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시청. 보통은 일본에서도 각종 수사 활동은 경찰청이 진행하는데 희안하게도 일본 도쿄도에서는 '경시청'이 경찰 본부를 관할하고 있다고 한다. 명칭을 다른 도도부현 경찰 본부와 같은 '도쿄도 경찰 본부'라고 하지 않는 것은 일본의 수도인 도쿄를 관할하면서, 일본 황족의 경호, 입법부와 사법부 등 행정 기관, 주일 대사관, 여타 경비, 내각총리대신, 다른 요인들의 경호도 관할하고 있기 때문라고 한다. 일본 형사드라마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경시청 내부 견학도 가능했나보다.
어나니머스(Anonymous). 익명이라는 뜻의 영단어를 책의 제목으로 지은 것은 너무나 단순명확한 이유 때문이다. 일본 경시청을 배경으로 한 이 짧은 소설은 한국으로 치면 사이버수사대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조금은 웃기기도 한 '손가락살인 대책실'이 명칭이기는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곳에서 익명을 무기로 타인의 신상정보를 캐고, 거짓정보를 유포하고, 불법 카메라 영상을 해외 IP계정으로 업로드하며, 인터넷악플을 달아 사람을 자살까지 가게 만드는 것은 사실 '손가락살인'이 맞지 않나 싶다.
일본에서 먼저 드라마화 되고 출연 배우가 소설화한 이 책을 하루만에 다 읽었다. SNS가 발단된 현대 사회에서 조금만 오해가 커다란 잘못으로 둔갑하거나 과거의 여죄까지 아득바득 찾아내어 조롱하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한국의 경우 불법으로 촬영된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기도 한다. 이 소설과 드라마가 일본을 배경으로 하기는 했지만 이 사회는 전 세계적으로 익명의 뒤에 숨어서 남을 공격하는 것이 너무나 쉽고 당연한 일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소설에서 어나니머스(Anonymous)에게 누군가 기대었던 까닭은 현실의 경찰이 너무나 못 믿을 무언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과거 MBC 코미디언이었던 맹승지가 성관계 동영상 유포자를 찾으려고 사이버수사대에 찾아갔지만 당시 경찰은 피해자에서 '피의자를 잡을 수 없다. 봐주자.'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으니 일본에서도 비슷한 류의 내용이 전개되지 않았나 싶다.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지만 '피의자'를 쉽게 찾을 수 없으며 찾아도 청소년이라면 처벌하기 쉽지 않으니 말이다. 인터넷과 SNS에서 우리는 익명의 누군가로서 익명을 삶을 살며 익명의 누군가에게 정확하지 않은 무언가를 바라며 살고 있다. 현실과 인터넷을 분리할 수 없는 세계에 도달했지만 아직 우리의 영혼은 그 곳까지 닿지 않았다.