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푸드 문화의 서론은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우리 삶을 결정한다'로 시작하고 결론은 '우리의 미래는 음식에 달려 있다'로 끝맺음이 난다.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동식물은 무언가를 통해 영양분을 섭취해야 살아갈 수 있다. 배송, 냉동식품, 간편식이 식탁에 오르는 음식의 표준이 되어버린 시대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는 개인적인 기호와 생활습관이 아닌 자신의 가지고 있는 신념의 표현이 되었다. 대량생산으로 표준화된 농산물은 지역의 농업을 소멸시키고 다양한 문화를 바탕으로 한 식문화를 통일시켰다. 이는 각 나라마다 각기 다른 생태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계절이 가지고 있는 감각과 공동체의 교감을 없애버린다. 한국에서는 김장문화가 사라지고 이탈리아에서는 1년 동안 먹을 토마토 소스를 만드는 패밀리 토마토 소스가 시판용 김치와 토마토 소스로 대체되고 있다. 슬로푸드 문화는 빠르고 효율적인 삶이 아닌 자연의 속도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한 시작을 의미한다.네이티브 아메리칸 중 라코타 족에서는 Mitakuye Oyasin이라는 인사말이 있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매일 음식을 소비하지만 그 음식이 어디서 왔고 누가 기르고 만들었는지에 대해 무지하다. 음식이 식탁에 오르는 그 과정 증에 흙에서 어떤 생명이 자랐고, 공동체가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직접 농사를 짓고 동물을 키웠기에 생명과 땅의 소중함을 몸소 느끼면서 살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단절되1었다. 제철의 식재료를 집 근처에서 구하는 소박한 행동이 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토양을 회복시키는 느린 걸음이 될 수 있다. 속도의 문명에서 인간동물이 잃어버린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고민하자는 의미에서 슬로푸드 선언은 중요하다. 나는 슬로푸드 선언을 읽으면서 한국이라는 도시밀집국가에서 스마트팜을 제외하고 자연생태를 해치지 않는 도시농업이 가능할까에 대해 고민을 해보았다. 한국은 인구밀집도가 높고, 특히 그 인구가 서울과 경기권에 몰려있다. 이런 국가에서 실천가능한 슬로푸드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