 대다수의 의견인양 포장하여 제출될 경우 이를 해결해 줄 절대권자나 최고의 책임자는 바른 판단이라도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확한 예로 보기는 어려우나 작품에 실린 '유자광'의 상소는 바로 이런 점을 잘 증명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는 '이시애'가 난을 일으키자 왕에게 그의 '머리를 잘라 받치겠다'고 상소를 올리고 있다.

상소문을 올릴 당시 그의 마음 자세는 순수한 마음에 의해 그런 상소문을 작성하였을 수도

있으나 결국 그런 상소문이 결국에는 자신이 권력층에 다가서려는 하나의 수단 중에 하나였음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결국 그는 순수하지 못한 그런 사고의 결과로 '남이 장군'을 제거하였고, 연산군 시절에는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을 문제 삼아 무오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숙청

시키는데 그방법으로 상소문을 활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참고로 유자광은 세조에게 발탁된 이후 다섯 명의 왕을 모시면서 풍운의 삶을 살았지만 조선

왕조의 대표적인 '간신'이라는 불명예를 안는다.

 

또 하나 상소문을 읽으며 느꼈던 사항으로 가장 크게 다가 왔던 것은 우리의 조선 왕들은 정말로 피곤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내용의 제목이나 한 구절만

읽어 보아도 전체 내용을 감지할 수 있는 몇 대목만 추려 보면 임금이 얼마나 피곤했었는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 왕권을 위협하는 외척(처남들)을 처단하십시오.(태종)

- 형 양녕대군의 죄를 다스리십시오(세종)

- 군자를 등용하고 소인을 물리치십시오(중종)

 

(명종 시절 '조식의 상소' 주요 내용)

- 대비는 궁중의 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 정치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사람을 임용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닦음으로써 하고,

  몸을 닦는 것은 도()로써 해야 합니다.

- 전하께서는 반드시 마음을 사로잡는 것으로 백성을 새롭게 하는 요체를 삼으시고, 몸을 닦는

  것으로 사람을 임용하는 근본을 삼아 지극한 이치를 세우도록 하소서.

- 전하께서는 뭇 신하들에 대해 깊이 신임하시는 것이 부족합니다(선조)

- 근본은 세워 기강을 바로 잡으소서(효종, 송시열)

 

위의 대목은 단순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용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어 보면 절대자에게

끊임없이 마음과 정신 자세를 가다듬을 것을 줄기차게 촉구하는 내용으로 절대자가 정말로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이런 글을 올린 사람들 대개가 임금보다 연령이나 인생 경험이 앞서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왕은 비록 자신이 왕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함부로 뭐라 이야기할 수 없어 정말 피곤

했을 것이며, 기득권층을 뒤에 업고 덤비기라도 하면 체면이 말도 아니었을 것이다.

심지어 왕에게 도끼로 자신의 목을 쳐 달라고 아우성 치는 인간도 있었으니 참으로 임금은

피곤하고도 힘들었을 것이다.

 

'조선'에 대한 식민사관적 관점이 역사학계에 널리 퍼져 있어 후세들 대부분이 마치 조선이 문제있는 왕조로 평가를 받아서 그렇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하나의 상소문을 통해 그런

모든 시각들이 틀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것은 명종 시대에 충신 '조 식'이 올린 상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조식은 왕인 명종의 거듭된 벼슬 권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번번이 사양하고 오히려 조정의

무능함을 질타하면서 명종과 모후인 문정왕후를 비난하면서

 

"대비(문정왕후)께서는 생각이 깊으시지만 깊숙한 궁중의 과부에 지나지 않으시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단지 선왕의 한낱 외로운 아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라는 파격적인 글을 올려 왕의 심기를 크게 건드린 사건인데,

이 상소문을 접한 명종은 매우 불쾌해 했다고 한다. 특히 어머니인 문정왕후를 여염집의 일개

과부로 표현한 글은 자신이 왕이기 이전에 한 어머니의 아들로서 분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지만

그런 글을 올렸다고 글 올린 자에 대한 벌을 내리거나 글의 내용을 갖고 치도곤내지는 문제를

삼았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조선 왕조는 식민사관이 보는 '당쟁과

파당'싸움으로 날이 저문 그런 나라가 아닌 [소통]이 살아 있었던 그런 국가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상소문에 언급된 내용을 나름의 시각으로 분석해 보면 대체적으로 왕에게 6가지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1. 왕으로서의 처신을 잘해 달라

  2. 공인으로서의 자세가 부족한 인간들이 많다

  3. 왕의 학습이 부족한 것 같으니 더욱 학습에 매진하라

  4. 현명한 인재의 등용이 아쉽다

  5. 노력하는 공인이 별로 없다

  6. 사회 기본 질서가 타락해져 있으니 이를 바로 세워 달라

내가 내린 결론은 조선의 상소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직, 탄핵, 정치논쟁,

민폐 시정 요구 등으로 훌륭한 상소라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 들이는 위정자들의 소명 의식이

없다면 한낮 휴지 조작에 불과했을 것이다.

 

정말로 우리의 산 역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작품이었다.

 

    책으로부터 얻은 상식들

 

- 종지(宗支)란 종은 적장자를, 지는 적장자를 제외한 아들을 이르는 말

 

- 기상 이변이 일어나면 임금이 신하들에게 국가 경영에 대한 지혜를 묻는 '구언(求言)’이라는

  관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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