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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방역 살처분·백신 딜레마 - 왜 동물에겐 백신을 쓰지 않는가
김영수.윤종웅 지음 / 무블출판사 / 2021년 1월
평점 :
이 책은 MBC충북 창사 특집으로 2018년 11월 18일 방영된 다큐멘터리 '살처분, 신화의 종말'을 토대로 쓰인 책이다. 책의 공동저자는 당시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김영수 PD와 다큐멘터리 제작 당시 전문 영역과 관련하여 지원을 하였던 윤종웅 수의사(한국가금수의사회 회장)이다. 2018년에 해당 다큐멘터리를 보지 못하였고 책을 먼저 읽은 뒤 유튜브에 업로드되어있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다큐멘터리와 책의 이야기 순서가 조금 다르다. 책에서는 영국 컴브리아 지역에 존재하는 세계 최대의 가축 살처분 매립지인 와치트리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2001년 유럽은 구제역 파동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은 수의 소, 양, 돼지가 살처분 당하였다. 당시 구제역 사태를 직격으로 맞았던 영국의 캄브리지 지역에서 강제 살처분된 50만 마리의 가축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하던 공군 비행장에 싸그리 묻어버리고는 그 위에 와치트리 리저브(Watchtree reserve)라는 자연보호구역이자 생태공원을 세웠다. 살아있는 생명을 산 채로 생매장을 시켜놓고 그 위에 생태공원을 짓는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을 뿐이다. 영국에서 가축을 키우는 농민은 혈통이 있는 영국 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과 함께 백신을 맞은 가축은 시장에서 유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살처분'이 필요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반하여 네덜란드의 경우 각 농장마다 전담 수의사를 배정하고 살처분보다는 예방과 백신 접종을 통하여 전염병을 막자는 주의였다. 영국의 경우 섬나라이며 혈통주의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이지만 네덜란드의 경우 유럽 다른 나라와 국경이 맞닿아 있으며, 국토 자체가 작고 인구밀집도도 상당히 높은 나라이다 보니 살처분보다는 예방과 백신 접종이라는 선택이 보다 옳은 선택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다큐멘터리의 경우 제일 전라도 익산에 있는 동물복지농장인 참사랑 농장으로 처음을 열고 끝을 마무리하였다. 참사랑 농장은 전라북도 익산에 위치해 있으며 산란계 닭을 키우는 농장이다. 2015년 7월 30일에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았다. 참사랑농장은 동물복지 기준(1㎡당 9마리)보다 넓은 계사(1㎡당 5.5마리)에 닭을 방사하고 친환경 사료와 영양제 등을 먹여 친환경 인증과 동물복지 인증, HACCP(식품안전 관리 인증)를 받으며 성심성의껏 닭을 키우고 있던 중이었다. 2017년 3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기 전까지. AI 발생으로 (아마) 익산시로부터 키우고 있는 닭에 대한 살처분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였고 익산시는 참사랑 농장의 농장주를 가축전염병예방법 위반으로 고발하였다. 참사랑 농장의 농장주도 살처분 명령을 취소해달라고 행정 소송을 제기하였지만 전주지방법원은 해당 살처분 명령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한국에서는 고병원성 가축 전염병에 대한 대책은 '살처분'이라는 단 하나의 대안만을 가지고 있다. 책과 다큐멘터리에서 제시한 '백신'을 통한 예방에 대해서는 할 의향이 없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시장성'과 '경제성'이다. 백신을 통한 예방보다 살처분이 더 선진국적인 대응 방식이며, AI나 구제역 백신을 맞은 가축은 시장에서 팔리지 않아 상품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참 웃기다. 개발도상국에서 살처분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살처분' 자체가 백신을 통한 예방보다 예산이 더 많이 투여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살처분으로 가축을 죽이는 것보다 백신을 통한 예방이 비용이 훨씬 덜 드는 경제적인 방법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키우는 가축은 물론 전 세계에서 키우는 거의 모든 가축은 AI와 구제역 백신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항생제와 백신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백신 하나 더 맞는 것이 뭐가 대수겠는가? 그렇게 백신을 맞은 동물을 먹는 것이 찝찝하면 지금 당장 식습관을 비건으로 바꾸면 된다.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데는 죄책감이 하나도 없으면서 어떻게 백신을 맞은 동물을 먹을 수 없다는 건강염려증에 걸리셨는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살처분한 동물을 묻어둔 매몰지의 토양을 분석해 보았을 때, 자정작용이 진행된 곳을 찾기 힘들었다. 죽은 동물 사체가 미라화되었거나 동물 사체에서 나온 피와 지방으로 흙이 매우 망가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살처분으로 산 생명을 죽여버린 이 상황은 동물에게도 환경에게도 참혹한 결과만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건 지금보다 나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