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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뉴딜 - 기후변화 시대, 해양의 새로운 정치학
크리스 암스트롱 지음, 김현우 옮김 / 나름북스 / 2025년 7월
평점 :
크리스 암스트롱이 블루뉴딜을 쓴 이유는 바다를 자연이나 자원이 아닌 정의와 권리로서 바라보고 인간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는 정치적 공간으로 끌어올리고 싶어서이다. 인간은 바다를 무한정한 자원이라고 생각하고 무책임하게 행동해왔다. 많은 사람이 기후위기를 이야기할 때 대기 속 이산화탄소의 비율과 에너지 자원의 영역으로 정의하지만 크리스 암스트롱은 기후위기의 최전선 지표가 바다라고 말을 한다. 바다의 온도가 높아지고 해양 산성화로 바다 속 생태계가 붕괴되며,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사라질 위험에 처한 섬나라의 상황은 환경의 변화가 아닌 공동체의 붕괴로 보여진다. 온실가스 배출과 피해 상황을 나누었을 때 해양 정의는 극단적인 기후 불의의 문제이며 불공정한 상태이다.
국제적으로 바다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공간이었다. 국제적으로 정의된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자유가 아닌 기술과 자본을 소유한 강대국과 다국적 기업의 자유였다는 것은 우리가 모른체한 문제다. 공해(기선으로부터 200해리 밖의 바다 해수면)에서의 어업 보조금, 심해저에서의 채굴, 해양 생태에서 채취된 유전자 자원의 독점은 사용가능한 자본이 독식한 사적 전유물이었다. 바다는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열려진 공간이 아닌 소수의 이익을 위한 공간이었으며 이로인해 해양 생태계는 파괴되고 남반구의 해안 공동체는 생계 기반을 잃었으며, 해양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착취당하는 삶을 살았다.
블루 뉴딜은 해양 정의의 문제를 비인간 동물의 삶으로 확장하며, 해양동물과 생태계 역시 인간동물 활동의 피해자라고 정의한다. 바다에서 벌어진 잔혹한 어업 방식은 생태계를 붕괴시켰으며 바다에서 사는 대동물(고래류 등)은 물론 플랑크톤과 같은 소동물의 삶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대형 트롤 어업은 무거운 쇠그물과 쇠사슬로 바다의 바닥을 뒤집어놓아서 산호초, 해저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바다 생태계를 최소 수십년동안 회복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두었다. 고래, 상어, 가오리 같은 바다의 대동물은 그물에 걸려 부수 어획으로 죽기 일수이며 해저 영역 파괴로 미생물과 플랑크톤의 서식지과 파괴되며 먹이감이 부족한 상황에 이르렀다. 바다에서 나는 이익은 소수의 기업이 가지고 가지만 전 생태계의 모든 동물이 피해를 입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기술과 자본의 힘으로 단기적 이익은 추구한 인간동물의 활동은 반자연적이며, 폭력적이다. 인간동물은 바다 앞에서 오래 생각하지 않았고, 쉽게 행동했으며, 비이성적이었다. 해양에서의 활동으로 이익을 얻은 자는 누구인가? 고통받은 자는 누구인가? 권리와 생명을 박탈당한 존재는 누구인가? 바다를 자원으로 생각하는 정치가 아닌 바다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정치를 위해 우리는 정의로워야하며 생각하고 행동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