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의 우리는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고 직업을 바꾸며 흔들리면서 사는 존재로 남게 될 수도 있다. 김광석 시대의 서른은 결혼을 하고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에 열정적인 20대의 청춘을 잃은 상실감을 표현하고 있지만 2026년의 서른은 아직 미완성인 존재로 남아 여전히 20살처럼 흔들리고 있다. '서른의 시린'에서는 거창하게 성공할 수 있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약간씩 달라지는 미묘한 거리감과 매일 이별하고 달라지는 관계를 한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닌 진행하고 있는 상태로 말해준다. 과하게 과장된 감정을 절절하게 쓰지 않는다. 담담하고 현실적으로 한 글자가 쓰인다. 개인적으로는 김보겸이라는 사람이 안정적으로 잘 나갈 수 있는 교육 사업이라는 커리어를 버리고 시와 에세이를 쓰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시와 에세이라는 것이 불확실하고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길이기에 낭만적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의 언어로 삶을 쓰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선택을 존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