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평화 지만지 희곡선집
후안 마요르가 지음, 김재선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혜화에 있는 서울연극센터에 가서 후안 마요르카의 영원한 평화를 읽었다.

4마리의 개가 주인공인 희곡작품.

 

처음에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캐릭터의 이름이 캐릭터의 종種과 성격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는데, 유럽식 철학과 이름이 제대로 매치되지 않아서였다.

 

엘리트후보자 이마누엘, 오딘, 존존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이름을 딴 이마누엘.

북유럽 신화의 주신이자, 파괴의 신의 이름을 딴 오딘.

케네디 대통령 아들의 이름을 딴, 비싼 학교 교육을 받았지만 생각하는 능력이 없는 존존.


시험관 카시우스. 아마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이었던 그 카시우스겠지.


사람이 한 명 나오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보조자의 역할이다.


임마누엘 칸트의 "영원한 평화에게"라는 책을 토대로,

후안 마요르카가 경험한 테러(미국의 911과 스페인의 아토차 기차역 테러)에 대하여 쓴 희곡.


평화에 대한 세 마리의 개의 접근은 다르다.

평화에 대하여 철학적으로 접근하고 정의와 악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하던 이마누엘.

물질만능주의로 절대적인 선과 악을 규정하지 않고 보수가 많은 쪽으로 움직이는 오딘.

한 학기에 6천만달러의 교육을 받았지만, 교육과 지시대로 움직이는 존존.


존존은 한국식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존재지만,

다른 두 마리의 개의 뒷 이야기를 계속 다시 보게 되었다.


거리에서 떠돌이 생활을 했던 오딘과 투견 경험이 있는 이마누엘의 이야기였다.


오딘은. (거의 확실하게) 유기견 출신이고 (공식적으로) 세 번의 주인이 바뀌는 동안 여러가지 경험을 하였다.

오딘의 삶에서 세관에서 일을 한다거나, 병원에서 암환자를 구별한다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이었을 것이다.

희곡에 써져 있는 글로 오딘의 말투를 짐작해보건데, 강인하고 길거리 생활을 오래한 그런 개였다.

아마, 죽이지 않으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도 많았을 것이다.

오딘이 좀 더 많은 보수를 위하여 직업을 바꾸는 것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보수가 높다는 것이 의미하는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생활.

오딘이 원하는 것은 안정과 (이마누엘이 이야기 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의) 평화가 아니었을까.


이마누엘은. 투견과 안내견이라는 전혀 상반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투견을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투견을 하는 업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태어나 투견으로 길러진 것일수도 있다.

- 단지 죽고 죽이는 것만 있고 다른 삶은 선택할 수는 없는 삶.

이마누엘은 맞는 것이 지겨워 사람을 죽였을 때, 이마누엘에게 다가온 것은 폭력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안내견이라는 새로운 직업과 함께, 새로운 주인 이사벨의 따뜻함.


오딘와 이마누엘은 매우 힘든 나날을 겪었다.

하지만 오딘에게는 계속해서 힘든 날 뿐이었다면, 이마누엘에게는 다른 기회가 있었다.

- 이사벨의 죽음으로 이마누엘에게는 트라우마가 생겼더라도.


그러기에 평화를 바라보는 두 마리의 개의 시선은 달랐다.

오딘에게 평화란 일을 하고 보수를 얻어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이었지만,

이마누엘에게 평화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을까?

- 이 일이 옳은 것이까? 왜 해야 하는 것일까? 잘못 죽이는 것이 아닐까?


존존을 오딘과 다른 의미의 괴물로 만든 것은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 한 교육의 죄일 것이다.

질문하는 법은 한 학기에 6천만달러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 임마누엘 칸트의 영원한 평화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평화를 위한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한 질문이 계속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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