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읽으면서 단 한 번도 슬프다거나 고통스럽지 않았다. 청소년이 자신을 퀴어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부정하는 사회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감정이 많이 담겨있는 반면, 날개의 경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LGBT의 정체성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지 않고 성장과정의 일부이며 자신 발견의 여정이라는 것을 날개가 생긴다는 것으로 표현된 부분이 세련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많은 문학작품에서 동성 간 성행위와 LGBT의 정체성을 동일한 것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많은데, LGBT 정체성은 성행위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바냐는 자신이 어떤 감정에 반응하고 주변의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며 어떤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지를 상당히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청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스스로를 이해하며 관계를 맺는 방식이 바뀌며 세상을 향해 나아가면서 LGBT 정체성이 확립되어가는 과정이 부정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당히 평온했다. 미하일 쿠즈민이 글을 쓰면서 성적 묘사가 아닌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더 많이 묘사한 이유가 있다. 개인의 정체성은 특정 행위가 아닌 모든 관계의 집합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날개를 생기는 과정이 고통스러울지라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