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는 질색이다. 진짜 리뷰 쓰기 싫다. 왜 그러는지 통 모르다가 어제 알았다. 리뷰 강박증 때문이다. 페이퍼는 일종의 수필이지만, 리뷰는 논문이다. 매의 눈으로 치밀하게 따지고 파고 들어야 한다. 읽기는 그렇다 치고 쓰는 건 더 힘들다. 한 편의 리뷰를 쓰고 나면 진이 빠진다. 하기야 아무렇게나 쓰는 사람도 있지만, 난 그렇지 못하다. 적어도 리뷰는 리뷰답게 써야한다는 고집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피한다. 어쩔때는 리뷰는 페이퍼에 쓰기도 한다. 결국 리뷰인제 페이펴인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두 달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 모녀가 함께 걷는 모습을 보고 뒤에서 살짝 찍었다. 어머니는 사십대 후반이거나 오십대 초반이었고, 딸은 스물 서너살로 보였다. 아픈 엄마을 거의 매일 찾아와 저녁이면 운동을 했다. 부러웠다. 당시 내 곁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며느리 전성시대다. 명절이나 추석때도 며느리들이 시댁에 가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그런데 친정에는 간다. 그럼 아들 또는 사위는 가만있나? 가만 있다. 불만은 있지만 소리는 내지 못한다. 딸은 있지만 며느리는 사라진 시대다. 아니다. 며느리는 있지만 딸은 없다. 며느리 전성시대가 온 것이다. 왜 며르리이면서 딸인 여자들은 시댁에 가지 않으려 할까? 불편하기 때문이다. 누가 시댁을 좋아하겠는가? 며느리와 딸을 같이 둔 부모들도 똑 같다. 딸은 빨리 시댁에서 나오라고하고, 며느리는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니 어떤 며느리가 좋아하겠는가?
저 딸도 엄마가 아니라 시어머니였다면 날마다 같이 운동하러 왔을까? 아닐 것이다. 가끔 개과천선해서 오는 며느리도 있긴 하더라. 결국 인간은 애착 이론에서 나오듯이 밥보다 편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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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높아진다. 파란 하늘이 구름 틈 사이로 조금씩 보인다. 아침에 창문을 여니 제법 쌀쌀하다. 가을이 분명하다. 책이나 잔뜩 읽어야 겠다. 올해는 주로 읽던 종교서적이나 자기계발, 역사서와 철학 서적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도 소설을 사고, 읽어도 소설만 읽는다.
600쪽이나 되는 김언수의 <뜨거운 피>가 유독 눈에 들어 온다. 리뷰가 많은 걸보니 재밌는가 보다. 김중혁의 <나는 농담이다>도 읽고 싶다. 오늘의 젊은 작가라는 수식어를 붙였던데? 뭐지? 출판사에서 신경을 쓰는 작가라는 뜻이 아닐까? 하여튼 재미있을 것 같다. 2016 제10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인 <거기 있나요>도 보인다
. 난 신인 작가들의 책을 읽지 않는데, 올 가을엔 읽어볼 참이다. 초기의 작품을 통해 그들의 실력을 가늠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나저나 K는 이번에 단편 소설을 출품했다는데 잘 됐는지 모르겠다. 당선되면 한턱 쏘라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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