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군주론 (양장) -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이시연 옮김 / 더스토리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살다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다 읽게되는구나.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5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이탈리아는 유럽의 특별한 존재였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에는 비록 강력하지는 못해도 어엿한 왕이 있었고, 갈수록 왕을 중심으로 나라 전체가 결속하며 국민국가로 나아가는 중이였지만 이탈리아에는 그런 구심점이 없었다. 북부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지배권을 주장하다가 13세기 이후 베네치아, 밀라노, 제노아 등 여러 도시가 땅을 나누어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중부는 로마 교황청의 세력이 앞서는 가운데 피렌체, 시에나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남부는 비잔티움, 노르만, 이슬람 등에게 계속 정복되던 끝에 나폴리 왕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탈리아라는 반도 내에서 작은 도시국가로 쪼개져 서로 대립하고 전쟁을 벌이는 일이 끊이지 않았으며, 정치체제도 군주국, 공화국, 신정정치체제 등 다양한 상황이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1469년 5월 3일 피렌체에서 4남매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귀족은 아니었지만, 한때는 발 디 페사(Val diPesa)의 많은 토지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열세명이나 피렌체 정부의 요직을 맡았을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가문의 후예이다.

마키아벨리가 태어났을 무렵 그의 집안은 엄청나게 부자이거나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교육 자체는 매우 잘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교육 때문인지 마키아벨리는 1498년에 피렌체의 제2장관직에 임명된다. 피렌체는 사보나롤라라고 하는 신부에게 지배되고 있었는데, 그가 실각하면서 사보나롤라파 고위공직자들을 대거 숙청했기 때문에 당시 꽤 어렸던 나이의 마키아벨리에게까지 기회가 주어진 점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 하였는데 1512년 11월 7일 마키아벨리는 서기장에서 파직됨과 동시에 피렌체 외곽으로 추방을 당하고 1513년 2월 19일 카포니(Agostino Capponi)와 보스콜리(Pietro PaoloBoscoli)의 반(反)메디치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아 체포된다. 마키아벨리는 운이 좋게도 1513년에 조반니 메디치(Giovanni de'Medici)가 교황 레오 10세(Leo X)로 선출된 경사를 축하하는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 산탄드레아에서 그 유명한 '군주론'을 집필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헌정한 사람은 메디치 가문의 줄리아노라는 사람이였는데 줄리아노 자체가 한량이었기도 하고 여러 이유 때문에 마키아벨리가 죽을 때까지 군주론은 빛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애초에 군주라는 단어 뜻 자체가 세습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이기에 선거권이 있는 사람에 의하여 선출되는 대통령과는 거리가 멀지만 군주론 자체를 읽으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라함은 타인의 권력에 의하여 군주가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역량으로 군주가 되어야만 하며 백성의 미움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썼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뿐이지만 나는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역량이 뛰어나며, 백성의 미움을 받지 않는 자.'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이다. 박근혜씨처럼 무능한 사람이 주변의 호의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스스로 역량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만 한다. 모든 국민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미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 무능한 자가 국민에게서 미움까지 받게되면 끝내 남게 되는 것은 탄핵이다. 박근혜씨가 탄핵을 당했던 이유는 무능했으며 국민의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다. 다만, 최소한 스스로의 역량이 있는 자가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